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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de Feb 11. 2022

나의 이혼이야기.06

06. 제대와 현실

 드디어 제대. 생각해보면 군대에 있던 시절 우리는 가장 알토란 같은 사랑을 했다. 다시는 그런 애틋하고 순수하며 서로만 그리워하고 서로만 생각하던 영롱한 구슬 같은 간절한 사랑을 하지는 못하리라.


 그날은 여름의 어느 날이었다. 제대 날짜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렇게도 기다리던 날이었는데. 왜일까. 아무튼 그날 이례적인 폭우가 그 전날부터 내렸고 웬만한 하천이나 다리는 물에 잠겼다. 난 부대로 마중 나가서 입구에서 제대를 축하해 주고 싶어서 전철 첫차를 타고 출발했으나 연착 또 연착... 비는 쏟아지는데 새벽에 바득바득 나가는 나를 어머니는 걱정에 가득 찬 눈으로 바라보셨다.






 우여곡절 끝에 쫄딱 젖어서 부대에 도착하니 이미 부대원들은 축하해주고 들어간 후였고 화가 잔뜩 난 그가 기다리고 있었다. 30여분 정도를 기다린 듯했다. 난 오는 길이 정말 험난했다고 비가 너무 많이 와서...라고 말했지만 그는 화가 나서 나에게 뭐라고 한 마디 던진 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무슨 말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너무나 서운하고 섭섭해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정말 힘들게 왔는데... 내가 생각한 제대하는 날은 이런 게 아니었는데. 잘 기다려주고 잘 군생활 마친 서로를 고마워하고 축하해주고 한껏 웃으며 안아주고... 현실은 냉랭한 공기만이 우리 사이에 가득했다.


 의정부역에 와서야 아침 겸 점심으로 분식집에서 밥을 먹었다. 그리고 그제야 그는 기분이 조금 풀렸는지 입을 열었고 뭔가 대화를 한 것 같았는데 그 이후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기억하고 싶지 않은 날 중에 하나로 남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날이 앞으로의 날들을 암시하는 날이었다. 




 제대한 후에는 이제 나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더 많이 내 중심으로 생각해주고 사랑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제대한 그에게는 현실이란 무게가 너무나 무거웠나 보다. 군생활 휴가 나와서 알게 된 그의 어려운 가정 사정, 그래서 엉망인 학점까지. 


 서울대 공대생이었던 그는 제대 후 복학을 앞두고 매우 복잡하고 심란했는지 어느 날 이틀 동안 연락이 되질 않았다. 나는 너무 걱정이 돼서 미칠 것 같았다. 참다못해 그의 집으로 찾아갔고 그는 고민에 찌든 얼굴로 날 맞이했다. 조금은 흐린 하늘, 우리의 걷는 소리, 간간히 들리는 생활 소음들. 함께 집 앞에 공원을 좀 걷던 그가 말했다.


 "수능을 다시 보려고 해."


 그는 삼수생에 군대를 늦게 간 편이었고 보통 방위산업체로 빠진 동기들에 비하면 졸업이 늦어진 편이었다. 그런데 그의 입에서 생각지도 못한 말이 나온 것이다. 그는 치과대학교에 가고 싶다고 했다. 


 난 어떠한 일이든 시도가 중요하고 경험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성향이라 하고 싶으면 하라고 했다. 하지만 그 속내에는 '치과 선생님의 부인도 괜찮겠지'란 얄궂은 속물적 마음도 있었다. 


그렇게 우리 연애의 2라운드가 펼쳐졌다. 내가 전혀 생각하지 못한 형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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