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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고오 Jan 14. 2024

먹어보라는 말은 삼켜주세요


“이제 슬슬 먹어봐도 되지 않아?” 

우유와 계란 흰자 알레르기를 진단받은지 어느덧 2년이 가까워져 간다. 

그 사이 코로나도 걸리고 발목 관절을 다치기도 하고, 이명이 들리는 등 많은 건강 문제를 겪었다. 

그리고 지금은 건강 면에서도 면역 면에서도 꽤나 안정을 찾은 상태이다. 

그러자 지인들이 나에게 권해보기 시작했다. 

우유와 계란을 안 먹는 것이 너무 힘들지 않냐며, 

건강해졌으니 이제 조금씩 먹어보는 것이 어떻느냐는 권고이다. 


실제로 음식 알레르기를 치료하는 방법 중 하나로 경구면역요법이라는 것을 병원에서 실행한다. 

항원인 음식을 소량부터 먹기 시작하여, 조금씩 섭취량을 늘리면서 

몸이 항원에 익숙해지도록 하는 방법이다. 

유아기에 우유나 계란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아이들의 경우, 

커가면서 알레르기가 없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요즘은 청소년기 혹은 성인이 되어서까지 반응이 지속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알레르기 없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부지불식간에 항원에 노출되었을 때 극심한 반응을 일으키는 정도라면, 

병원에서 경구면역요법을 받는 것을 권장한다. 


성인이 된 후 알레르기를 진단 받았다면, 이를 대처하는 방법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알레르기 반응이 아주 위협적이거나, 항원이 주식(主食)이라면 

알레르기 전문 병원에서 적극적으로 치료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알레르기 반응을 약으로 조절할 수 있거나, 

무의식적으로 항원에 노출될 위험이 낮을 경우 회피를 선택할 수 있다. 


내 경우에는 우유나 계란 섭취량이 많은 편이었고 (아침식사가 주로 삶은 달걀에 라떼였다.) 

알레르기 반응이 발현되면 링겔주사를 맞지 않는 한 증상이 가라앉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적극적인 치료 대신 항원을 피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일단 알레르기 진단을 받으면 해당 항원은 적극적으로 피해야 하는 기간을 3개월 정도 가져야 한다.

이 기간을 겪으면서 식당예약을 취소당하기도 하고, 회사에서 나누어주는 간식을 먹지 못하거나, 

함께 외식을 하는 친구를 불편하게 하는 등의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우려했던 것 보다는 우유와 계란 정도를 피하는 것이 못할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약간의 불편만 감수하면 되는데, 내 몸이 독으로 받아들이는 음식을 먹으려고 굳이 발버둥칠 필요가 있을까? 

대두나 귀리에 알레르기가 없으니 두유나 오트밀크로 우유를 대체할 수 있다. 

계란을 먹지 않으니 불편한 점은 식당에서 주문할 때 계란이 있는지 여부를 체크하거나, 

몇 가지 먹지 못하는 음식이 생긴 정도였다. 

버터나 치즈에는 알레르기 반응이 나타나지 않아서,

항원이 조리과정에서 소량 섞이거나 시판 제품에 약소하게 들어있는 정도는 무리 없이 감당할 수 있었다. 

수도권에 살다보니 맛있는 비건디저트를 판매하는 곳을 어렵지 않게 찾아갈 수 있다. 

비건 제과 자격증을 취득했으니 내가 먹고 싶은 디저트를 만들어 먹을 수도 있다.


이 참에 플렉시테리언(flexitarian)의 삶을 살아가기로 했다. 

평소에도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았은 편이었다. 

외출할 때는 되도록 텀블러와 접이식 장바구니를 챙겨 다니고, 

집에서는 샴푸바와 천연 수세미, 소창행주를 이용한다. 

용기가 부족해 비건식단까지는 실천하지 못했는데, 

알레르기 덕분에 달걀과 우유를 먹지 않는 페스코 비건 정도의 식단을 지향하게 되었다. 

1일 1식 정도는 육류와 달걀, 우유를 제외한 식단으로 식사를 한다. 

오히려 좋다. 

호주의 어학원에서 만난 브라질 친구가 우유와 계란을 아예 먹지 않는다고 했을 때, 

“How.. how do you live?”(어떻게.. 어떻게 살아?) 라고 반응 했던 적이 있다. 

지금 돌이켜보니 핏, 웃음이 난다. 


나는 알레르기를 안고 살아가기로 했다. 

이 기획으로 글을 쓰면서 되도록 알레르기를 “앓는다” 거나 알레르기 “환자”라는 표현을 

최대한 배제하고자 한 것도 그 이유이다. 

나는 알레르기가 있는 내 몸을, 알레르기와 더불어 살아가는 일상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선택했다. 

그러니 알레르기를 앓고 있는 가까운 이가 있다면 

“이제 괜찮지 않아?” “그래도 좀 먹으면서 내성을 키워야 하는 것 아니야?” 등의 조언은 삼켜주었으면 한다. 

그는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을 수도 있고, 알레르기와 동행하기로 마음먹었을 수도 있다. 

있는 그대로 존중해주었으면 한다.


음식 알레르기를 진단받은 후 사소한 것에도 분노하고 억울해 하던 나는, 

이제 알레르기를 나의 “특징”으로 여기기로 했다. 

음식 알레르기 덕분에 비건 문화에 관심을 가질 수 있었고, 비건 디저트를 만들게 되었다. 

비건 카페들을 찾아다니며 블로그에 소개하는 새로운 취미도 갖게 되었다. 

이제 알레르기는 나의 콘텐츠가 되었다. 

어떠한 어려움은 되려 사람을 강하게 만들어 주는 계기가 되는 것 같다. 

아직 알레르기를 시련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말해주고 싶다. 

흠, 글쎄요. 살만 하던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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