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 유쾌하지 않은 작은 사건이 있었다. 중2 중간고사 때였다. 자리 배정이 잘못 걸려 하루 종일 땡볕이 내리쬐는 자리에서 중간고사 시험을 하루 종일 봐야 했다. (지금은 아동학대라 할 만한 일이다 선풍기 바로 아래자리여서 바람도 닿지 않았다. 에어컨은 왜 나오지 않았던 걸까.) 점심 이후 시험은 감독 선생님이 줄을 바꿔서 나는 교실 중앙 자리로 이동하게 되었는데, 조금 늦은 사이 어떤 아이가 제가 햇빛 알레르기가 있다며 나랑 자리를 바꿔달라고 요구했다. (그럼 저는요?) 그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나는 5교시까지 꼼짝없이 선풍기도 없이 땡볕에서 시험을 치르게 됐고, 시험 도중 눈물이 마구 나더라. 왜 나만 이렇게 불이익을 당해야 하느냐면서. (나는 이 이후로 그 친구를 싫어하게 되었던 거 같다.)
10년 넘게 더우면 눈물이 눈에서 또르륵 나오는 마음가짐으로 살았다. 어느 순간에는 내 정체성마저 '더운 걸 참지 못하는 나' 정도로 포장됐던 것 같기도 하다.
분명 극복할 수 있었을 테지만, 여름에 땡볕에 노출될 일 자체가 우리나라 교육 환경상이나 직업 환경상 없으니 이겨낼 이유도 의지도 없었다.
하지만 하필이면 내가 고른 기자라는 직업이 어디 시원하고 좋은 곳에 있는 것이던가. 2018년인가 19년 여름. 나는 지표면 온도가 45도까지 오른 신촌에서 폭염 스케치를 해야 했다. (수은주가 그렇게 빠르고 높이 오르는 건 처음 보았다.)
눈물이 날 새 없이 땀이 주룩주룩 흘렀다. 눈물도 기운과 의지가 있어야 나는 거란 걸 처음 알았다. 10분도 서 있기 힘든 날씨. 나는 결국 그렇게 트라우마를 극복해내고 말았다. 불쾌할 일도 없었다. 그저 더위는 더위일 뿐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아무리 더워도 울지 않는다.
내가 너무 더운 곳에서 하루 종일 있었다는 걸 그 선생님뿐이라도 알아줬으면 했던 내 어린 마음은 이제, 더위와 더 이상 결부되지 않는다. 그저 그런 사건이 있었고, 억울했고, 미웠던 것이다. 더우면 생각이 나는 PTSD였을 뿐.
그 당시엔 땡볕에 스포츠를 할 수 없다며 (제2의 샤라포바를 기대하며 어머니께서 끊어주신) 테니스도 한 달 배우고 관뒀지만, 얼마 전부턴 나 스스로 야외 테니스 강습을 받고 있다. (30분짜리를 끝내면 얼굴이 시뻘겋게 익는다.) 그뿐일까? 더 이상의 폭염 스케치도 두렵지 않다. 작년에도 이미 두세 번의 생방송까지 했고 말이다. (눈물 대신 땀을 내고 있다.)
에어컨 빵빵한 사무실이 아닌 곳에선 어느 정도의 불쾌지수를 감당해야 하는 요즘, 그나마 다행인 일이다. (오늘은 덥지만 바람이 불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