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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냉이꽃 Dec 06. 2017

내가 아무것도 아님을 깨닫기

크게 인정받고 싶었지만 평범해지기로 했습니다

화순 운주사의 못난 사람들

화순 운주사 이야기


임권택 감독의 <아제아제 바라아제>라는 1989년 영화가 있었습니다. 강수연이 삭발하고 나와서 화제가 되었죠. 영화의 내용보다는 탑이 듬성듬성 서있는 풍경을 잊을 수 없었습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을 펴 들고 전라도 지역을 뒤졌습니다. 옛 백제 지역의 고려탑이었기 때문입니다. 전남 화순에 천불천탑이 있다는 단 몇 줄의 기록을 찾았습니다. 황석영 <장길산>의 마지막 설화가 운주사 이야기였음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해 여름의 끝 무렵.  시골버스를 타고 화순 운주사를 찾았습니다. 허허벌판이었습니다. 중들이 장을 봤다는 중장터에 버스가 섰고, 초라한 구멍가게 하나가 쓸쓸했습니다. 운주사 들어가는 길목은 표지판 하나 없이 휑했습니다. 


목화밭을 지나 도착한 운주사 터는 그 흔한 시냇물도 하나 없었습니다. 척박함이 낯설지 않은 땅, 폐허가 된 골짜기를 탑과 불상이 드문드문 지켜 서 있었습니다. 하나도 아름답지 않은 산등성이에는 거대한 원형의 돌이 북두칠성이 되어 누워있고, 괴이하고 거대한 와불 한 쌍이 누워 있었지요. 



골목안 작은 사진관, 한상천 사진, 2009년. 작가님이 흔쾌히 사진 사용을 허락하셨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얼굴들


운주사의 불상은 하나같이 아무것도 아닌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번듯한 이목구비는 물론이고 제대로 된 표정 하나가 없습니다. 둥근돌에 눈과 코가 붙어 있으니 그냥 얼굴이고, 머리 밑에 붙어 있으니 몸인 겁니다. 불상의 품격과는 거리가 멀고 한국 미술의 그 흔한 인간미 조차도 없습니다. 모든 인간성과 신성까지도 벗어던진 뼈대들이 표정 없이 서 있었습니다.  너나 나나 다를 바 없는 이 노골적인 삭막함이 가슴을 후볐습니다. 물러설 곳이 없는 사람들의 진실은 군더더기가 없었습니다. 쟈코메티의 앙상한 작품도 본질만 남아있어서 서늘한 감동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꿈은 깨라고 있는 것이다


제 인생을 요약한다면 '잘나고 싶고, 특별하고 싶고, 남다르고 싶은 것'이었습니다. 평생 제가 노력한 일은 '남과 비교하고, 남의 시선을 의식하며, 남의 평가에 반응하는 것'이었고요. 부모와 사회의 욕망을 나의 욕망으로 받아들인 결과였습니다. 누군가가 칭찬하면 뿌듯하고, 누군가의 비난에는 죽고 싶을 만큼 무너졌습니다. 껍데기를 인정받기 위해 껍데기 위에 또 껍데기를 뒤집어썼습니다.


이는 자신을 시장에 내놓으려는 욕망, '좋은 기분'이 되고자 하는 욕망, 타인에게 잘 보이고 싶은 욕망이며, 동시에 힘들고 갈등이 만연하며 파괴적이고 실망스러운, 불쾌한 현실 및 자아 인식에서 도피하고자 하는 욕망이다.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 에리히 프롬, 나무생각, 2016


남은 것은 '남보다 못한 나를 구박하는 습관'이었습니다. 열등감과 패배감이었죠. 늘 쫓기는 마음으로 자신을 재촉했습니다. 초연한 척도 해봤지만 거짓말이었습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도 아닌데 참 이상한 곳을 헤매며 살았습니다. 


꿈속에서 로또 1등에 당첨되어도 깨고 나면 아무것도 없습니다. 제가 갈망했던 많은 것들이 헛된 꿈이었습니다.  헛 꿈이기에  헛 짓 밖에 할 수가 없었습니다.


평범해질 용기


타인의 인정을 받기 위해 내 삶을 희생하는 바보짓을 그만두어야 했습니다. 무의미한 욕망을 포기하고 원점에 서야 했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내가 되어 정직하게 나를 보는 것이죠.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었던 열망에 가려 나를 볼 수가 없었으니까요. 아들러는 평범해질 용기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죠.


평범함을 거부하는 것은, 아마도 자네가 '평범해지는 것'을 '무능해지는 것'과 같다고 착각해서겠지. 평범한 것은 무능한 것이 아니라네. 일부러 자신의 우월성을 과시할 필요가 없는 것뿐이야.

<미움받을 용기> 기시미 이치로, (주)인플루엔셜, 2014


인정받는 것이 전부였던 사람입니다. 마음먹는다고 금새 변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명상조차도 더 빛나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했습니다. 명상은 욕망의 껍데기를 벗고, 자신의 내면, 화장기 없는 얼굴을 보는 일이었습니다. 스스로 짊어졌던 짐이 다 놓아지고 운주사 불상처럼 그저 눈과 코가 붙어있는 사람이 되면 자유롭습니다. 그리하여 국민학교 1학년 국어책의 착한 영희와 철수, 바둑이처럼 사이좋게 어울리며 사람답게 사는 인생을 꿈꾸어 봅니다.


까치발로 서면 제대로 서있을 수 없고, 보폭을 너무 크게 하면 제대로 걸을 수 없다. 
스스로를 드러내려는 사람은 밝지 않고, 스스로를 내세우는 사람은 도드라지지 않는다. 
스스로 자랑하는 사람은 그 공로를 인정받지 못하고, 스스로 으스대는 사람은 공이 오래가지 않는다.
도의 입장에서 보면 이런 일은 먹다 남은 밥이나 군더더기 행동으로 모두가 싫어하는 것이다.

노자 <도덕경>  2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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