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게 왜 이럴까?
엄마는 툭하면 오해하고 삐졌습니다. "엄마, 제발.. 그게 아니라.. " 잘잘못을 따지다 보면 더 깊은 오해를 낳기 일쑤였습니다. "니가 에미를 가르치려 드나?" 하면 입을 다물어야 했죠. 족히 20년 정도는 이런 말로 저를 기죽였습니다. 싸우는게 귀찮고 불편해서 화해의 노력은 했습니다만. 회의와 좌절에 빠져 방구석에 처박히는 날이 많았습니다. 나와 다른 사람과 마음을 섞으며 사는 일이 너무나 고달팠습니다. 짐승도 소통을 하는데 엄마와 딸은 자기 말만 하고 타박만 했죠.
미숙한 충고는 후폭풍이 무섭습니다
'모녀의 오해'라는 숙제를 풀지 못한 채 중년에 접어들었습니다. 자꾸 부딪치다보니 사람과 어긋나지 않으려고 말을 아끼게 되었습니다. '할많하않'은 딱 제 심정이었습니다. 듣다 듣다 속 터져서 한마디 하면 꼭 사달이 났습니다. 왜냐? 주로 상대방의 어리석음과 잘못을 지적했기 때문입니다. 꾹꾹 참다가 하는 말인 만큼 가시도 툭툭 튀었습니다.
미숙한 충고의 후폭풍은 컸습니다. 상대를 위한다고 생각했지만 결과는 반대였죠. 사람들은 화를 내고 무섭게 돌아섰고 저를 비난했습니다. 제가 속을 뒤집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때는 제 진심을 몰라주는 사람들이 야속하고 날벼락처럼 느껴졌습니다.
변화는 잘못을 인정하는데서부터 옵니다. 저는 과거의 제 잘못을 인정하면서 반려견들을 대하는 생각과 태도가 바뀌었습니다. 끊임없이 의심하고 질문을 던졌기에 이제는 어느 정도 반려견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당신은 개를 키우면 안 됩니다> 강형욱, 혜다, 2019
상대에게 기대하는 마음부터 버려야 했습니다
수도 없이 욕을 얻어먹고 마음고생을 하고도 뭐가 문제인지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아둔한 머리가 으스러질 때까지 같은 일을 겪고서야 "대체 왜?" 했습니다. 소통 안 되는 아버지처럼, 끝없이 윤회를 반복하는 중생처럼 눈치가 없었죠.
당연한 것처럼 기대했습니다. '내 말을 알아듣겠지, 내 진심을 알아듣겠지, 이렇게 하면 고마워하겠지, 이게 문제가 되겠어?.. ' 등등의 착각이었죠. 그리고 문제가 생기면 책임을 전가했습니다. "나는 최선을 다 했어, 나는 선의로 한 말이야.. 오해는 당신 잘못이야."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자신이 생각하는 반려견의 이미지가 깊게 각인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상상 속에 있는 모습 그대로 반려견이 행동해 주기만을 바랍니다. 마음대로 안되고, 기대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면 그 책임을 모두 강아지에게 돌립니다. <당신은 개를 키우면 안 됩니다> 강형욱, 혜다, 2019
기대를 접는 법을 배워야 했습니다. 기대하는 마음이 원망과 분노와 배신감을 낳습니다. 부모 형제, 타인에게, 혹은 세상에게 말도 안 되는 기대를 하고 살았습니다. 나만 사랑해 달라, 나를 이해해 달라, 제발 나에게 그런 기대를 하지 말아라, 왜 나에게 짐을 지우냐고 난리를 부렸습니다. 기대가 무너졌다고 실망하고 등지고, 잘되면 내가 잘한거고.... 이게 말이 되나요?
쉽게 생각했던 것도 나의 잘못입니다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와 <개는 훌륭하다>를 자주 봅니다. 온 마음을 다해 보호자만 바라보는 강아지와 강아지 덕분에 훤히 드러나는 인간의 모습이 있었습니다. 강아지는 보호자가 달라지면 즉시 변했습니다. 그리고 마법을 부린 것처럼 서로가 행복해졌죠. 문제의 원인은 언제나 사람이었고, 사람의 생각을 바꾸는 것이 관건이었습니다. 사람이라서 어려운 일이기도 했고요.
우울증으로 괴로운 학생이 있었습니다. 묵묵히 곁에서 힘이 되어준 반려견 덕에 그는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되고 대학에도 가게 되었습니다. 둘도 없는 친구가 되어줬던 반려견은 점점 혼자 있게 되었습니다. 공격성도 생겼습니다. 배변 실수도 하고 물건도 물어뜯었습니다. 학생은 강아지 행동이 고쳐지지 않으면 같이 못 살 것 같다고 상담을 요청했습니다.
" 그 강아지는 당신의 병을 가져간 거예요. 그러니 강아지의 행동을 고치려면 당신이 먼저 바뀌어야 합니다."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말하면 그분이 강아지를 포기하게 될까 봐 말하지 못했습니다. <당신은 개를 키우면 안 됩니다> 강형욱, 혜다, 2019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에는 오랜 준비가 필요했습니다. 사람은 강아지처럼 깔끔하게 변하지 않습니다. 내가 달라지면 같이 변하는 기쁨을 사람에게는 기대할 수가 없습니다. 물에 빠진 사람 구하면 보따리 내놔라 하는 것이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행복하길 바란다면, 강형욱처럼 공부해야 합니다
모든 사랑에는 기술이 필요합니다. 상대를 향한 마음만큼 기술이 따라주지 않으면 사소한 오해가 생기고 관계를 망치기도 합니다. 자신과 반려견이 행복하길 바란다면, 공부해야 합니다. <당신은 개를 키우면 안 됩니다> 강형욱, 혜다, 2019
수많은 책에서 인간 갈등의 원인을 설명하고 비결을 알려 주었습니다. 책에 쓰인 대로 되는 법은 절대 절대 없습니다. 부질없는 기대를 접어야 한다는 건 알게 되었지만, 사소한 기대조차도 접기가 어렵습니다. 언제 자기 욕심을 포기한 적이 있었어야 말이죠. 그래서 명상을 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돌아보면 목격하게 될 것입니다. 얼마나 집요하게 '너만 달라지면 나는 행복할거야'라는 기대를 품고 있는지.
저는 명상을 공부라 생각합니다. 삶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하고, 자신을 뜯어고치는 일을 명상이라 생각합니다. 워낙 생각이 분주하고 마음이 날뛰니 눈감고 깊이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죠. 잡생각이 많으면 버려야 하고, 자기 잘못을 알게 되면 참회도 하고, 그러다 깨달음이 있으면 감사한 마음도 가지고 그런 것이 명상의 과정이라 생각합니다. 명상의 목적은 잘못된 내가 달라져서 함께 행복해지는 것에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내 말은 옳아. 내 말을 무시하는 당신들이 어리석은 거야..."라는 자기 확신이 깨지면 사람은 변하기 시작합니다. 너무 견고한 자기 생각, 자기 견해, 자기 고집, 징글징글한 이기심은 자기에게만 중요한 것입니다. 솔직히 어느 누구도 인정해주지 않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 제발 좀 달라져라. 너 때문에 못살겠다!"
자신을 의심하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며, 묵묵히 실천했던 강형욱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변화는 가랑비에 옷 젖듯이 천천히 다가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