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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고오 Sep 16. 2023

알레르기 검사비만 40만원?! 음식물 과민증 검사 후기

어느날 갑자기 알러지 발견기 그 3편


(어느날 갑자기 알러지 그 2편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콩나물국밥을 좋아하시나요? 

전 회사 근처에는 정말 끝내주는 콩나물 국밥집이 있었다.

맑은 국물에 새우젓을 탁 풀어서, 별도로 나온 수란 그릇에 콩나물 국밥을 덜어 밥을 섞어 먹으면 따끈하고 든든한 기운이 몸을 채워 온다. 

국밥충이라 자부하는 내가 점심마다 여기를 가자고 해서 팀원들이 질려할 정도로 맛있는 집이었다.


알러지 얘기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왜 콩나물국밥 타령이냐고? 

바로 그 날.. 최악의 두드러기 증상을 겪은 날 이 콩나물 국밥집을 마지막으로 방문했기 때문이다. 

MAST 검사를 받은 지 2주도 지나지 않은 어느날, 

이 날도 여기서 점심을 먹고 2시 회의에 참석중이었는데, 느낌이 왔다. 


귀가 달아오르고 팔뚝이 간지러워 오면서 오소소한 소름이 뒷목을 타고 올랐다. 

컨퍼런스 콜 중이던 상대에게 정말 급한일 때문에 나가봐야 한다고 정중하게 정수리를 보이고서, 알러지 검사를 받았던 병원으로 뛰어갔다.


코로나 2차 백신 기간이라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던 병원.

항히스타민 샷을 맞기 전 선생님 진료를 봐야 한다고 하는데 20분이 넘어도 내 이름이 대기 리스트 상단으로 올라가질 않았다. 


그 사이 내 상태는 심각해져갔다. 


생각보다 진행이 빨라서 응급치료를 받지 못한다면 가장 가까운 종합병원으로 가겠다고 했더니, 

우선 주사를 맞자고 해서 엉덩이 주사를 맞았다. 

그리고 다시 대기실에서 기다리는데 상태는 좀처럼 호전되질 않았다. 

다시 몸이 덜덜 떨렸다. 


얼마간을 더 기다려 드디어 진료차례가 돌아왔다. 

발진을 동반한 내 모습을 처음 본 의사선생님은 깜짝 놀라시면서 링거 맞아야겠다면서 처방을 서두르셨다. 40만원 짜리 음식물 알러지 검사를 하시겠냐고 다시 조심스레 물으셨다. 

회사에서 회의하다가 뛰쳐나와서 샷을 맞았는데도 30분 째 이 모양인 상태. 망설일 수도 없다. 


네. 뭐든 해주세요. 저 우유는 입도 안댔다구요. 뭐가 뭔지 모르겠어서 정말 무섭다구요.


반응이 있을 때 채혈하면 항원이 더 잘 발견된다면서, 이번엔 꼭 항원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했다. 

피도 두꺼운 주사기에 한 가득 뽑아가셨다. 식염수와 약을 풀스피드로 맞으며 누워 있는데 의사선생님이 여러번 내 상태를 점검하러 오셨다. 엄청나게 환자들이 밀려있는데도 진료 사이사이에 주사실에 와서 물끄러미 상태를 점검하고 진료실로 돌아가시곤 했다. 

놀라고 고통스러운 와중에 받은 친절에 눈물이 날 뻔했다. 


무이자 한도를 풀로 땡겨 40만원 결제를 하고 나오는 길. 

다시 근무를 하러 가야 된다는게 빡(?)치기도 하고, 현생을 열심히 사는 내가 기특하기도 했다. 오묘했다. 


약 4일 후, 드디어 검사 결과가 나왔다. 

하드커버의 양장본으로 묶여나온 보고서. 


40만원의 위엄인가! 

이 검사는 씨젠의료재단에서 나온 음식물 과민증 검사로, 

약 222가지 음식물에 대한 알러지 검사를 해준다. 

습습후후 심호흡하는 중에 의사 선생님이 이 묵직(?)해 보이는 커버를 열어 젖혔다. 



맙소사. 위의 음식들은 앞으로 3개월 동안 입에도 대면 안되는 음식들이다. 

음식이름 옆에 적힌 숫자, 즉 항원수치가 30이 넘어가면 증상이 발현될 수 있으니, 

3개월 동안은 아예 먹지 말고, 그 다음 3개월 동안은 약간씩 시도해보기를 권장한다. 


이 중 직접적인 증상으로 발현된 요인은 우유와 계란흰자였다. 

우유는 예상을 하고 있었는데 계란흰자를 리스트에서 보는 순간 무릎을 탁 쳤다. 

마카롱을 먹고 반응했던 이유가 이거구나. (마카롱은 계란흰자로 만든 머랭이 다량 들어간다.) 

콩나물국밥은 죄가 없고 내가 정말 맛있게 밥 비벼먹은 수란이 범인이었구나. 


미스터리는 풀린 자리엔 당황과 참담함이 차올랐다. 

베이킹이 취미인 사람한테 우유랑 계란을 끊으라니요 ㅠ_ㅠ 

국밥충한테 된장을 끊으라니요 ㅠ_ㅠ

맥주킬러에게 보리와 맥주를 끊으라니요 ㅠ_ㅠ 


알러지는 정말 어느날 갑자기 온다..! 

베이킹을 사랑하고, 호주 트래킹 한달여행을 할 때도 밀크티를 직접 만들어먹던 사람, 라떼아트를 연마하며 바리스타로 1년을 살았던 사람도 어느날 갑자기 우유 알러지가 온다. 

제일 자신있는 요리가 일식 계란말이인 사람도, 매일 아침 삶은 계란을 먹던 사람도 달걀흰자 알레르기 온다. 그게 모두 나다. 


가혹했다. 

차라리 모를걸!! 싶다가 발진이 돋았던 피부 사진을 보고 다시 정신을 붙잡았다. 


내 몸은 우유와 계란을 독으로 간주하고 소화하지 못하는 체질로 변해버렸다. 이제 적응해야 한다. 유체이탈한 채 살아갈 순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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