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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표고 Apr 02. 2024

엄마, 딸이 있잖아

“표고야, 엄마 검사 결과 들으러 가야 하는데 혹시 같이 갈 수 있니?”


엄마는 웬만한 일은 스스로 공부해서 해결하시고 도와달라고 부탁하시질 않는 분이다. 그래서 병원에 갈일이 있어도 보통 다녀와서 어땠다 결과만 말씀하시곤 했었다. 그런데 췌장 MRI 검사를 받으신 것의 결과를 들으러 가야 하는 날의 며칠 전, 문득 연락을 하셨다. 나는 덜컥 겁이 났다. 이번엔 어떤 예감 같은 게 있으신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엄마는 26년 전, 40대인 꽤 이른 나이에 당뇨에 걸리셨다. 좋아하던 맥주와 혈당을 오르게 하는 맛있는 음식들을 다 끊으시고 성실하게 관리를 하셨고, 다행히도 합병증에 걸리지 않고 잘 유지해 오셨다. 그런데 8년 전, 외할머니가 췌장암으로 돌아가셨다. 당뇨환자가 가장 걱정되는 기관이 췌장이기에 엄마는 그때부터 당신도 언젠가 췌장이 잘못되지 않을까 불안한 마음을 갖게 되신 것 같다. 췌장은 암이 걸리지 않도록 예방을 한다거나 관리를 하기도 어렵고 병에 걸리면 대체로 치명적인 상태일 때 발견된다. 그래서 그저 정기적으로 검사해 보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 가족력이 있는 사람에게는 막연한 공포를 가질 수밖에 없게 만든다. 그러니 어쩌다 이상하게 아랫배가 아프거나 묵직한 기분이 들 때면 가슴이 철렁해 지신 적이 많았을 것이다.



결과를 들으러 가기 전날 잠이 오질 않았다. 평소 자는 시간보다 2시간이 지나도 잠이 오질 않았다. 만약에 나쁜 소식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나. 엄마한테 어떤 말을 해드려야 하나. 내가 더 울고불고하면 안 되는데 내가 눈물을 참을 수 있을까. 평소에 엄마 건강 더 신경 써드렸어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머릿속을 맴돌아서 잠을 뒤척였다.



병원에 가기 전 다른 일정이 있어서 정신없었지만 내내 가슴이 답답하고 불안했다. 만약 무슨 일이 있더라도 내가 정신 차려야 한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이제껏 엄마가 나의 보호자이고 안식처였으니까 이제부터는 내가 그 역할을 해야 할 때라고 스스로에게 상기시켰다.




병원 셔틀버스를 타는 곳에서 엄마를 만나기로 했는데 멀리서 엄마 뒷모습이 보였다. 엄마가 저렇게 작고 말랐었나. 속에서 울컥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오르려고 했다. 감정을 추스르고 웃으면서 달려가 엄마 손을 꼭 쥐었다.


“엄마 오늘 화장이 잘 됐네. 머리도 예쁘다“



씩씩하게 엄마를 리드해서 접수를 하고 진료실 앞 의자에 나란히 앉았다. 진료가 지연돼서 50분을 기다리라는 안내가 떴다. 불안해서 자꾸만 가슴이 조여 오는 느낌이 들었다. 엄마한테 불안해하는 티를 내지 않으려고 자꾸만 재미있는 이야기를 생각해 내려고 노력했는데 안타깝게도 요즘 내 일상은 별달리재밌을 게 없었다. 숨죽여 한숨을 내쉬고 손톱을 잡아 뜯었다.


”ooo님 들어오세요“


의사 선생님은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무표정을하고 우리를 맞이했다. 엄마가 사정상 작년 말에 했어야 하는 검사를 미뤄서 3월에 했었는데 왜 일찍 하지 않았냐고 물었다. 가슴이 철렁했다.


’그 몇 개월 늦어서 상태가 안 좋아졌다는 얘기를 하려는 건가?‘


숨이 가빠질 정도로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엄마가 너무 자주 검사받는 건 오히려 안 좋다고 들었다고 하자 그렇지 않다고 6개월에 한 번 하는 게 좋다고 대꾸를 하고는 의사가 말했다.


“지난번에 찍은 CT와 이번에 찍은 MRI 상으로 췌장에는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온몸의 힘이 다 풀리는 기분이었다. 뭐야. 괜찮다는 말부터 했어야지!! 괜찮다니까 또 안도감에 눈물이 차오르려 했지만 꾹꾹 누르고 씩씩하게 진료실을 나섰다.



“엄마, 사실 걱정했죠? 그래서 같이 오자고 한 거죠?”

“아니? 나 그냥 너랑 데이트하고 싶어서 오라고 한 건데?”


치. 엄마도 겁났으면서. 엄마는 아직도 내 앞에서 약한 척은 하지 않으신다. 내가 아직 믿음직스럽지 못해서겠지.


오늘따라 봄이 터진듯하게 날이 좋아서 우리는 손을잡고 좀 걸었다. 걸으면서 생각했다. 병치레가 잦았던 내 어린 날, 엄마는 나를 병원에 데리고 다니면서 얼마나 가슴을 쓸어내린 날들이 많았을까. 그런데 내 앞에서 엄마는 한 번도 불안해 보인적이 없었다. 그래서 엄마가 옆에 있으면 그냥 다 괜찮을 거 같았다.


언젠가 엄마와 이별할 날이 올 것이다. 그것이 아주 먼 미래이길 바라며 오늘부터 난 더 몸도 마음도 건강해지려고 노력할 것이다. 엄마가 무섭고 힘들 때 내 앞에서 마음껏 약해질 수 있도록. 나에게 그렇게 할 수 있는 시간이 더 주어졌음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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