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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 소여 Oct 13. 2024

프롤로그. 설섬행 비행기

이륙하는 비행기 창밖으로 가득한 고층 건물들을 보며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메마른 느낌.


이렇게까지 힘들게 이주해야 하나?

제주살이 3개월로 충분하지 않았나?

평생 살던 곳을 굳이 떠나 부모님들께 손주를 자주 못 보는 불효를 하면서까지?

그렇다고 딱히 여기서 할 수 있는 일거리도 없는데..



여기까지 오는 과정이 너무 힘들었던 터라 지친 신체는 정신까지 갉아먹는다.

내가 진짜 원하는 일인지,

왜 원했는지도 기억이 안 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피곤한 몸을 좌석에 묻어 잠을 씻을 때쯤 앞 비행기로 인해 상공에서 착륙 대기 중이라는 방송이 나온다. 


'벌써 다 온건가?'


의자에 이대로 몸을 묻고 싶은 마음이 커 계속 대구도 제주도 아닌 이 어중간한 공간에 둥둥 떠있고 싶다.


의지에 아랑곳하지 않고 도착한 이곳.

다시 돌아온

제주.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한 달 새 완전히 달라진 세상에 깜짝 놀란다!

못 보던 사이 왕권이 바뀌어버린 이곳.

설산으로 변모한 왕 '한라산'.

그는 온 세상을 안을 듯 지엄히 두 팔을 벌려 길게 우리를 맞아준다.

설섬이 되버린 제주도의 예상 못한 환영식에 기억상실증 환자는 모든 답들이 불현듯 떠오른다.


내가 왜 그토록 이곳을 고집했는지.  

멀쩡한 사랑니 빼듯 편안한 고향을 왜 고생을 사서 하면서까지 빼버리고 와야 했는지.

잠시동안 잊고 있던 모든 이유를 생각나게 했다.


온 세상이 되어 나를 내려다보는 설산의 위엄에 고개를 숙이며 흔들리던 모든 잡다한 고민들이 사라진다.


제주여야만 했다.

이 자연 곁에서 나 또한 사람이 아닌 '자연'일 수 있는.

가장 '나' 다울 수 있는

내 인생 가장 주체적인 선택.






.

.

.



제주행 야간비행기 2탄.

<설섬행 비행기>가 시작됩니다.





사진 출처: https://blog.naver.com/plus1500/221185624384?photoView=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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