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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 소여 Oct 20. 2024

진심 한 방울

아침에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오늘은 남편과 각자 일과를 보내기로 한다. 나는 몇 주간 가족들의 방문으로 소홀했던 브런치글에 집중하고자 함이고, 남편은 혼자 사색하며 고자 함이었다.


나는 각 잡고 글쓰기 좋을만한 장소를 검색하다 탁 트인 바다뷰의 쇠소깍 부근 카페를 정한다. 그러자 남편도 본인도 그쪽 올레길을 걸을 예정이라며 같이 차를 한잔 나눈 후에 각자의 시간을 보내기로 한다.


제주의 놀라운 점은 두 달 가까이 머무는 동안 매일 자연의 경이에 놀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더 놀랄 일들이 남았다는 거다. 해안가 바로 앞 위치한 대형평수의 카페는 멋진 바다뷰와 달리 차분한 인테리어와 한적해 보이는 한마디로 너무 핫플이 아니라 집중하기에 적합한 장소 같다. 그리고 1층에서 커피와 베이커리를 주문하고 오션뷰를 편안히 내려다보기 위해 2층으로 향하자, 통창에 담긴 제주의 바다는 또 한 번 입을 틀어막게 만든다.

현재 아침 9시에 떠올라 있는 태양 빛을 하나도 빠짐없이 다에 담아 데칼코마니 하는 눈부심과 파도의 일렁임을 따라 더 밝게 부서지는 빛의 출렁임.  잠시도 멈춰있지 못하는 빛의 춤을 넋을 놓고 한참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이 바다를 담기만 해도 어떤 장식보다 아름답다는 것을 이해한 카페의 인테리어는 어느 화려한 카페들보다 아름답고 편안했다. 노출 콘크리트 기법의 내외부 설계로 전반적으로 시멘트 컬러가 주를 이루고, 거기에 가구들은 밝은 톤의 우드로 통일하여 힘을 뺀 담백한 인테리어에 바다 쪽은 최대한 통창으로 뚫어 바다를 담아내는 것에 진심인 의도가 느껴진다. 블라인드가 바다를 닮은 은은한 에쉬블루 컬러인 것만 봐도..

화려하지 않은 아름다움에 감동을 느끼며 놀라운 점은 이런 멋진 카페가 물론 평일의 이른 아침시간이긴 했지만 한적하다는 것이다. 와 동시에 '왜 나는 핫플이 아닌 곳에만 감흥을 느끼는 것인가?' 곰곰이 생각해 보게 다.


핫플. 대중적.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장소들을 왜 나는 좋아할 수 없을까?

사람이 많아서? 북적이는 게 싫어서??

그렇다기엔 딱히 조용한 시간대에 가더라도 여전히 별로다.

왜일까? 내가 별난 걸까?


한참을 고민해 보다 핫플과 핫플이 아니지만 내가 좋아하는 곳들의 근본적인 차이점을 발견하게 된다.

'대중성'이냐, '진심'이냐.


돈을 목적으로 하는 곳들은 상업성을 위해 다수를 아우를 수 있는 렌디한 즉, 최대한 넓고 얕은 취향에 포커스를 맞춘다.


반면에, 진심인 곳들은 포커스가 다수의 타인이 아닌 사장 한 명에게 있다. 자신이 보여주고 싶은 철학이 있는 것이다. 비록 다수를 만족시키지도 못하고, 촌스럽다거나 심오하다는 평을 들을지라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에겐 비록 물건을 지언정, 진심 없이 영혼을 팔지는 못하는 것이다. 타인의 평가보단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것이 더 중요한 예술 작품과도 같이.

 

그래서 진심인 곳에 가면 사람들이 흔히 좋아할 만한 세련된 장식이나 트렌디한 메뉴들도 없고 맛도 자극적이지 않다. 대신 진심 한 방울이 담긴 작품과도 같은 상품을 알아볼 줄 아는 이에겐 영혼을 즐겁게 한다. 


'SNS용 보여주기'가 가장 중요한 대중들에게 '영혼의 기쁨'이란 타인의 인정에 비해 조금도 중요하지 않다. 그러므로 남들이 맛있다는 데엔 다 이유가 있을 거라 여기고 후기가 많은 곳에 방문을 한다. 심지어 맛을 본 후에도 맛의 판단을 타인에 맡기기까지 한다. 다들 맛있다고 했기 때문에, 고로 나도 맛있다. 타인의 시선이 중요하다 못해 스스로의 감정까지 타인에게 판단을 위탁해 버리고 있다.


물론 맛과 미는 개인의 취향이므로 정답이 없다. 하지만 '유명=실력'이라고 평가에 신경 쓰는 곳과 평가보단 자신이 보여주려는 것에 집중하는 곳. 그것이 다수를 아우르지 못해 돈이 덜 될 거라는 걸 앎에도 흔들리지 않는 철학을 가진 곳을 나는 알아볼 줄 알고, 더 가치 있게 여긴다.

이는 내 글쓰기 철학이기도 하니까.

물론 최고의 경지는 언제나 Balance(대중성+작품성)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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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잡생각들을 하는 사이 남편은 이미 올레길을 나선 지 오래고 9시에 들어와 동쪽에 있던 해가 어느덧 1시를 넘어섰다. 나 민폐 카공족(카페에서 공부하는 종족)인가.. 생각이 들면서 어느덧 가벼운 허기가 느껴진다.

애매하게 남은 시간 동안 어린이집 인근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고자 근방에 봐둔 맛집에 혼밥 하러 가본다. 깔끔하고 정갈한 '흑돼지 제육볶음 정식' 하나만 파는 단일메뉴 가게이다. 오늘은 철학 있는 가게들만 다니고 있는 듯하다; 어쩌면 유유상종인건가..?



아이들 하원시간이 되어 데리러 간다. 그리고 집 앞 표선 바닷가에 놀러 간다. 여전히 광대하고, 옅고, 따뜻한 표선 바다를 확인하곤 차에 상시로 준비해 둔 수영복으로 꺼내 입힌다.  


진흙에서 아기 꽃게를 잡아들고 신이 나 작은 발로 작은 물방울들을 튀기며 까르르 뛰어다니는 둘째와, 투명한 물속 작고 투명한 물고기 떼들을 맨손으로 진지하게 잡아보겠다고 온 정신을 집중해 포기도 모르고 쫓는 첫째 아이.   


아침의 카페에서 오늘 하루 볼 수 있는 최고 햇살 이미 다 보았다고 확신한 내게, 하늘에서 바닷물을 타고 황금 카펫이 발 앞까지 펼쳐진다. 굳이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이미 행복한 우리에게 자연은 어디 더 행복에 배 터져 보란 듯이 이런 '엄청난 일몰'을 던져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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