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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 소여 Aug 03. 2024

부부싸움은 칼로 삼겹살 베기

INFJ 간디 남편

'둘 다 퇴사하고 부부가 하루종일 붙어있으면 더 싸우지 않냐?'

고 묻는 사람들이 많다.



그야~  

당연하지.

같이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좋은 시간도 싸울 시간도 둘 다 길어지는 법이잖나.

모든 게 다 좋기만 하면 그게 이상이지 현실이냐? 호호



결혼을 해본 유경험자들은 아시겠지만

연애 싸움과 부부 싸움은 매우 다르다.

연인들 다툼의 주원인이 '사랑'이라면,

부부의 세계는 다르다.

상상 이상으로 주제도 버라이어티하고

그 이상으로 사소하다 못해 유치하다.


그리고 눈치챘겠지만

오늘 우린 싸웠다.



그 원인 또한 아주 사소한 일이다.

제주에 와 한달무렵이 지나자 아이들 머리가 제법 길어 도무지 이발을 미룰 수 없게 되었다.

미용실에 가면 되는 일이지만 어린 아이들 중 머리 자르는 걸 유독 무서워하는 아이들이 있다.

우리 둘째 찬이가 그러하다. 그나마 낯선 미용실보단 집에서 편안한 마음으로 자르는게 아이의 반발을 낮출 수 있어 집에서 자르곤 하였다. 그래서 오늘도 찬이를 집에서 잘라보기로 하였는데, 그게 화근이 되었다.

 

아이는 오늘따라 가위질에 더 크게 거부감을 느끼며 날카로워져 있었고,

그런 아이를 잡느라 우리까지 같이 날카로워진 상태에서

서로의 발작버튼을 누르게 된 것이다.


남편이 먼저 아이 이발을 시작하기도 전에 2층으로 박차고 올라갔고,

남겨진 나는 분하지만 일단 혼자서 머리를 잘라보는데

화가 치밀어오를수록 더 보란 듯이 잘 잘라 보이고 싶은 마음에 우는 아이를 달래 가며 예술혼을 불태워 혼신을 다해 자른다.

다행이 분노의 힘으로 결과물은 좋았으나

다 자르고 나니, 더욱 감정에 집중할수 있게 되고 분이 안 풀린다.

뭔가 나도 똑같이 자리를 벅차고 떠나는 액션을 되갚아 주고 싶은데 2층은 벌써 선점당했으니,

1층에서 갈 수 있는 남은 곳이라곤 집 밖! 출가를 택한다!

우 쉬...

그렇게 씩씩거리며 집 앞 밀크티 맛집에 가서

씩씩거리며 밀크티를 한잔 시켜 마시는데

뭐야, 너무 맛있잖아 - - !!


달콤함의 위력으로 가라앉고 있는 분노를 억지로 끌어모으며 가져온 다이어리에 분노의 데스노트급 일기를 휘갈겨본다.


그러나 분노를 유지시키기엔

밀크티가 너무 달달하다.

자꾸 기쁨이가 불쑥불쑥 튀어나와 화남이가 당황스럽다.

이 밀크티 카페는 작년 친구들과 표선 여행 처음 만났던 가게로 그땐 아주 작은 가게였는데,

인기가 많아져 어느새 넓고 좋은 위치로 확장이전하였다.


작년 표선 여행에서 돌아온 후 이 밀크티가 그렇게나 다시 먹고 싶었었는데,

지금은 집 앞이라 매일 먹을 수 있고, 이렇게 부부싸움 후 쉼터가 될 줄이야.;;

데스노트도 무력화시키는 마성의 밀크티




남편과 나는 같은 직장 내 사내커플이었다.

그것도 같은 팀 내 팀장과 막내 부하직원으로 만났다.

9살의 나이차로 나이도 직급도 차이가 커 쉽게 짝지을 수 있는 관계는 아니었다.

그런 우리 관계의 시작점을 만든 건 나였다.

 "팀장님 크리스마스에 저한테 술이랑 밥 사주실래요??"



내면이 가득 차다 못해 흘러넘치는 여유와 배려로

향기로운 꽃 주위에 자연스럽게 벌 나비들이 모여들듯 사람들이 항상 주변에 모여있는

일도 인성도 완벽한 사람.


INFJ인 그는 자신의 여유로움으로 곁에 있는 사람을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보물 같은 사람이라,

우리의 결혼이 회사에 알려졌을 때 질투하는 사람이 많았다. 특히 남자들이 - -;;

일종의 회사 공유재를 내가 독점하는 것 같은 미안함까지 들기도 했다.

세심한 공감력으로 모두가 두루두루 빛날수 있게 조화를 중시하는 INFJ   (사진출처: https://blog.naver.com/yourweekend/222259903819)


나를 나보다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주고 믿어주는 그가 아니었다면

절대 죽을 때까지 고생해 취업한 회사를 그만두고, 대책 없이 제주에 오는 과감한 행동을 저지를 용기를 얻지 못했을 것이다.

이건 확신할 수 있다.  


이렇게 맛있는 밀크티도 매일 먹을 수도 없었겠지..

쒸. ..

.

.


 '나온 김에 장이나 볼까?'

(행복이 WIN )





'뭐야~~~ 제주 물가 비싸다더니

하나로마트 해산물 너무 싸잖아??

제주 생물갈치가 한 팩에 5900원에

회덮밥 횟감이 한가득 7500원

딱 봐도 마트초밥보다 고퀄인 초밥이 8000원

뭐야 뭐야~~ 나 럭키비키자냐~~~♪♬'

를 속으로 외치며 신이나 장바구니를 채운다.

문득 '아 맞다. 나 지금 화나있지;;' 

하게 분노의 행방을 찾아 보지만, 이미 행방불명이다.



한가득 장을 봐 집에 막상 들어가려니

너무 빨리 돌아왔나 싶으면서

양손 가득 장바구니를 들고 있는 내 모습에 급 수치심이 밀려오지만....

냉장 상품이 많아 신선도를 위해 서둘러 들어간다.(후다닥..)


집에 돌아오니 모두 낮잠타임 - -;;;

 '뭐야, 나 없으면 찾아야지 뭐 이렇게 세상 잘 자~!?'

다시 좀 분노가 차오르려다 오늘 사건의 근앙지

둘째 찬이가 깬다.

음.. 분노 에너지로 공들인 덕분에 평소보다 잘 자른 것 같다며 만족하고 있는데, 첫째도 따라 깨어난다.

그리고 아기새들 마냥 밥 달라고 짹짹 인다.

짜장라면을 하나 끓이는 동안에도 자기들끼리 좋다고 마당을 뒹굴며 논다.

엄마아빠의 기분에 영향받지 않는 우리 아이들. 해맑아서 좋다 하하핳ㅎㅎㅎ


턱이 빠질 듯 입을 쩍쩍 벌리며 폭풍흡입하는 아기새들.


그렇게 화기애애하게 마당에서 놀고 있는데

위에서 내려오는 남편의 발소리가 들린다.

아 음 나 어떤 포지션을 취해야 하지? 고민하는 찰나에 남편이 먼저 선방을 날린다.


"우린 뭐 먹어?

. . 어제 삼겹살 먹고 싶다며

 먹으러 갈까?"


이에 내 대답은



"엉 배고팡"


치익~~ 부부싸움은 칼로 삼겹살 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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