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PTSD
기자들은 비를 싫어한다. 눈도 싫어하고, 쨍쨍 해가 내리쬐는 것도 싫어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장마, 폭설, 태풍, 가뭄이 싫다.) 지역에 큰 행사가 있는 것도 싫어하고, 불이 크게 나든 사람이 죽는 큰 사고가 나는 것을 제일 싫어한다. (이 문장을 쓰면서 PTSD가 오고 있다.) 기사 쓰는 건 물론이고 비가 오면 비를, 눈이 오면 눈을, 폭염 때는 햇빛을 받아야 한다. (생방 때는 방송사고 위험이 높다. 피가 깎인다.) 생방송 기사를 전부 외울 순 없어서 적어놓은 글이라도 참고(커닝)해야 하는데, 비가 오면 휴대폰이 멈추기 일쑤이고 인쇄를 해도 물에 젖어 흐물거리고 눈이 올 때는 추워서 손가락이 인식이 안 된다. 더우면 그냥 더워서 싫다. (한 번 쓰러졌어야 한다. 그래도 최근에 들어서 근로환경이 나아진 게 있는데 폭염 때 그늘에 가있으라는 얘기를 한다는 것이다. 왜 요즘 야외근로자 폭염 근로지침 같은 게 있지 않나. 1시간 근무 후 그늘에서 휴식과 같은. 이 이야기를 하면서 또다시 PTSD가 오고 있다. 가슴이 답답하다.)
그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있는 지금, 비가 그렇게 반갑다. (실제로 다른 기자에게 이렇게 이야기를 했다. 이 기자도 정치부에 있어서 나와 똑같은 얘기를 했다. 하지만, 늘 사회부로 다시 불려 나갈 것만 같은 불안감에 살고 있다고 한다.) 무엇이 가장 좋으냐면 밖에서 비가 내리는데,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쭈욱 빨아들이고 있을 때 그렇다. (캬- 그래서 요새 커피가 늘었다.)
올해는 가뭄이 없는 해였다. 겨울부터 봄까지 비가 적당하게 내렸고, 그 때문에 한 번도 날이 가물었다는 기사나 농작물 관련 피해를 얘기한 적이 없다. 이번 여름도 그렇게 큰 수해 없이 지나가기를 바라고 있다.
또 다른 것을 꼽아보자면, 최근에 테니스 강습을 받기 시작했는데 이걸 시작한 직후부터 장마가 왔다. 화목 오후 5시쯤 30분 연속으로 받고 있는데 끝나면 얼굴이 벌겋게 익어서 정말 터지기 직전의 색으로 변한다. 강습은 좋은데 더위는 힘들다. 원래 1주에 2회 강습인데, 1주에 1회를 강제로 가게 되었고 가끔은 0회가 된다. 돈을 냈는데 안 가는 게 좋다니 이 무슨 망조인가. 테니스 라켓 줄도 끊어져서 갈아야 하는데 아직 안 갈고 있으니 돈을 아끼고 있다. (기적의 논리)
또또 다른 것을 꼽아보자면, 화분에 물을 안 줘도 된다. 우리 집은 꼭대기에 있어 지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베란다에 빗물이 들이친다. 이걸 누군가는 안 좋게 보겠지만- 빗물샤워를 해줄 수 있다며 나는 아주 좋게 생각한다. 그리고 베란다에 작업실을 차려놓은 나는 더 좋다. 여기가 아아를 빨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인 것이다.
또또또 다른 것을 꼽아보자면, 이때다 싶어 강아지 우비를 하나 더 살 수 있었다. 돈 쓰는 거 조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