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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de Feb 17. 2022

나의 이혼이야기.10

10. 결혼과 현실

 신혼여행하면 방광염 때문에 아팠던 기억이 가장 강하다. 거기에 동남아의 향료가 내겐 맞지 않아서 제대로 음식을 먹지 못해 신혼여행 동안 3kg가 빠졌다.


 우리푸켓을 갔을 때는 우기였다. 밤에 태풍 비슷한 것이 와서-그저 비였을지도 모르지만- 야외 화장실에 나뭇잎이 날아들어오고 정말 집이 날아가는  알았다.


 다음날 일어나 보니 풀빌라의 수영장엔 물 반, 나뭇잎 반.. 그래도 그 사람은 아깝다며 오기로라도 수영장에 들어가서 수영을 했고 난 발만 담가봤다가 물이 너무 차가워서 들어갈 엄두도 내지 못했다.


 마지막 날 돌아오는 날은 날씨가 정말 좋아서 햇살이 눈부셨다. 굉장히 파란 하늘이 기억이 난다. 그러나 곧 비행기를 타고 집에 와야 했다. 그리고 공항에 내려 한국 땅을 밟는 순간부터 나의 현실 결혼생활이 시작되었다.





 

 둘 다 맞벌이를 하다 보니 아침에 일어나서 아침을 차려주고 출근을 했다. 그때를 생각하면 참 그래도 체력과 열정이 있었구나 싶다. 어렵게 자라서 제대로 된 식사도 못하고 자란 그 사람에게 밥을 차려주는 건 나의 나름의 의무이자 보상의 과정이었다.


 물론 대단한 식사를 차린 건 아니다. 난 요리가 싫다. 여러 가지를 못하겠지만 단언컨대 요리를 제일 못한다. 그래서 요리를 잘하는 사람을 정말 존경하고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왜 먹을 재료들을 넣었는데 못 먹는 게 나오는지... 나중엔 정말 재료들에게 미안해서 더 이상 요리를 하고 싶지 않게 되었다. 대부분은 친정에서 가져온 반찬들이거나 반찬가게에서 산 음식들이 자리를 채우게 되었다.


 그 사람은 친구들을 불러 집에서 노는 걸 정말 좋아했는데 주말만 되면 집에 친구들을 불러 우리 집은 아지트가 되었다. 친구들은 종종 자고 가기도 했다. 처음엔 나름 즐거웠다. 한 편의 시트콤처럼.


 하지만 시트콤은 끝나는데 이건 끝나지가 않았다. 격주 6일 근무였던 나는 피곤함이 쌓이기 시작했다. 그래도 처음에는 그 사람이 청소며 빨래며 집안일을 토요일마다 해서 견딜만했다.


 한 번은 세탁기에서 빨래를 널으려고 빨래를 꺼내는데 내 속옷과 걸레들과 옷들이 다 함께 나왔다. 나는 기겁을 해서 아니 왜 걸레를 빨래랑 같이 빠냐고 화를 냈다. 그러자 그는 '어차피 빨 것들이잖아. 빨면 깨끗해지는데.'라며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다시는 그러지 말라고 있는 대로 화를 냈다. 미칠 것 같았다. 문제는 그다음에도 또 그 사람이 그런 행동을 반복했다는 것이다. 난 정말 이성을 잃고 화를 냈다. 그는 정말 속옷과 걸레를 같이 빠는 것에 대해 조금의 의구심도 없다는 표정으로 화내는 내가 지나치고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아무리 말로 설명해도 안되자 나는 결국 최후의 방법을 썼다. 타인의 도움 얻기. 교회지인이나 친구들이 놀러 오면 그 이야기를 던져서 화두에 올렸다. 다들 경악을 했고 그제야 그는 그것이-속옷과 걸레를 같이 빠는 것이- 잘못된 일임을 알았다.


 나의 말보다 사람들의 말을 더 신경 썼고 나의 평가보다 사람들의 평판을 더 신경 쓴다는 점을 알고 있었지만 그 점이 무엇보다 독이 될 것을 나는 간과하고 있었다.


 

 우리의 신혼집은 시댁에서 걸어서 3분 거리 었다. 그게 내 발등을 내가 찍는 일임을 그때는 몰랐다. 그저 그때는 시댁에 예뻐 보이고 싶고 착한 며느리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앞서 말했듯 시어머님은 개인 사정으로 나가서 따로 사시고 시 할머님, 시아버님, 여동생 이렇게 셋이 그 집에 사셨는데 퇴근하고 시댁에 잠시라도 들리는 것은 당연지사가 되었다. 거의 진짜 매일매일.


 시댁은 반지하에 사셨는데 처음에 가보곤 정말 깜짝 놀랐다. 우리 집도 부자는 아니었지만 정말 어렵게 사시는 구나 하고 생각했다.


 날개가 반들반들한 커다란 바퀴벌레가 하루에 기본 한 번은 출몰했고 집은 낡고 낡아서 더는 생명기라고는 없어 보였다. 거기에 할머님의 알 수 없는 짐들은 구석구석 가득 쌓여있었다.


  시댁에 가면 그 사람은 안방에서 시아버님과 이야기를 하고 거실-이라기엔 싱글 침대 하나 놓을 공간이지만-에서 난 주로 시 할머님과 이야기를 나눴다. 시 할머님의 다리를 주물러 드리면서 난 알지 못하는 전쟁 때의 이야기와 돌아가신 시할아버님 이야기를 듣곤 했다.


 그 사람이 집에 가자고 나오면 난 '드디어 해방이구나'라는 생각으로 인사를 드리고 나오곤 했다. 그렇게 집에 돌아오면 또 다음날의 아침과 출근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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