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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샘 Oct 20. 2021

내가 밥에 집착(?)하는 이유

B급 교사이지만 오늘도 살아남았습니다.

 

“입맛이 없어. 난 밥 안 먹을래.”

 “......”


 요즘 따라 머리 아픈 일들이 많이 생긴

'우리 집 큰 아들'에게 이 말을 들을 때마다, 혈압이 오를 것처럼 뒷 목이 뻐근했다.

(우리집 큰 아들은 남편을 의미한다. 그리고 남편대신 짝꿍이라는 말을 자주 쓴다.)


 ‘나는 왜 저 말에 화가 나지?’


 설거지를 하면서 마음을 조금 가라앉혀보았다. 나는 왜 ‘밥’을 안 먹겠다는 짝꿍의 말에 화가 났을까?




 나는 육 남매 중 4번째이다.

‘밥’을 안 먹는다는 건 있어서도 안되고, 있을 수도 없는 [도발]이었다. 본능적으로 살아남기 위해 ‘밥’을 챙겨 먹었다. 우리를 키워주신 증조할머니와 부모님께 욕을 얻어먹기 싫었던 이유가 더 크기도 했다.


 학창 시절에는 밥 먹는 ‘급식’ 시간이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가정통신문은 잘 챙기지 않아도 급식실 메뉴판은 꼭 챙기는 아이. 그 아이가 바로 나였다. 급식시간 종이 치면 쏜살같이 달려가서 누구보다 빠른 위치를 선점하는 맛이 있었다. 그래서 달리기 실력도 늘었나보다.


 중환자실 간호사로 일하면서는 입맛이 뚝뚝 떨어지는 일들이 많았다. 환자들이 피를 토하는 경우나 대변에도 피가 나오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 모든걸 간호하는 역할이 나..)

 패혈병 치료 중인 환자는 온갖 구멍에서 피가 나오는 일들도 있었는데, 중환자 중에 중환자들을 맡고 있을 때에도 밥을 안 먹겠다는 나의 말에,  선배 간호사들은 이렇게 말했다.


 “너 혼자 환자 보냐? 당장 나와”

 “...... 네”


 저 경력 신규 간호사들은 선배들의 말이 법이다. 오죽하면 간호사들이 후배를 ‘태운다’고 표현하겠는가. 화형을 시키듯 불에 활활 태우듯이 괴롭힌다는 뜻이다. 선배의 말은 하늘과 같아서… 특히 나는 어린 시절부터 형제들 사이에서 눈칫밥으로 살아온 터.. 여기서도 살아남기 위해 나는 먹기 싫은 밥을 먹어야 했다. 


 중환자실 간호사들은 거의 5분 정도면 밥을 다 먹었다. 더더욱 신기한 건 그 시간 안에 다양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선배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맞장구를 치고, 동시에 넘기기 힘든 밥을 꾸역꾸역 집어넣었다. 지금 생각하면 5분 정도에 밥을 먹으며 이야기 했던 건 초능력이 아닌가 싶다.




 교사가 된 지금은 밥을 더욱더, 억지로, 천천히 먹는다. 음미하면서 최대한 먹으려고 노력다.


 학생이 아닌 보건교사인 나를 급식실에서 찾아오는 학생들이 있다. 

매일은 아니어도 자주 있는 편이라, 이제는 그러려니 하면서도 지칠 때마다 나만의 목소리가 들린다.


 ‘나. 도. 밥. 좀. 먹. 자.’


 코로나-19가 터지고 학교 급식을 끊었다. 도저히 밥을 먹으러 갈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대신에 과일이나 샐러드를 도시락으로 싸와서 혼자 보건실에서 밥을 먹었다.


 똑. 똑. 똑.


 그나마 노크라도 하고 들어오는 사람은 양반이다. 보건실 문은 언제든지 열리는 자동문이 된 지 오래다. 언제 위급한 일이 터질지 모르므로 나 몰라라 잠가 둘 수도 없다.


 “으응~ 들어와."


 입 안에 밥을 한입 가득 넣고, 오물오물거리면서 겨우 대답을 했다. 크던 작던 아파서 온 학생들에게 처치를 하고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잔뜩 잔소리를 하고 교실로 돌려보낸다.

 솔직하게 말해서 나는 감정이 풍부한 교사인지라 힘이 들 때면 학생들에게 더 많은 교육적 훈계(?)를 하게 된다.




 ‘우리 집 큰 아들은 훈계가 안 통하네…’


 서론으로 돌아가 보자. 5년을 알고, 함께 살아온 내 배우자가 밥을 안 챙겨 먹는 이유를 나는 알고 있다. 

내 경험으로 ‘밥’을 안 챙겨 먹는 그 상황을, 

스트레스받아도 밥은 챙겨 먹어야 살아남는다는 나의 집착이 올라온 것이다.


 나를 알았으니, 다시 그에게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저 한숨만 크게 쉴 뿐… 

나는 아직도 그릇이 아주 작은 교사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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