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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초지현 Aug 29. 2024

제2의 집

작은 학원을 운영합니다.

나는 학원 강사이다.


요즘 트렌드에 맞지 않는 강사이다.

몇 년 치 선행도 나가고, 바뀐 교과과정에 대한 설명회도 하고, <우리 학생 이만큼 잘해요> 광고도 하고 해야 하는데 그저 수업만 하는 강사다. 고로  많은 돈을 벌지는 못한다.

아직까지 입소문으로만 구멍가게 같은 학원을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위에서 놀라기도 한다.(어떻게 그렇게 꾸준히 학생이 있어요? 하면서)

아마도 소수인원으로 개별적  학습속도에 맞춰가서 그렇지 않을까 싶다.

나는 개인사업자라 사업을 해야 하는 의무(?)도 있는데  혹자는 보육을 하냐는 말까지 한다.


얼마 전 티쳐스라는 프로그램을 보면서 그래도 교육방식에 있어서는 내가 맞게 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름 학생들의 아웃풋을 위한 여러 활동들을 한다.

배운 내용을  요점정리 해서 설명하기, 필기 내용을 숙지 후 백지위에 에세이 쓰듯 적어보기, 너 하나 나하나 서로 가르쳐주기 등의 활동을 다양하게 적용해 본다.

단순히 시험을 쳐서 확인하는 방법 말고도 말이다.

물론 잘하는 몇몇 학생은 그에 맞게 쭉쭉 진도가 나가기도 한다. 그런 학생들과 수업을 하면 가르치는 입장에서도 신난다. 하지만 모두가 다 그렇지 않기에  같은 말을 수십 번, 다른 표현으로, 비유로 설명하기도 한다. 

'바로 이해 안 되는 넌 얼마나 답답하겠니?'라는 마음으로  숙제 열심히 해오는 학생에게는 수백 번도 같은 내용을 설명해 줄 수 있다.

어쩔 땐 몸에 사리가 생기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심지어 호르몬의 장난으로 감정이 널뛰는 사춘기 학생들을 볼 때면 내 마음도 널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요즘 행복하다.

나만의 공간이 있고, 우리 가족의  함께가 가능하다는 것이.

이제 초등 고학년이 된 아이와 그 공간에서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어린이집, 유치원, 초등학교 1학년때까지는 운영하는 학원 수업과 아이의 생활패턴이 맞지 않아 유목민처럼 살았다.

아이를 어머님집이나 친정집에, 혹은 여동생집에 맡겨두고 밤늦게 퇴근하여 그 어느 한 곳에서  잠든 아이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는 날이 허다했다.

그때마다 난 무엇을 위해 이렇게 일하고 있는 것일까, 찔금 눈물이 나기도 했다.

아이는 엄마아빠의 부족한  손길대신으로  와닿은  다른 가족들의 따스한 보살핌 속에서  쑥쑥 커주었다.  그렇게 커서 이제는 혼자서 버스 타고 학원에  올 수 있는 나이가 된 것이다.


아이가 함께 있는 학원은 제2의 집 같다.

수업하다가 쉬는 시간이 되면 잠시 나와 아이를 찾는다.

교무실이라 칭하고는 우리만의 아지트로 만든 강의실에서  놀고 있는 아이를 보면, 어쩌다 숙제하거나 책 읽는 모습을 보게 되면 사랑이 샘솟게 된다. 가서 꼭 한번 안아주고 귀에 속삭여준다.

" 아웅~내 비타민~"

 안긴 아이의 입꼬리가 씰룩 올라가는 게 보인다.

시간이 흘러가주어 고맙기도 하고, 또 너무 빠르게 흘러가는 것 같아 아쉽기도 하다.




보통의 남들이 퇴근해서 저녁 먹는 시간에 가장 핏대 세워가며 수업을 하고, 남들 쉬는 주말에 가장 바쁘게 일하다 보면 세상의 주류에서 살짝 비껴 나는 느낌이다.

경조사를 참석하려면 몇 주 전부터 보충수업이나 상담을 통해 양해를 구해야 한다.


그렇게 30대를 보낼 때는 수업 마치고 퇴근는 길에 어둑하고  한산한 도로 위에서 나만의 세상을 달리듯 드라이브는 것이 위로였다. 밤 10시 이후의   라디오와 하늘에 총총 박힌 과 매일 바뀌는 달이  늘 친구보다 가까이 함께 었다.

잠자고 있는 이들이 알지 못하는 그 시간이 오롯이 나만 아는  이었다.


그러나 아이를 낳고 키우는 40대에는 그저 몇 분 몇 초라도 빨리 퇴근하여 잠든 아이의 체취를 느끼 것이 행복이 되었다.

이 어릴 때는 그 행복이 짧아 그리 애달팠는데, 지금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져서  좋다.

아이는 나름 학교라는 정글에서 혼자 세상을 배우고 온다. 또 다른 의미의 정글인 학원에 와서는 그래도 엄마아빠가 있는 울타리 속에서 종종 쉴 수 있지 않을까 하며 나름 합리화를 해본다.  

어쩔 땐 늦은 시간까지 아이가 학원에 함께 있어 안쓰러울 때가 있지만 그래도 함께 하니깐!

손 꼭 잡고 집에 가서 씻고 누워 오늘도 침대 위가 제일 행복하구나~ 서로 마주 보며 잠들 수 있으니깐!



나는 이런 매일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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