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Fill Light Aug 29. 2022

두 얼굴의 명문대생

18


게스트 하우스에는 세 명의 일본인이 살고 있었는데 두 명이 이사하게 되면서 유일하게 남은 일본인은 나와 친하게 지내고 있는 옆방의 마키뿐이었다. 마키는 내성적이고 조용한 편이었지만 게스트 하우스의 다른 친구들과도 잘 지냈고 게스트 하우스의 자유롭고 평화로운 문화와도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마키 본인도 인도를 좋아해서 여행도 자주 다니고 인도에서 캔들이나 소품들을 구입해 플리마켓을 하는 등, 기본적으로 회사생활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보헤미안의 기운이 넘치는 자유로운 영혼의 친구였다. 


그런 와중에 일본인 남자 대학생 한 명이 게스트 하우스로 이사 왔다. 

20대로 보이는 그는 일본의 K 명문대에 다니고 있었는데, 영어 회화를 연습하기 위해서 일부러 파크 사이드 하우스로 이사 왔다고 했다. 옷차림도 외모도 특별히 튀지 않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날씨 좋은 주말 오후에 게스트 하우스 근처 공원에서 다 함께 놀자는 피크닉 공지가 게시판에 떴다. 

삼삼오오 편한 시간에 공원으로 모여 다 함께 놀았는데, 공을 가지고 놀기도 하고 앉아서 맥주를 마시며 떠들기도 했다. 나는 사진을 찍으며 놀았다. 

다 같이 공원에서 놀면서 새로 이사 온 명문대 청년과 처음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간단하게 서로 자기소개하고 웃으며 몇 마디를 나눴다. 그는 그동안 보았던 게스트 하우스의 다른 일본인들과는 다르게 적극적인 성격으로 게스트 하우스의 다른 친구들과도 열심히 대화에 참여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게스트 하우스 친구들과 벚꽃놀이




역에서부터 게스트 하우스까지는 걸어서 10분 정도 걸렸는데, 신기하게도 오다가다 길에서 만나는 사람은 항상 게스트 하우스 친구들뿐이었다. 그 어떤 시간대에도 골목길을 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늘 조용히 혼자 다니게 되는 신비한 골목길이었다. 


그날도 아무도 없는 골목길을 걷다가 새로 이사 온 그 명문대생과 단둘이 마주쳤다. 

반가운 마음으로 밝게 웃으며 인사를 했는데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나는 그가 내 목소리를 잘 듣지 못했다고 생각하고 다시 큰 소리로 인사를 했다. 그런데 그는 앞만 보고 빠른 걸음으로 사라졌다. 분명, 그가 나를 모른 척하고 있다고 느꼈다. 


게스트 하우스 복도에서 그와 스쳐 지나갈 때도 마찬가지였었다. 가볍게 인사를 했는데 그는 고개를 푹 숙이고 지나갔다. 그때 깨달았다. 그는 내가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때만 나에게 웃으며 인사했다. 소름이 끼쳤다. 평화로운 게스트 하우스에서 처음 보는 타입의 사람이 나타난 것이다. 


이 일을 대만 친구 샐리에게 말했더니, 자신도 똑같은 일을 경험했다고 했다. 

그는 게스트 하우스에서 다른 친구들에게는 친절했고, 나와 샐리에게만 모른 척하고 다녔다. 

모른 척에도 일관성이 있었으면 좋으련만, 백인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는 좋은 사람인 것처럼 행동했다. 

나는 그의 영어 공부에 도움이 되지 않아서 그렇다 쳐도, 샐리는 영어도 일어도 훌륭한 수준이었다. 

인종차별의 의심을 지울 수 없었다. 

그래서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우리는 앞으로 그에게 똑같이 행동하기로 했다. 



집으로 가는 길


이전 18화 문화 차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