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표고 Mar 19. 2024

내 꿈은 다정하고 관대한 어른

초등학교 저학년 때의 일이었다.

아버지가 새 차가 나와서 그 기념으로 다 같이 외식을 나가자고 하셨다. 우리는 외할아버지댁과 나란히 마당을 공유하며 살고 있었고, 그 외출은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도 함께하는 일정이었다. 오랜만의 외식에 다들 옷매무새를 다듬느라 시간이 걸렸고, 들뜬 나는 새 차가 궁금해서 가장 먼저 달려 나갔더랬다. 반짝반짝 빛나는 차에 탄성을 내지르며 폴짝 올라탄 순간 아버지의 벼락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꼬맹이 주제에 어딜 상석에 냉큼 앉냐! 거긴 할아버지 자린데! “


운전석의 대각선 뒷자리가 상석이라는 건 처음 듣는 얘기였다. 아니, 차에 상석이라는 게 있다는 것조차 난 몰랐다. 마냥 신났던 나는 머쓱함과 서러움이 몰려왔고 울면서 말했다.


”나 밥 먹으러 안 가! “


울면서 집으로 다시 들어갔고 난 내 방 침대에 얼굴을 묻은 채 대성통곡을 했다. 엄마가 사정을 듣고 나를 달래 보았지만 나는 결국 그날 그냥 집에 혼자 남았다.



어린 시절, 내가 아버지를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당신의 기준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하면 일단 화부터 내셨던 것이었다. 일부러 잘못된 행동을 하려고 한 게 아니라 몰라서 그런 것일 경우가 많았는데 왜 몰라서 그런 건지 확인해 보지 않고 화부터 내셨을까.



아마도 아버지는 무언가를 가르칠 때 따끔하고 엄하게 해야 다시는 그런 행동을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셨던 거 같다. 특히 일상생활에서의 예절, 이를테면 식사 예절 같은 것에 몹시 엄하셨는데 단정하고 예의 바른 사람으로 자라야 사회에서도 제 몫을 잘 해낼 수 있다고 믿으셨던 게 아닐까.



어느 정도 이해하지만 나는 아버지를 닮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나는 다정하고 관대한 사람이 되는 것을 꿈꿨다.



나는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공감능력이 뛰어난 편인데, 그래서 친구들이 고민을 상담해 오거나 하면 내일처럼 고민하고 실질적인 해결책을 찾기 위해서 같이 노력하곤 한다. 그리고 어떤 도움을 줄 때도 돌려받을 것을 계산하지 않고 전력을 다 한다. 보람은 사랑을 주는 그 자체에서 찾고 보답을 받는 것에서 찾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정말 칭찬을 하는 걸 좋아한다. 그것도 그냥 형식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만이 가진 장점을 꼼꼼히 살펴서 반짝반짝 닦아서 건네주는 기분으로 정성스럽게 한다. 그러면 그 칭찬을 받은 사람은 어린아이같이 말간 얼굴로 웃는다. 그 웃는 얼굴을 보는 것이 좋아서 나는 누굴 만나도 열심히 칭찬거리를 찾는 버릇을 갖게 되었다. 칭찬을 잘하는 사람이 되었더니 자연스레 나는 다정한 사람이 되어있었다.



내가 다정하고 관대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보니까 자연스레 그런 사람을 이상형으로 생각하게 되었는데, 운 좋게도 그런 사람을 남편으로 만났다. 남편은 정말로 관대한 사람이라서 소심하고 쉽게 주눅 드는 성격이라든지 허약한 체질 등 단점 투성이인 나와 13년을 함께 하면서 단 한 번도 구박하거나 상처 주는 말을 한 적이 없다. 서로에게 아쉽거나 부족한 부분이 있더라도 우리는 짜증내거나 화를 내는 대신 묵묵히 내가 잘하는 것으로 상대방의 단점을 덮어주면서 보완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그런 관대함의 원동력이 되는 것이 있다면 그건 서로에게 끊임없이 표현하는 감사인 거 같다. 서로 나눠하는 집안일도 니 몫이니까 당연히 해야지 하는 마음이 아니라 오늘도 열심히 해내줘서 고맙다는 마음을 가지면 일상은 감사로 가득하다.




이제 훈육이 끝난 아버지는 나에게 엄하고 무서운 목소리로 말하시는 일이 없다. 항상 걱정 가득한 다정한 목소리로 밥은 먹었는지 아프진 않은지 물으신다. 그런 아버지를 보면 엄한 가장 역할을 하시는 것이 사실은 힘들고 지치는 일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버지와 반대로 가는 것이 다정하고 관대한 사람이 되는 길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아버지도 그런 분이었던 걸 알고 나니 어릴 때 아버지의 진심을 좀 더 이해해 보려고 노력해 봤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나에겐 고등학생 조카가 하나 있는데 우리는 서로 베프라고 부른다. 그 아이는 참 밝고 맑아서 애정표현을 많이 해주는 편인데 이모가 왜 좋으냐고 물으면 다정해서라고 한다.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가 보기에도 다정한 어른이라면 난 내가 꿈꿔온 것에 가깝게 살고 있는 거 같아 마음이 좋다. 언젠가 내가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게 되었을 때, 누군가 그 사람은 참 다정한 사람이었지라고 날 추억해 준다면 좋겠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오늘도 나는 감사와 칭찬으로 무장하고 하루를 열심히 살아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