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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의 삶

by 킴 소여 Nov 11.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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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내내 짐 정리를 끝내고, 깨끗이 비워진 거실 쇼파에 털썩 앉는다. 그제야 정원의 아름다움이 보인다. 이 집은 건축가였던 주인이 거주 목적으로 직접 설계하고 10년을 살던 집이어서 안락함과 견고함이 다른 숙소에서 느껴본 적 없는 깊이가 느껴진다. 그리고 도예가이신 여사장님이 직접 만든 도자기 식기들과 목재 가구들에서 애정이 묻어있다. 화려하고 세련된 새집이 아닌, 추억과 사랑이 보이는 손때 묻은 이 집의 모든 것이 무섭도록 좋아진다.


아침에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남편과 집 앞 마트에서 장 봐온 소라를 세척하여 삶는다. 칼국수 물도 같이 올린 후 야채들을 송송 썬다.

러브레터의 OST를 겨울의 따사로운 햇살과 함께 섞어 칼국수를 한 젓 집어 김을 후 분다. 호사로운 정원을 바라보며 먹는 이 아침에  

가슴이 벅차 이 순간을 잡아보려 사진을 찍다가 언제나처럼 금방 일기장과 펜으로 바꿔 집어든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브런치 글 이미지 2


글을 쓴다는 것.

현재를 잡아두고 싶은 욕망.

사라지는 지금에 대한 영원성.


이를 위해 가장 많이 쓰는 수단이 요즘은 사진이다.

누구나 쉽고 빠르게 담을 수 있지만, 그대로 담기엔 한계가 있고, 잘 찍으려 하면할 수록 정작 본인 자신은 지금에 집중하지 못하는 딜레마가 있다.


반면에 글은

저자의 표현력에 따라 담을 수 있는 정도와 너비의 차이가 매우 크고, 담고 싶은 지금을 실컷 만끽한 후에 기록해도 늦지 않아 현재 순간에 집중할 수 있다.

나는 사진과 글을 모두 사용하지만, 간절한 순간은 글을 택한다. 사진으로 담을 수 없는 시각적 이상의 감정 그 어떤 것을 담아야 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바로 지금처럼.

아침 햇살을 머금은 정원을 바라보며 먹는  칼국수를 담고 싶은 때와 같이..


 

문득 일기장을 넘기다 제주에 오기 전 후의 일기장 밀도 차이가 엄청나다는 걸 발견한다.

전은 주말에만 일기가 적혀있다면

후는 모든 날들이 칸이 부족할 정도로 가득 차있다.


일주일 중 이틀만 살아있던 삶과

7일 모두 살아있는 삶.

매일이 담고 싶어 사진과 일기장이 가득 차는 날들.


  주를 2/7로 보내는 나날들이 쌓이는 삶과

  주를 7/7로 가득 채워 보내는 날들이 쌓인 삶이

1년, 2년, 10년.. 50년을 채워간다면

이 두 길의 끝에 서있을 나는

얼마나 다른 사람일까?

브런치 글 이미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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