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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나의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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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 Lee Oct 23. 2019

온기가 필요한 아침

오늘 아침 너무 울적해

3주 뒤면 한국에 간다.

보고 싶었던 사람들, 막힘없이 자유로운 대화, 익숙하고 친숙한 장소들

첫 해외여행처럼 모든 게 설레어 한 달 정도 계획을 세우고 수정하고를 반복했다.

이번처럼 한국행이 기다려졌던 적이 없었다.


어젯밤 잠들기 전 소화를 시킬 겸 남편과 손 잡고 동네 한 바퀴 산책을 했다.

사부작사부작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발걸음 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변덕의 마음을 그에게 전했다.


"남편 나 한국에 가기 싫어졌어."

"왜?"

"나 아빠 집, 언니 집 말고 엄마가 있는 집에 가고 싶어."

남편은 "그럼 대구 엄마 집에 있어."라며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 말을 하고는 계속해서 발걸음을 옮겼다.


화초들이 나란히 줄지어 서있던 마루 소파에 누워

"엄마 나 수제비가 먹고 싶은데."라고 이야기하면

센 불에 후루룩 끓여내어 "다 됐어. 얼른 먹어." 라던 우리 엄마.


나이가 먹을수록 엄마에 대한 그리움의 빈도는 일상생활에 치여 점점 줄어가지만

결국 다시 이따금씩 찾아올 적마다 그 강도는 꽤나 강해져서 마음을 아릿, 저릿하게 조여 온다.

멍이 드는 느낌처럼 상처의 가운데서부터 피가 고였다가 풀리는 기분이랄까.

체한 것처럼 가슴속이 묵직하게 불편하다.


남편의 발걸음을 따라잡으며

"엄마랑 목욕탕에 가면 좋겠어. 같이 쇼핑도 하고 싶고 여행도 가고.

아빠 집에 가면 홀아비가 차려주는 밥 먹는 것도 불편하고 담배 냄새도 싫고

언니 집도 그렇게 편하지는 않아. 엄마가 있는 집에 가고 싶다."라고

의미 없고 부질없는 투정을 쏟아냈다.


집에 돌아와서는 침대에 걸터앉아 노트북을 하는 남편의 품 사이로 

머리를 들이밀고 억지로 그의 품에 안겨

"나 쓰다듬어줘. 나 서른다섯 말고 다섯 살 하고 싶어." 라며 어린아이가 되고자 했다.

한심해 않고 "그럼 다섯 살 해."라며 보듬어 주는 남편이 그저 고마웠다.




얼마 전 가장 친한 친구와 통화할 적에 그녀가

"너 정말 넓어지고 유해졌어. 무언가 초월한 느낌이랄까. 꽤나 많이 날카로웠잖아.

좋아 보여."라는 말을 전해 들었다.


그전에 비해 난 넓고 깊어진 걸까. 좀 더 어른에 가까워진 걸까.

이렇게 한번씩 어른이 되어간다는 것-되어야만한다는 것-이 벅차고 힘겨운데.

그저 한없이 해맑고 좋은 것만 보고 아는 아이이고 싶은데.


하아. 마음 한 구석이 공허한 아침이다.


사랑과 애정으로 가득찬 사우나에 들어가

훈훈함으로 몸을 가득 달구고 

비어있는 마음 속까지 자신감으로 뜨겁게 채워넣고 나오고 싶다.


오늘 너무 울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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