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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표고 Mar 05. 2024

넘어지자 골절이라니 이것 참

2022년 12월 31일.

무릎 슬개골이 골절됐다.


그로부터 약 1년 전, 플랫폼 힐을 신고 가다가 왼쪽 발목을 접질렸고 그래서 인대가 늘어났는데 병원에서는 딱히 고칠 방법이 없다고 했다. 적외선이나 몇 번 쐬어 주고는 조심하면서 다니라고 할 뿐이었다. 그 뒤로 나는 양말 같은 플랫 슈즈를 신든 푹신한 운동화를 신든, 왼쪽 발목이 꺾이면서 길에 넘어지는 일이 종종 일어났다. 1년 동안 열 번 가깝게 넘어졌고, 그러면서 오른쪽 무릎은 길에 쿵쿵 부딪혔었다. (아마 조금씩 금이 가고 있지 않았을까.)


다시 2022년 12월 31일의 그날로 돌아가서.

자꾸 넘어지는지라 굽이 있는 신발은 엄두도 못 내면서 살고 있었는데, 12월 31일이라 왠지 기분을 내고 싶었다. 그래서 5센티쯤 굽이 있는 워커를 오랜만에 꺼내 신고 데이트를 나갔더랬다. 근사한 카페를 갔고, 그곳은 계단식으로 되어있는 홀 양쪽으로 쭉 좌석이 있는 곳이었다. 남편이 커피를 사러 갔고 나는 빈자리를 찾아다니고 있었다. 그렇게 제일 높은 곳까지 올라갔는데 자리가 없길래 다시 내려오다가 자리가 났다는 남편의 전화가 왔고, 난 왠지 서둘러야 할 거 같은 약간의 조바심이 들었다. 그래서 조금 빠른 걸음으로 걸었고... 계단을 내려오는데 왼쪽 발목이.. 꺾였다.


공중에 떠 있는 0.5초의 시간 동안 난 생각했다. 아 이건 좀 심각할 거 같은데.


“빡!!!!”


사람의 무릎에서 그런 소리가 날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고요했던 카페에 내 무릎과 계단이 부딪히는 소리가 울려 퍼졌고 양쪽으로 늘어선 좌석에 꽉 들어차 있던 수많은 사람들이 일제히 소리를 냈다.


“헉”

“어떻게 해”

“구급차 불러야 하는 거 아냐”



나는 너무 아파서 창피한 줄도 모른 채 3분 정도 엎어져 있었다. 그리고 겨우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려고 다리에 힘을 주었을 때 흐느적거리며 무너졌다. 그렇다.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오른쪽 무릎을 살짝 눌러봤더니 물컹했다. 뼈가 느껴지지 않았다. 사람들의 부축을 받아 겨우 앉았고,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남편이 달려와 나를 업고 자주 가던 동네 병원으로 달려갔다.




의사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네, 골절이네요. 연말이라 응급실은 붐빌 테니 1월 2일에 외래로 가세요. “


다리는 시퍼렇게 멍들어 부어올랐지만 생각보다 미친 듯이 아프진 않았고, 진통제로 버티며 이틀을 보내고 1월 2일이 되었다.



”아니 왜 응급실로 바로 안 오고 이제 왔어요. 잘못되면 어떡하려고! “


다른 의사 말을 들었을 뿐인데 혼부터 났다. 입원실이 나지 않아서 응급실에서 24시간 대기를 하고 겨우 수술을 할 수 있었다. 두 동강 난 줄 알았던 슬개골은 열어보니 더 잘게 부서져 네 조각 나 있었고 2시간일 줄 알았던 수술은 그래서 더 오래 걸렸다고 했다.


그리고 수술 후 15시간 정도 진통이 되지 않던 시간... 버튼을 누르면 진통이 된다고 했는데.. 눌렀는데.. 계속 눌렀는데... 잠도 오지 않을 만큼 너무 아파서 밤을 새면서 나는 왜 넘어져서 무릎을 깨먹는 바보인가 자학했더랬다.



쑥대머리를 하고 침대에서 볼일을 보며 6일을 병원에서 보냈다. 다리를 못 쓴다는 것이 얼마나 불편한지를 깨닫고 몸이 건강한 것을 당연하게 누리며 내 몸을 함부로 대했던 날들을 후회했다. 멋 내려고 플랫폼 구두를 신고 발목 인대를 고장 낸 나도 밉고, 그보다 운동해서 코어 근육이 있었다면 넘어지지 않았을 테니 운동과 담쌓고 산 내가 제일 미웠다.



퇴원을 하니 그리웠던 집에 돌아가서 좋았다. 한데, 우리집은 4층 꼭대기에 엘리베이터가 없는 빌라다. 그래서 목발을 짚고 왼쪽 다리만 겨우 디딜 수 있는 나는 1달 동안 꼼짝없이 외출금지를 당했다. 라푼젤, 네가 이런 기분이었을까. 평소에 나갈 이유가 없으면 집에만 있는 집순이 주제에 못 나가게 되니까 왜 이렇게 바깥세상이 찬란해 보이던지.



집 안에서도 목발을 짚고 다녀야 하다 보니 양손을 자유롭게 쓸 수 없어서 뭘 들고 나르기 조차도 어려웠다. 그래서 남편이 출근을 하고 나면 앉아서 작업을 하거나 일을 하는 거 말고는 처음에는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래도 시간이 흐르니까 주머니가 많은 조끼를 입고 물건을 나를 때 주머니를 활용한다거나 앉아서라도 고양이랑 놀아주는 요령이 생기는 등 차차 불편한 다리에도 적응해 갔다.



사실 골절을 나만 겪은 게 아니다. 내가 움직이기가 어려우니 집안일은 남편이 거의 해야 했고, 씻는 것도 도와줘야 했으니 사실 꽝을 뽑은 건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회복해 가는 기간 동안 내가 가장 많이 들었던 생각은 건강을 지키는 것이 나를 위해서도 중요하지만 주변 사람들을 위해서도 참 중요하구나 하는 것이었다. 작년 내내 자꾸만 넘어졌던 것이 사실은 운동하라는 신호였고 운동해서 근력을 길렀다면 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에 후회가 됐다.



물론 나는 게을러서 이 이야기는 골절 이후에 스포츠맨이 되었다는 아름다운 결말로 끝나지 않는다. 다만, 골절을 겪은 이후에 나는 자세를 바르게 하게 되었고 걸을 때도 발목이 꺾이지 않도록 중심을 잘 잡고 걷는다. 그리고 예전보다는 훨씬 많이 운동하려고 노력한다. 덕분에 살도 조금 빠졌고 골절 이후로는 거의 넘어지지 않게 되었다.



사실 해피엔딩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어떻게 보면 인생에서 가장 불행한 사건 중 하나였던 골절이 오히려 나에게 감사를 회복시켜 주었다는 부분이다. 평범한 일상에 대한 감사말이다. 매일 흔하게 누리는 것들에 대해 나는 이제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다. 주변 사람들에게도 더 많이 표현한다. 사랑한다고 또 고맙다고 말이다. 얻은 것이 잃은 것보다 훨씬 많다. 불평하고 싶을 때 정신 번쩍 차리게 해 줄 20센티 길이의 길쭉한 흉터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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