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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 소여 Aug 10. 2024

썩은다리오름의 발견

올레길 10코스의 낙원

많은 사람들이 자연을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 말은 자연의 매력이 마음에 들고 거부감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밖으로 나가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고 기뻐하면서도 들판을 마구 짓밟고, 마침내는 꽃과 가지를 꺾는다. 그리고는 그것들을 금세 내던져 버리거나 집으로 가져와 시들 때까지 방치한다. 그런 식으로 그들은 자연을 사랑하는 것이다. 날씨가 화창한 일요일이 되면 그런 애정을 기억하면서, 자신들의 선량한 마음에 스스로 감동한다. 그들은 사실 자연을 향한 착한 마음이 필요 없다고 한다. 그 까닭은 "인간은 자연의 왕관"이기 때문이라나. 그래, 왕관일지 모른다!
나는 점점 더 탐욕스럽게 사물들의 심연 속을 들여다본다. 바람이 무수한 소리를 내면서 나무를 꼭대기에서 울리는 것이 들린다. 시냇물들이 협곡을 쏴쏴 줄기차게 소리 내며 흐르는 것이 들린다. 나직하고 고요한 강물들이 평야를 지나 흘러가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나는 이 음향들이 신의 언어인 것을 알았다. 이 어둡고도 원초적인 아름다운 언어를 이해하는 것이 낙원을 다시 발견하는 것임을 알았다.
헤르만 헤세_ [그리움이 나를 밀고간다] 중 '낙원의 발견'




오늘은 아침 일찍부터 부지런히 외출 준비를 해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평소보다 일찍 등원시킨다. 그 이유는 올레길 중에서도 절경으로 꼽히는 10코스로 원정을 떠나기 위해서다.

아침부터 맑은 하늘에 탄력 있는 구름들이 건강미를 뽐낸다. 날씨까지 완벽하다.


제주올레 10코스는 화순금모래해변에서 시작해 산방산, 용머리해안, 송악산 등이 이어져 산과 바다를 병행할 수 있어 올레꾼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 인기코스이다.


화순금모래해수욕장 주차장에 차를 대는 순간에도 눈앞의 소나무 잎 사이로 비집고 터져 나오는 하늘빛과 구름이 마음을 간지럽힌다. 올레센터와 인증 도장을 보며 인증에 목매지 않는 편임에도  오늘처럼 맑은 하늘 빛깔의 심벌 컬러가 주는 설레임에 괜스레 욕심이 난다. 요즘엔 완주 스탬프도 모바일로 바뀌어 올레 앱을 통해 완주 인증을 받는다고 한다.

제주의 흔한 주차장 뷰.jpg
실물 스탬프 vs 모바일 인증 앱


화순금해변 주차장 길이 끝날 때 즈음 무성한 수풀 속 '썩은 다리 탐방로' 표지판과 함께 올레길 리본이 보인다.

자, 본격적으로 올레길 10코스를 시작해 볼까~~


  '응????!!!???'


썩은다리오름 입구 (사진출처: https://blog.naver.com/icarus0210/221337725095)

시작과 동시에 가파른 각도의 등산 초입 계단이 우리를 맞이한다.


 ' 어서 와~~ 10코스는 처음이지? ^___^ '


거의 평지만 있었던 첫 올레길 20코스와 시작부터 매우 다르다..

일명 '썩은다리 오름'을 시작으로 이어지는 10코스는 시작부터가 산이다. 그것도 격하게 가파른 계단으로 시작하는..

이름처럼 내 표정도 썩어가기 시작한다.


두 눈 질끈 감고 계단을 단숨에 쉬지 않고 오른다. 몸을 풀기도 전에 시작부터 강도 높은 워킹으로 다리 근육이 바짝 긴장된다. 하물며 롤러코스터도 처음엔 천천히 오르막길을 오르며 긴장감을 서서히 높이는데, 이번 올레길은 자비란 없다. 라는 생각도 잠시. 긴 계단을 오르자 우리의 수고를 치하하듯 올레 리본이 나뭇가지 중앙에서 펄럭인다. 그리고 리본 뒤로 펼쳐진 놀라운 절경이 좀 전의 노고를 바로 잊히게 한다. 힘들게 오른 만큼 높은 고도에서 펼쳐지는 '하늘과 바다 그리고 산방산'. 이 조합이 만들어낼 수 있는 마법이란 자연을 처음 보는 외계인이라 해도 경외하게 만들 만큼 걷는 내내 입을 다물지 못한다.

'썩은 다리오름' 이름의 유래
 제주 보통의 오름들이 현무암(용암이 굳어진 암석)으로 구성된 것과 달리 응회암(화산재로 만들어진 돌)으로 덮어져 바위들이 무르고 쉽게 부서지며 색깔도 누래 썩은 것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직접 눈으로 본 썩은다리오름은 썩었다는 표현과는 조금도 어울리지 않는 곳이었다. 시작부터 속성으로 높은 지대에서 시작한 덕에 트래킹 내내 높은 고도에서 한껏 매력적인 구름과 가까운 위치에서 반짝이는 바다의 윤슬을 내려다보며 봐도봐도 익숙해지지 않는 산방산의 위엄을 계속 눈 앞에 두고 걷는 느낌은 정말이지 나도 신까진 아니어도 최소한 그 가까운 존재가 된 것만 같다.


이 중 최고의 포토 스팟은 산방산을 마주하고 내리막길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고지대에서 시야를 막는 나무들 없이 맨몸으로 산방산과 맞닥뜨리는 순간은 가슴이 뻥뚫리고, 위엄있는 산방산과 어깨를 나란히한 친구가 된듯한 우월감까지 몰려든다. 여기서 사진 셔터를 누르지 않는 사람은 대단한 참을성을 가졌거나, 감수성이 1도 남아있지 않은 사람이거나 아니면 둘다 이거나.


10월 가을 아침의 쌀쌀함에 꺼내온 외투는 금새 허리 춤에 질끈 묶인다. 중간중간 올레길 리본들의 손짓에 이끌려 오름 위를 구름과 함께 걷다, 숲 속으로 포근한 잎사귀들의 그늘에 싸였다가를 반복하는 오르내림이 너무 즐거워 발걸음이 절로 날아다닌다. '낙원의 발견'이다.

 

♥︎


그렇게 1시간 가량을 천천히 썩은다리오름의 유희가 끝나자 이제 숲이 만들어준 그늘막에서 벗어나 해안가로 접어들며 햇볕을 직접 맞는다. 오늘따라 생수 한병 챙겨오지 않은 것을 후회하며 밀려오는 갈증과 함께 아까 업됬던 기분이 햇빛에 스르르 녹아 내리려는 찰나에..!


신은 내게 카페를 내려주셨다.

그것도 초대형으로.

올레~~~!!!!

오늘따 낙원이 자주 발견된다.





진심으로 신난 뒷 모습과 급 상승한 여유의 옆태

카페는 관광객으로 붐비는 아주 핫한 카페였다.

황우치해안을 안방으로, 산방산을 거실로 삼은 엄청난 위치의 카페는 시설까지도 아주 휴양지풍에 핫플일 수밖에 없는 모든 요소를 다 갖춘 곳이었다. 단점이라고 한다면 엄청난만큼 가격도 엄청나다는 것..

 아메리카노 7500원, 햄버거 18000원까진 웃어넘길 수 있었지만, 에이드 12000원은 하.....

그래도 카페 경관도 내부도 방문객을 들뜨게하기에 너무 완벽한 분위기였기에 높은 가격의 가치를 음식에만 매길 수는 없으리라.

그렇게 신이 내려준 카페의 은혜를 만끽하며 맛있게 브런치를 먹고, 다음 여정을 이어가기전 잠깐의 휴식이라기엔 호화스러운 쉼을 즐기고 있는데...

이때 어린이집에서 걸려오는 전화.

대낮에 어린이집에서 걸려오는 전화는 백이면 백 희소식은 아니다.

 "어머니~ 율이가 갑자기 열이 38도가 나서요. 어떻게하면 좋을까요?"


지금가도 1시간 넘게 걸리는 거리. 바로 자리를 벅차고 일어난다.


아이의 열로 급 종료된

올레길 10코스 여행기 끝.




P.S.

아이는 흔한 감기치레로 병원에 다녀와 휴식을 취하곤 다행히 하루만에 열이 잡혔다.

(걱정해주신 류귀복 작가님 댓글보고 급 추신을 추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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