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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고오 Dec 10. 2023

우유알레르기인이 밀크티가 먹고 싶을때

: 오트밀크 차이티

겨울날 따뜻한 머그컵을 들고 리클라이너에 등을 기대 앉는다. 

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이다. 

조금은 스산한 겨울 풍경을 보면서 아직 따끈한 차이티를 한 모금. 

알싸한 향기가 코 끝을 스칠 때, 묵직하고 부드러운 음료가 혀를 감는다. 

내가 겨울을 즐겁게 보내는 방법이다. 


밀크티는 가장 좋아하는 겨울 음료이다. 

향기로운 홍차를 진하게 우려서 우유를 섞은 후 설탕을 섞어 달콤하게 마시는 밀크티. 

한 모금만으로 따뜻함을 온몸에 퍼뜨려주는 마법같은 음료이다. 

밀크티가 얼마나 매력적인지는 아편전쟁의 전쟁의 원인이 밀크티인 것만으로도 알 수 있다. 

영국 귀족들 사이에서 밀크티가 선풍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중국 홍차를 수입할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영국이 아편을 중국에 밀매한 것이 아편전쟁의 시작이 되기 때문이다. 


호주에서 두달 간 여행을 다닐 때에도 

멸균우유팩과 홍차티백, 카페에서 꼼쳐온 일회분 설탕을 챙겨다니며 

백패커에서 아침마다 밀크티를 마시곤 했다. 

밀크티에 대한 내 진심이 느껴졌는지, 

백팩커에서 만난 영국인 친구가 영국에서 밀크티를 만드는 방법도 손수 보여주었다. 

공차로 대표되는 대만식 밀크티를 차갑게 마시는 것도 좋아한다. 

MZ들에게 아재음료로 평가받는 데자와를 따뜻한 캔으로 마시는 것도 좋아한다. 

이렇게 다양한 밀크티를 섭렵하다보니, 향이 강한 차이티마저도 찾아다니며 마실 정도로 즐기게 되었다. 


그러나 우유알레르기가 생긴 후에 밀크티는 가장 마시기 어려운 음료 중 하나가 되었다. 

카페에서 서브하는 밀크티는 대개 미리 만들어놓고 주문이 들어올 때 내어주는 것이 일반적이다. 

아예 밀크티용 병에 담아 병째로 판매하는 곳들도 많아서 보틀밀크티라는 메뉴가 생기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비건옵션이 있는 카페더라도 밀크티를 비건으로 마시기는 참 어려웠다. 

두유나 오트밀크로 대체해주는 카페는 대부분 밀크티 파우더를 쓰는 매장이기 때문에 

밀크티의 참맛(?)을 즐기는 내 취향을 만족시키기는 어려웠다. 

편의점이나 마트에서 파는 시판 제품 중에서도 밀크티를 비건으로 만든 것은 아직 찾지 못했다. 

모든 음료와 디저트를 비건식으로 내어놓는 비건카페를 방문할 때면, 

오늘 커피를 못마셨는데 오트라떼를 마셔야할지, 오랜만에 비건밀크티를 마셔야 할지가 최대의 난제였다. 


그렇다고 겨울의 밀크티를 포기할 수는 없다. 

인터넷으로 수제 비건밀크티를 주문할 수도 있겠지만 까짓 것, 내가 만들어 버리기로 했다. 

만드는 법은 설명이 무색할 정도로 간단하다. 

작은 냄비나 밀크팬에 차이티를 20g 정도 덜고, 종이컵 반 컵 정도의 물을 부어 끓여준다. 

붉은 색으로 차가 우러나기 시작하면 오트밀크를 200~250ml정도 부어 함께 끓인다. 

팔팔 끓이지 말고 보글보글 작은 거품이 올라오면 불에서 냄비를 내린다. 

체에 차를 걸러낸 후 꿀이나 설탕을 넣어 당도를 맞추면 끝. 

홈메이드 오트밀크 차이티가 완성되었다. 

꾸물럭 담요 속으로 들어가서 쿠키와 함께 즐기면 오늘 치 행복이 만땅으로 차오른다. 


조심성도 잔걱정도 많은 나는 무엇인가를 시작할 때 늘 기초공부부터 해야하는 타입이다. 

그래서 도전을 주저하고 망설이다가 타이밍을 놓치기 일쑤다. 

알레르기를 진단받은 직후, 이런 성격은 바뀐 일상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스트레스를 극도로 끌어올렸다. 

모든 음식과 식당으로부터 따돌림을 당하는 기분이 들어 하루 종일 우울해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어느 순간, 알레르기가 생긴 내 몸을 받아들이고 나자 성격이 조금 바뀌었다. 

사소한 도전에 일일이 겁먹지 말고, 많이 망해 보기로 했다. 

결혼 결정도 아니고, 전재산을 투자하는 것도 아닌데! 

앞선 글에서 이야기한 두유요거트도 사실 첫 시도엔 실패했었다. 

너무 차가운 상태의 두유를 사용했고 요거트 스타터를 충분히 섞지 않은 결과였다. 

비건 디저트를 시도할 때도 정말 많이 망했다. 

마들렌은 구움색도 나지 않은 채, 배꼽도 없는 하얀 스펀지가 되어 오븐에서 나왔다. 

통밀스콘은 딱딱해서 못도 박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망하고 나면 원인을 분석하고 다시 도전했다. 

더러 성공하기도 했고 다시 망하기도 했다. 그렇게 몇 번 망해보니 별 것도 아니었다. 

아무리 준비를 열심히 했어도 망할 수 있는 것들이 원인이었다. 

망하는 것은, 시간과 자원을 낭비한 것이라기 보다 경험과 기술을 얻어가는 과정일 뿐이었다. 


알레르기를 받아들이기 전의 나였다면 비건밀크티를 집에서 만든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것 같다. 

비건밀크티를 만들어주지 않는 카페에, 기업에 화내기에 바빴겠지. 

내가 먹을 수 없는 모든 맛있는 것에 열받아 하면서. 


겨울을 맞이하기 위해 마살라 차이티 블렌딩을 주문하고 오트우유를 준비해두었다. 

오랜만에 만드는 오트밀크 차이티는 어쩌면 이번에도 망할지 모르겠다. 

그럼 뭐 어때. 다시 만들면 되는 것을. 

빨리 눈이 왔으면 좋겠다. 

따끈한 차이티에서 김이 몽실몽실 올라올 때, 손을 머그잔에 녹여가며 밀크티를 마시고 싶다. 

올 겨울에도 나는 포기하지 않고 밀크티를 마신다. 사소한 도전으로 만든 달큰한 자신감을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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