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각자의 처지
그랬다. 그때의 너는 나의 세계였고 우주였다. 나의 세상이었고 숲이었다.
결과부터 말하면 치과대학교에 가려던 그의 2년 도전은 실패했다. 난 수능 때마다 보온도시락에 도시락을 싸서 수능 보는 학교 정문에서 그에게 전해주곤 했다.
동네의 어쭙잖은 스터디 인원을 모아서 남자 셋이 스터디를 한다고 하더니 공부는커녕 매일 오토바이 타고 바람 쐬러 어디 간다는 둥 할 때 왠지 느낌이 싸하더라니.
1년을 해보고 그래도 아쉬웠는지 그는 1년을 더 해보고 싶다고 했고 난 그렇구나 했다.
내 허락이 필요한 사람도 아니었지만 앞서 말했듯이 가보지 않은 길을 후회하는 것보다 일단 그 길을 가려고 도전한 자체가 난 의미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그가 외국계 회사의 한국지사-직원이 4명 남짓했다-에 들어갔을 때 사장님이 날 회식 때 자주 부르곤 했다.
난 접대하는 기분으로 나가곤 했는데 술이 거나하게 취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다가 그가 치과대에 가기 위해 공부했을 때를 이야기하게 되었다.
가십거리처럼 그 이야기가 지나가고 다른 이야기로 그 이야기가 덮어지고 쌓이고 난 나중에 내가 그 이야길 했는지도 모를 만큼 그렇게 그 순간이 지나갔다.
그런데 집에 오는 길에 그가 화가 머리끝까지 나선 그 이야길 왜 하냐고 자긴 그게 인생에서 가장 지우고 싶은 2년이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제대하자마자 기다림이 끝났다고 생각한 나에게 다시 2년동안 수능이란 길을 선택한 그 사람.
그 사람에게도 힘든 시간이었지만 나에게도 정말 힘든 시간이었고 그래도 서로에게 많은 걸 깨닫게 하는 의미 있는 시간이라고 생각했는데 현실인 지금 그는 버럭버럭 화를 내고 있었다.
지금 난 자신의 치부를 드러낸 못난 와이프일 뿐이었다.
그렇게 싫어하는 줄 알았으면 말 안 했을 거라고 미리 말이라도 해주지 그랬냐고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고 또 했다.
충격이었다. 난 그가 그때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줄 상상도 못 했다. 인생이란 게 돌아도 가고 산도 넘어보고 안 가는 게 나았을 길도 가보고 그런 게 인생 아닌가.
비록 실패했어도 도전하고 경험한 그 시간이 난 소중하다고 생각했고 그 길을 간 그가 정말 자랑스러웠다.
그런데 그에게는 가장 인생에서 지우고 싶은 최악의 시간이었다니. 그래. 각자의 처지와 생각은 다르니까.
그 뒤로 난 사람들 앞에서 다시는 그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 정말 없어져버린 2년이란 시간이 된 것이다.
하지만 그때마다 깨달아야 했다. 우린 달라도 너무 다르다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가치관이 다르다는 것. 그리고 그에게 항상 맞춰주고 있는, 아니 맞춰주기 위해 억지로 내 마음을 깎아내고 있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