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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 소여 Nov 03. 2024

제주살이 세 번째 이사

첫째 율이의 독감 종결로 나흘 만에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등원했다. 아직 나는 첫째에게 옮은 독감의 여파가 남아 기운이 없지만 늘어져 있을 시간이 없다. 왜냐하면 내일이 제주살이 세 번째  이삿날이기 때문이다.  


세 달의 제주살이 중 조천, 표선, 남원의 특색이 다른 집에서 각 한 달씩 예약을 하였었고, 어느덧 그 마지막 한 달이 도래하였다.


진짜 이사도 아니고 숙소를 이동하는 것뿐인데 뭐가 그리 힘들까 의문이 드는 독자도 있을 수 있다.  [03화.제주행 야간비행기]에서 언급했듯이, 아이 있는 집의 달치 짐(그것도 여름-가을-겨울 계절이 다 걸쳐진) 싸기는 가전가구 빼곤 거의 다 필요하다고 볼 수 있으며, 포장이사가 아니니 다 직접 싸야 한다.


유년기에는 부모님 손에 이끌려 이사를 몇 번 해본 적은 있지만, 그 당시에 이사 짐 싸기는 부모님의 몫이지 아이의 영역은 아니어서 이사는 매일 머물던 곳을 옮기는 그저 재밌는 이벤트였다. 그리고 성인이 되어 결혼 후엔 첫 신혼집에서 쭉 살아 한 번도 이사해 본 적이 없었다. 평생 이삿짐 싸기 무경력자였던 나는 제주살이를 통해 한 달에 한 번씩 지금까지 세 번째 이삿짐을 싸고 있다.


   , 이삿짐 싸기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바로 '밥 먹기'이다.

일단 동네 정식집에서 배를 든든하게 채운다. 제육볶음, 굴비, 여러 가지 방금 채린 집반찬들의 조합은 독감으로 미지 입은 체력을 어느 정도는 회복시켜 주는 듯하다.

자, 이제 힘을 내볼까~?

한국인은 밥이 보약이지


박스를 만들고, 분류별로 담고, 박스 패킹 후 분류를 표기하고..

부부 이삿짐센터는 최근 다수의 경험으로 의논도 없이 바로 자기 역할을 분담한다.

부피는 작지만 세밀한 접기와 카테고리별 분류가 필요한 의류와 부피는 크지만 다루기 쉬운 아이들 장난감을 내가 맡고,

사실상 그 외 거의 대부분은 남편이 맡는다. 완벽주의 INFJ 남편의 세심함은 깨지기 쉬운 것들도 신문지나 뽁뽁이 따위로 아주 꼼꼼히 포장한다. 꼼꼼하다 못해 살짝 지나쳐 나중에 벗기는 게 힘들긴 하지만 짐들은 여태껏 한 번의 손상도 없이 전했다. 또한 자의 대체로(?) 타고난 공간 지각력으로 테트리스도 잘해 박스 에 버리는 공간 하나 없이 알차게도 싸는 훌륭한 일꾼이다. 


안녕- 두번째 집.



드디어 이삿날.

마지막 집은 아이들 어린이집 근처인 남원이어서 아이들을 등원시키면서 한차례 남편이 다녀오는 동안 잔잔하게 남은 소품들을 마지막까지 담고 냉장고에 있던 식재료들을 담는데도 준비한 박스 크기를 넘어선다. 이제 더 이상의 상자도 없어 집에 있는 비닐이나 하다못해 종량제봉투까지 총동원된다.


남편이 돌아와 승용차로 총 두 번을 왕복해 차 가득 짐을 실었음에도 짐이 남았고, 무엇보다 퇴실시간이 임박해 일단은 남은 짐을 다 밖으로 꺼내기부터 한다. 조수석까지 짐을 싣어야 할 판이어서 마지막엔 택시까지 동원해 차 2대로 따로 이동하고 나서야 기나긴 짐 빼기가 끝이 났다.

퇴실 시간 임박에 밖으로 몽땅 꺼낸 남은 짐들.(..심난;;)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우리의 제주살이 마지막 집.

택시를 탄 내가 먼저 도착해 좁은 길 끝에 집이 보인다. 처음 와본 곳이라 안쪽 구조를 몰라 혹여 더 들어갔다간 택시 기사님이 차를 돌려 나올 공간이 없을까 하여 길 입구에서 하차한다. 짐으로 꽉꽉 차 한껏 무거워진 캐리어를 낑낑대며 끌고 가려는데.. 아차!! 길이 자갈돌 길이다;;; 캐리어 바퀴 돌 틈에 박혀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다. 


낑낑거리다 숨을 고르려 고개를 들자, 기다란 신비로운 비밀의 숲길 끝에 동화 속 같은 다홍색 지붕이 장난기를 가득 머금고 놓여 있다. 그 순간 마법에 걸린 것처럼 스르륵 캐리어를 잡고 있던 손이 풀리면서 홀린 듯 집 쪽으로 이끌려 어간다. 좁은 골목길의 좌측엔 황 귤밭이 탱그르르르 웃고 있고, 우측엔 키 큰 동백나무 잎들이 초록의 건강한 윤기를 빛내며 성벽을 이룬다. 좁은 길을 따라 스무 걸음 정도 들어가야 보이는 집의 배치는 현실 세계로부터의 단절을 위한 통로인 것만 같아 들어가는 내내 궁금증과 기대감으로 가슴이 콩닥 인다. 도착한 곳은 3개월 제주살이의 마지막을 안아줄 우리의 거처이자 내가 꿈꾸던 비밀 정원을 간직한 나의 이상향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곳은 사실 제주살이를 준비할 때 가장 내가 꿈꾸던 집과 가까워 기대가 큰 숙소였다. 실물을 맞자 11월의 가을 꽃나무들과 흙 속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는 철 지난 생명들이 자연스럽게 뒤엉킨 울창한 정원과 그 정원보다 더 고 따스한 마음을 가진 주인분이 기다리고 있었다. 가을의 해바라기를 닮아 햇살 가득 환한 미소를 가진 그녀는 키가 크고 서구적 외모의 50대 성으로 우리 아이들을 진심으로 귀여워하며 맞아주었다. 그러면서 첫 만남에 마당 화로 숯불로 고기를 구워주겠다며 얼른 우리 보고 앞다리살 한팩만 사 오라며 재촉하신다. 사실 밥보단 짐 정리를 내심 더 하고 싶었지만, 초면에 이렇게나 진심으로 따뜻하게 맞아주시는 주인분이 고마워 실례를 불구하고 고기파티를 하게 되었다.

지글지글~~..

우리의 마지막 집에서의 첫날밤이 저물어 간다.

이제 또 이삿짐을 정리하는 일이 남았지만, 그보다 더 큰 설레임이 살포시 덮어준다. 이 동화 속 같은 곳에서 지낼 한 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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