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표고 Feb 27. 2024

반려묘가 스며든 풍경을 보다가

약 8년 전, 나는 인생 처음으로 반려묘를 입양했다. 아버지가 강아지를 좋아하셔서 십 년 넘게 다양한 종의 반려견을 길러봤지만, 고양이와는 연이 닿지 못했다. 길에서 가끔 고양이와 마주칠 때 강아지와는 다른 조심스러운 태도, 내성적인 듯한 표정이 나와 결이 맞을 거 같다는 막연한 생각을 하곤 했다. 그래서 언젠가 나의 집을 갖게 된다면 고양이를 기르면 어떨까 하는 꿈을 꿔보기만 했었다.


2011년도에 남편을 만났고, 13년도에 결혼을 했지만 반려묘를 입양한 것은 몇 년이 지난 후였다. 생명을 책임진다는 것. 그 무게가 막상 입양을 결정하기까지 시간이 걸린 이유였다. 남편은 그런 겁이 많고 걱정도 많은 나를 알기에 나보다 더 반려묘를 들이고자 하는 마음이 컸지만 혼자서 몰래 유기묘 입양 까페를 들여다보고 나에게 선뜻 말을 꺼내지는 않았었다. 그러던 2016년 어느 날, 남편이 나를 불렀고 두 장의 사진을 보여줬다.



“자기야, 너무 예쁘다. 이 아이들. 남매래”


내가 지금의 남편을 한 달쯤 만났을 때 막연히 아 나는 이 사람이랑 결혼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와 비슷한 감정이었다. 나는 그 사진을 보고 생각했다. 아, 이 아이들을 만나려고 내가 지금까지 기다렸나 보다고.




까다롭게 심사를 하시는 임시보호하시는 분께 정성을 담아 우리의 마음을 전했다. 몇 통의 메일이 오간 끝에 겨우 우리에게 아이들이 오게 되었다. 그리고 2016년 6월 19일. 아이들이 우리에게 왔다. 2개월령이었던 아이들은 너무나도 작았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사랑스러웠다. 그리고 우리 천재 냥이들은 화장실을 가르쳐 주자 바로 실수 없이 사용했다! (기특해!기특해!기특해!) 사료 그릇에 들어갈 정도로 작았지만 야옹 소리는 우렁찼던 우리 아이들. 고민 끝에 턱시도를 차려입은 듯한 검은 아이는 ‘시도’, 가을의 낙엽이 흩뿌려진 것 같은 색상의 털을 가진 아이는 일본어의 가을이란 뜻의 ‘아키’란 이름을 지어 주었다.


시도와 아키는 딱 5일 소파 밑에서 낯선 집을 무서워하면서 낯을 가리더니 8년이 흐른 지금까지 어마 무시한 무릎냥으로서 살고 있다. 무거워졌다는 걸 모르는지 가끔은 둘 다 한꺼번에 내 무릎에 올라오려고 한다. 하긴 얼굴은 아직도 아기 같긴 하지.. 허허..




반려묘가 스며든 풍경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살지만 갑자기 이 모든 인연이 갑자기 벅차오를 때가 있다. 특히 내가 가라앉은 날 굳이 굳이 내 옆구리를 파고들어와 앉아서는 내 눈을 빤히 볼 때. 그 온기가 나를 삶 쪽으로 밀어준다고 느껴질 때가 특히 그렇다. 8년 전, 내가 유기된 아이들을 구원한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쪽은 나였다. 글을 쓰는 지금도 무릎에 앉은 시도가 무릎에 앉아 나를 올려다본다. 이런 눈빛이다.


‘엄마, 엄마가 너무 좋아.’


살아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아이들 덕분에 종종 한다. 너무나도 감사한 일이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