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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시간이 되면 부엌에는 각자의 저녁을 준비하는 사람들로 붐볐다.
그런데 동시에 시작해도 친구들의 요리는 항상 나보다 빨리 끝났다. 물론 개인의 속도 차이 일수도 있지만 문화 차이도 있는 것 같았다. 한식은 시간이 좀 걸렸다.
간단하게 먹고 싶을 때는 야채 볶음밥을 자주 만들었는데, 그때마다 친구들은 나를 놀렸다.
너, 베지테리언이야?
야채 볶음밥만 만들어 먹다가 처음 소고기를 넣는 날에는 진짜 베지테리언이 나타나서 따졌다.
너, 나한테 고기 안 좋아한다고 말하지 않았니?
놀림 중에 최고는 볶음밥에 스팸을 넣을 경우다.
스팸이 외국에서는 잘 먹지 않는 음식이라는 것이 요즘엔 상식처럼 알려졌지만, 2006년도에는 잘 몰랐다. 나는 스팸이 케첩, 마요네즈처럼 서양에서 많이 먹는 인스턴트 햄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볶음밥에 스팸을 넣던 날, 스코틀랜드인 로리가 나타나 부엌 문턱에 삐딱하게 기댄 채, 능글맞게 웃으며 말했다.
너희 나라에 스팸 있냐? 사람들이 좋아하냐?
그거, 우리나라에서 젤 싼 고기다.
게스트 하우스에서 만난 대부분 사람들은 만나면 서로 인사를 잘했다. 그런데 이 사람은 마주쳐도 인사를 안 했다. 내가 처음 인사를 건넸을 때도 다짜고짜 중국인이냐고 물었었다.
이상하게도 별로 달갑지 않은 로리는 전철역, 집으로 오는 골목길, 쇼핑가 이곳저곳에서 자주 마주쳤다. 열심히 인사를 건네보지만, 그때도 물론 그는 인사를 안 했다.
그런데 까칠한 그가 웬일로 나에게 말을 건네나 했더니, 역시 기분 나쁜 사람이었다.
로리 때문만은 아니었지만, 나는 그 이후로 한동안 스팸을 먹지 않았고, 다시 스팸 볶음밥이 먹고 싶었던 날, 나는 제일 먼저 그가 부엌에 있는지부터 확인했다. 설마 이번에 또 나타나진 않겠지. 서둘러 볶음밥을 만들기 시작했을 때, 거짓말처럼 로리가 또 나타났다.
그는 다른 친구들과 다르게 다이닝룸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사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램프의 요정처럼 내가 스팸을 따기만 하면 나타났다.
여보게, 이제 그만 스팸을 받아들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