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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de Feb 19. 2022

나의 이혼이야기.11

11.적응이 안돼

 결혼하고 나서 한 달 동안은 밤마다 울었다. 그냥 뭐가 그렇게 서러운 건지 잠을 자려고 누우면 어머니가 정말 보고 싶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합창부에 들어가면서 오후 연습을 하곤 했다. 그날도 다른 날과 다르지 않았는데 마음속에서 폭발하듯이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올라왔다.


 난 유치원생처럼 울면서 집에 가고 싶다고 엄마 보고 싶다고 선생님께 말했다. 너무 눈물이 나서 말도 제대로 안 나왔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아마 그날은 연습을 안 하고 집에 갔던 것 같다. 집에 가고 나선 언제 그랬냐는 듯이 그런 마음이 사라졌다.


 지금도 난 그때를 생각하면 참 이상하고 의아하다. 하지만 나에겐 내 안에 어렴풋한 불안감이 늘 있었던 것이다. 아마 그 불안감은 어머니의 뱃속에서부터 시작되었겠지. 그녀에게 잉태된 순간부터. 내가 아들이 아니었던 순간부터.


 아무튼 밤이 되면 그때 그 3학년 때 오후의 울던 나로 돌아간 것 같았다. 미칠듯한 감정이 올라와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그 사람은 처음에는 위로해주고 걱정해주고 했지만 나의 울음이 보름 정도 지나도 그치지 않자 지겹다는 듯이 한숨을 쉬곤 먼저 그냥 잠을 자기 시작했다. 난 그 사람의 수면에 방해가 되고 싶진 않아서 혼자 거실에 나와서 한참을 울다가 잠들곤 했다.


 결혼이 나에겐 너무 버거웠었나 보다. 그리고 나와 어머니와의 유착이 이렇게 끊이지 않은 상태였는지 몰랐다. 친정에 갔다 오는 길에는 사이드미러로 어머니의 모습이 점점 작아져서 보이지 않을 때까지 서로 손을 흔들며 '왜 아직도 집에 안 들어가, 이제 그만 들어가.'라고 속마음으로 말하다 결국 엉엉 울면서 집에 오곤 했다.


 결혼해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잠자고 일어나고 식사를 하고 그런 것은 행복했지만 그만큼 해야 할 일도 많아졌다. 시댁 챙기기, 아침 밥하기, 설거지 하기, 집안일하기...


 큰 소용돌이에 빠진 것 같았다. 내가 생각한 결혼은 이게 아니었는데. 왜 엄마가 그 집에 시집가면 고생문이 열렸다고 했는지 알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밤마다 들리는 계단 올라오는 소리. 탁탁탁탁탁. 집에 인터넷이 없고 우리집과 시댁이 3분거리다보니 그 사람의 여동생은 거의 매일 밤 인터넷을 하러 우리 집에 오곤 했다. 여동생은 피시방에 갈 돈을 아낄 수 있어서 우리 집에 오는 것을 좋아했다.


 하지만 시댁은 시댁이라고 오면 이런저런 잔소리를 하곤 했다. 워낙 시댁 가족은 다들 직선적으로 말하는 성격들이라 전혀 반대 성향인 나는 항상 혼자 제대로 된 대꾸도 못하고 마음이 상하곤 했다.


 그 여동생은 냉장고를 열어보곤 "언니는 왜 살림을 안 해?"라고 말하거나 해서 우리 집의 이런저런 집안 살림을 보여 주는 것도 싫었다.


 나중엔 계단 쪽에서 발자국 소리만 들려도 또 여동생이 오는 건가 싶어서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었다. 밤 9시나 11시 즈음 오곤 했는데 밤이란 시간도 나에게 편안한 휴식의 시간이 되지 못했다.


  또한 둘 다 맞벌이를 하다 보니 가스점검이나 이런저런 일 때문에 시할머님께 비밀번호를 알려드렸는데 낮동안 오셔서 설거지를 해주고 가신다거나 하는 일들이 있었다.퇴근후 집에오면 묘하게 뭔가 바뀌어진게 있는 집. 너무 불편하고 내 집이 내 집 같지가 않았다.




 또 하나의 문제는 그 사람은 둘만의 아기자기한 시간보다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있는 시간을 더 소중히 생각했다.


 난 좀 더 둘만의 시간을 갖고 싶었는데. 같이 맛있는 파스타 집도 가보고 예쁜 배경이 되는 곳에 가서 사진도 찍고... 하지만 우리의 생각은 달랐고 나는 항상 맞춰주는 편이 편해서 그 사람에게 맞춰주곤 했다.


 짧은 주말에 둘만의 데이트를 하기보다는 시댁이나 친정에 가곤 했고 친구들을 우리 집으로 잔뜩 초대해서 집에서 놀거나 자고 가기도 했다. 마치 친구들을 초대해서 놀고 싶어서 결혼한 사람같았다. 나도 그런 시간들이 즐거웠지만 연애가 길다고 해서 결혼하고 나서의 생활이 이렇게 '가족'처럼 되어버리는 게 싫기도 했다.


 처음 여름휴가는 둘이서 갔지만 그 사람은 별로 재미가 없었던지 그다음 휴가부터는 친구들을 불러 같이 여행을 가게 되었다. 나도 친한 오빠, 동생들이라 재미는 있었지만 앞에서 말한 알콩달콩한 느낌은 없었다.


 그 사람은 항상 나에게 말하곤 했다. "하고 싶은 걸 말해. 진작에 그럼 그렇게 말하지 그랬어"

 하지만 네가 원하는 마음이 항상 더 강하잖아.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자고 하면 재미없어하고 싫은 티를 너무 내잖아. 하기 싫은 거 정말 못 참잖아. 그래도 난 잘 맞춰주는 성격이니까. 하기 싫어도 재미있는 척해줄 수 있으니까. 니 굳은 얼굴 보는 게 무엇보다 싫으니까.


 전체적으로 좋은 분위기로 흘러가려면 결국 그 사람 위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점점 더 깨닫게 되었다. 결혼생활이 즐겁기 위해선 우리 관계가 잘 굴러가려면 나는 희생하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걸 은연중에 그러나 무엇보다 명확히 깨닫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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