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응급실을 방문했을 때 의사선생님과 나눈 대화이다.
가려움을 느끼고 두드러기를 확인한 것이 저녁 6시 쯤이었다.
3시 쯤 커피 한 잔 마시고는 물 외에 먹은 게 없기 때문에 음식알레르기라는 것을 믿기 어려웠다.
놀랍게도 두드러기의 원인은 세 시간 여 전에 마신 카페라떼의 우유였다.
어떤 음식을 먹은 후 한시간에서 세시간 정도 후 증상이 발현되는 알레르기를 지연성 알레르기라고 한다.
소화기관으로 음식물이 넘어간 후 증상이 나타나기 때문에,
말 그대로 증상이 ‘지연’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어떤 음식이 원인인 지 바로 짚어내기가 어렵다.
물론 먹자마자 급성 알레르기 반응이 나타나기도 한다.
땅콩, 견과류, 참깨, 과실류 알레르기의 경우 급성 알레르기일 가능성이 높다고 알려져있다.
우리나라 음식 알레르기 보유자는 대부분 우유와 계란 알레르기를 앓고 있어,
밥먹다가 호흡곤란이 오는 광경(?)을 볼 기회는 흔치 않다.
지연성 알레르기는 장 점막이 손상되거나 장 기능이 약해졌을 때 나타난다는 일부 의학계의 썰이 있기도 하다.
음식을 섭취 후 완전히 소화되기까지 통상 4시간 정도 걸린다고 하니
지연성 알레르기의 경우 항원이 장을 거쳤을 때 반응이 유발되는 것일 수도 있겠다.
그러니 갑작스러운 발진이 일어났다면, 음식 섭취 후 몇 시간이 지난 후이더라도
그날 내가 먹은 것을 천천히 떠올려보라.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다시 발진을 겪을 가능성이 줄어들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보통 한 끼에 반찬을 골고루 차려 먹기 때문에
정확한 검사 없이는 원인을 자가진단하기가 참 어렵다.
우유를 항원으로 의심하던 때, 콩나물 국밥을 먹고 증상이 발현되었을 때 공포감을 느낀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카페라떼야 에스프레소와 우유로 만드니 둘 중 한 가지를 의심할 수 있지만,
콩나물국밥에서는 콩나물인지 계란인지 새우젓인지
혹은 반찬으로 나온 참나물인지 참깨인지 깍두기인지 원인을 도통 추정할 수 가 없었다.
그래서 알레르기 검사가 꼭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많이 하는 MAST검사에서 항원이 나오지 않았다면,
돈이 좀 깨지더라도 음식물 과민증 검사를 꼭 받아야 한다.
우유만 조심하면 되지 뭐! 하고 과신하다가 계란 흰자에 당한 나의 후회가
다른 이에게서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달까.
아무리 몸에 좋은 음식으로 정평이 나있는 음식이라도,
너무 맛있어서 여러 번 먹었던 음식이라도 나에게 맞지 않으면 독이다.
내 몸이 독소로 인식하는 음식을 많이 먹으면,
당장 증상이 일어나지 않더라도 쌓이고 쌓여 해가 된다.
만약 그 음식을 꼭 먹어야겠다면, 혹은 알레르기 반응이 치명적이어서 일상생활이 힘들다면
전문 알레르기 내과에서 제대로 치료를 받고 먹는 것이 좋겠다.
지연성 알레르기라는 개념을 병원에서 듣고 돌아오는 길,
늘 남들보다 한 발 뒤쳐진 것 같은 불안을 안고 살던 나는 알레르기마저도 지연성이구나 싶어서 픽 웃음이 났다. 이것도 내 속도겠지.
빠르게 가려고 안달복달 하지 말고 내 속도에 맞춰서 페이스를 조절해가야겠다.
내 몸을, 내 마음을, 그리고 나의 일상을 미워하기도 하고 이내 화해하며 적응해 나간다.
속도를 늦추고, 독이 되는 것들은 피하면서 뚜벅뚜벅 천천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