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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샘 Oct 23. 2021

한 학생의 상처로 교사는 'ㄴㄷㅇ'을 배웁니다

B급 교사 인생이지만 오늘도 살아남았습니다



 환절기, 건조해지는 손톱 옆 삐죽 고개를 내민 살점 하나가 뜯겼다. 자꾸 신경 쓰이는 상처를 보며 나도 모르게 멍 때리기를 시작했다.




 하굣길 학생들이 우르르 몰려나간다. 

 까르르 웃는 소리, 어깨동무하며 부딪치는 소리, 장난스레 키득키득 거리는 소리… 개성 넘치는 학생들의 음성이 온 복도에 울린다.


“야야~ 마스크 제대로 껴야지!”

“거리두기 좀 하자. 쪼옴!!”


 교사인 내가 목청껏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소용없다. 북한군도 무찌른다는 중학생 아닌가. 그래도 선생 말이라도 들으려 노력하는 아이들이 기특할 따름이다. 내 앞에서는 잠깐 잘 따르다가도 친구들과 있으면 곧 무장해제되는 아이들의 노오력을 모른 척 눈감을 때도 있다. 잔소리만 하는 내 모습이 내가 생각해도 싫기 때문이다.


‘나도 기분 좋게 애들이랑 인사하고 싶다.’


 생활지도뿐만 아니라 개인위생까지 교육해야 하는 보건교사의 입장에서 아이들을 보면, 하나부터 열까지 다 잔소리뿐이다. 학생들이 보는 내 모습은 어떨까?


 이때, 창밖으로 무리를 지어 뛰어가던 학생들이 보였다. 그중에는 학창 시절의 내 모습처럼 꼭 아래를 잘 쳐다보지 않다가 잘 넘어지는 아이는 꼭 있다. 그 학생의 별명은 ‘철퍼덕’이다.


“으악!”

 오늘도 앞으로 꼬꾸라진 철퍼덕의 주변이 더 가관이다. 놀리는 아이, 웃는 아이, ‘괜찮냐’ 묻는 정도면 양반이다.


벌떡! 일어나 앞으로 뛰어가는 철퍼덕을 보며 나는 생각한다.


‘아이코, 상처를 먼저 봐주지 그래.’


 사춘기는 자기가 아픈 것보다 주변의 시선이 먼저 보이는 나이다. 사실 어른이 된 나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차라리 철퍼덕이 아프다고 엉엉 울어버리거나, 넘어져서 도움을 요청하면 덜 마음이 아플 것 같다. 당장에라도 달려가 상처를 봐줄 수 있으니까 말이다.




 앞으로 뛰어 달려 나갔던 철퍼덕은 다음 날 보건실로 나를 찾아왔다. 상처에 묻은 모래며 먼지가 아직도 남아있다.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샘 저 상처 봐주세요. 많이 아팠겠죠?’라는  표정으로 무릎을 나에게 보였다. 다행이다. 아직은 자기 상처를 살필 줄 아는 아이라서...


 “철퍼덕! 샘이 매번 말했지? 여기 봐봐. 모래가 아직도 껴있네~ 얼른 가서 물로 상처 먼저 씻고 와.”

 “쌤~ 물 대면 엄~~~ 청 아파요.”

 “알아. 내가 하면 더 아플 텐데, 어떻게 할래? 오염물 남아있으면 깨끗하게 안 나아. ”


 나는 어제 본 몸개그는 모른 척(?)했다. 학생이 스스로 치료할 수 있게 돕는 것이 나의 가장 큰 목적이기에 오늘도 기꺼이 교육적 잔소리를 한다. 하나부터 열까지 다 널 위한 소리라고 나는 나의 잔소리를 합리화하고 있다.




 철퍼덕을 보며 문뜩 하나의 물음표가 내 머릿속에 생겼다.


 혼자서 있을 때는 ‘내 상처가 제일 아프다’고 하는 아이들인데, 친구들 속에서는 자기 상처보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더 많이 의식하는 걸까?


 나는 9년 동안 학생들을 옆에서 지켜보았다. 그나마 철퍼덕처럼 내 상처를 나중에라도 살필 줄 아는 아이들은 건강한 편이다. 마음의 상처들이 곪아 터질 때까지 놔둔 채, 상처가 있다는 것을 외면하려는 아이들이 생각보다 많다. 마치 사춘기 나의 모습처럼… 이 아이들의 이야기는 기회가 허락하면 차차 글로 풀어내 보려 한다.


 학생들을 보면서 교사인 나는 배울 기회를 자주 얻는다. 객관적으로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얻는다고 해야 할까?  나는 철퍼덕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상처는 크기가 크던 작던, ‘자기 상처가 제일 아파’  그리고 넘어졌을 때, 주변보다 내 상처를 보살 필 줄 아는 사람이 되어도 괜찮아. 결코 창피한 게 아니야.”


 감사하게도 보건 교사인 나는 아이들의 외면의 아픔을 통해 그들의 내면을 만나게 된다. 복통이 자주 있는 아이, 두통으로 힘들어하는 아이, 갑자기 쓰러지는 아이, 눈이 잘 안 보이는 아이. 

 그 아이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소화가 안 되는 일이 많아 배가 아픈 건 아닌지, 잠을 잘 못 자서 두통이 지속되는 일이 있는 건 아닌지, 갑자기 쓰러지거나 눈을 뜨고 싶지 않고 싶은 일들이 있는 건 아닌지를 함께 살펴본다. 그러면서 나의 사춘기를 돌아본다. 



 철퍼덕은 그런 아이 중 하나였다. 재혼가정에서 자라면서 학대를 받고 있었는데, 나에게 먼저 그 속의 아픈 상처 이야기를 해줘서 고마웠던 아이 었다. 자주 넘어져서 생긴 멍보다 학대로 생긴 멍이 보이지 않게 가려져서 안타까웠던 아이. 넘어져 창피해도 웃으면서 도망치던 그 아이와 보건실에 앉아 창가를 보며 이야기했었다. 


 학생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내 어릴 때 모습을 이야기하곤 하는데, 아버지께 사랑의 매라는 이름으로 당했던 일들 (지금으로 말하면 엄연한 폭력이겠지만) 살짝 이야기하곤 한다. ‘라떼는 말이야’가 되지 않기 위해 아주 조금 맛보기로… 맛보기 효과가 좋았던 그날, 철퍼덕은 이렇게 말했다.



 “제 이야기 들어줘서 고마워요 쌤... 저는 잘 살 수 있을까요?”

 “네가 봤을 땐 내가 못 사는 것처럼 보이냐?” 웃으며 이야기하는 나를 보며, 철퍼덕도 맞장구를 친다.

 “아뇨~!!” 키득키득 웃으며 이야기하는 녀석이다.

 “다들 자기만의 상처를 가지고 있어. 그리고 자기만의 치유 방법도 자연스럽게 알게 돼. 다른 사람들보다 네 상처를 자세히 살펴보자.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샘이 옆에 있어줄게. 가장 '나다운'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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