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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de Feb 15. 2022

나의 이혼이야기.09

09.결혼

 우리는 둘 다 같은 해에 대학교를 졸업했다. 나는 여러 대기업에 원서를 냈으나 서류에도 통과하지 못했다. 결국 아버지의 빨리 취직하라는 성화에 작은 중소기업에 취직하게 되었다.


 그 사람은 학점에 대한 걱정과는 달리 대기업에 취직이 되어 우리는 드디어 사회생활이란 것을 시작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때가 나의 고비였다. 나보다 연애기간이 짧은 동생들이나 친구들도 결혼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결혼식을 다녀오면 왠지 심술이 났다. 더 이상 이런 관계를 유지하고 싶지 않았다. 결혼하지 않으면 헤어져야 하는 포인트가 온 것이다. 괴롭고 지겨웠다. 이상한 질투심과 실패감이 날 사로잡았다. 


 하지만 둘 다 사회 초년생이라 벌어놓은 돈도 없고 모아놓은 돈도 없었다. 부모님의 지원을 기대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러던 차에 정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의외였다. 그 사람의 언니-시누이-가 전세금 4000만 원을 빌려줄 테니 결혼을 하라고 하는 게 아닌가. 그 구두쇠인 사람이 말이다. 


 그러나 4000만 원짜리 전세를 찾는 것은 그 당시에도 쉽지 않았다. 결국 우리는 시댁 근처의 집을 찾았다. 둘의 회사도 가깝고 집값도 싸서 전세금 4000만 원짜리를 구하기 위해서는 그 동네가 적격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빨간 벽돌 사이사이에 이끼가 낀 주택에 샤시라도 바뀌어져 있으면 감사할 집들을 보러 다닌 결과 빨간 벽돌의 3층 건물의 꼭대기 층에 있는 방 두 개짜리 집을 얻었다. 


 푸르른 은행 나뭇잎이 가득 보이는 작은 거실의 창이 아름다웠다. 우린 도배, 장판, 페인트를 하고 그 집에 입주하기로 했다. 막상 상견례를 하고 집을 얻고 하니 시간은 날아가듯이 하여 정신을 차려보니 결혼식 날이 되었다. 


 가장 걱정했던 아버지의 반대는 없었다. 아버지는 서울대 출신 사위를 얻는다는 사실에 그저 기분이 좋을 뿐이었다. 


 오히려 어머니의 반대가 있었다. 어머니는 나에게 '넌 그 집에 시집가면 고생문이 열린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엔 안된다'라고 걱정이 가득한 으름장을 놓으셨다. 하지만 철딱서니 막내는 '그럼 엄마 눈에 흙 넣을 거야.'라고 장난 가득한 대답만 할 뿐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것. 어른들 말씀을 잘 듣자. 자다가 떡은 안 생겨도 고생길은 피할 수 있다.


 아무튼 결혼식 전날은 싱숭생숭하고 눈물도 나고 한다는데 난 철이 없었는지 아무 생각도 없었다. 그저 드레스를 입고 공주님이 된 것 같은 환상에 빠져 설레기만 했다.


 그리고 어쨌든 오랜 연애 끝에 첫사랑에 성공한 드라마 여주인공같은 사람이 된 것이다.






 다음 날 아침- 결혼식 당일 그 사람의 친구가 차를 가지고 우리 집에 데리러 오기로 했으나 그 친구는 그 전 날 술을 먹고 뻗어서 연락두절.


 결국 새벽같이 택시를 불러 난 내 한복과 그 사람의 한복까지 챙겨 양손에 짐을 가득 들고 청담동 메이크업샵으로 가야 했다. 심란했다.


 그리고 결혼식. 정신없이 지나가고 푸켓에 도착한 첫날. 피곤하고 무리를 해서인지 처음탄 본 비행기가 스트레스였는지 간단한 나들이 후 숙소에 도착해선 심한 방광염에 걸렸다.


 첫날밤인데 방광염 때문에 너무 아파서 정말 피오줌을 쌌다. 눈물이 났다. 평소에도 방광염은 걸려봤지만 이렇게 심하게 걸린 적은 처음이었다. 


 한창 아파서 끙끙거리는데 그 사람은 낮에 시장에서 사 온 망고스틴을 내 침대 발치에서 까먹으면서 정말 맛있다고 한번 먹어볼래?라고 했다. 


 나는 아파 죽겠는데 염려해주기는 커녕 굶은 사람처럼 망고스틴을 게걸스럽게 먹는 그 사람을 보며 실망할 여지도 없이 방광염과의 고통과 싸웠다.


 내겐 하루빨리 날이 밝아서 병원에 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열대나라인데 왜 그렇게 침대는 춥고 차갑던지.



 고통의 밤이 지나가고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니 테이블엔 그 많고 많은 망고스틴의 껍데기만이 가득 쌓여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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