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조르주 드 라 투르'의 아버지!

(목수 성 요셉)

by 은동 누나

딸과 20일간 매일 그림을 보고 매일 빵을 먹었다.

하늘을 올려다보면, 변덕스러운 파리의 하늘과 눈이 시리게 푸른 남프랑스의 하늘이 떠오른다.



2019. 6. 5 (수요일)


오늘의 목적지 루브르를 가기 전에 최고의 바게트를 찾기 위해 일찍 길을 나섰다.

'Boulangerie Guilloton'


2018년 파리 바게트 대회 1등 바게트를 맛보기 위해서 익숙지 않은 지하철을 타고 Rennes-Littre에서 내려 10분 걸었다. 거리에는 출근하는 사람들이 바쁘게 지나간다. 가끔 지나는 사람들의 가방에 바게트가 빼꼼히 얼굴을 내밀기도 한다. 서둘러 가게를 들어섰을 때 구수한 냄새가 가득했다. 크지 않은 진열장에 샌드위치가 있다. 딸과 나는 플레인 바게트, 햄 치즈 샌드위치, 치즈 샌드위치를 샀다. 가게 내에서 먹을 수 없다. 아침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줄지어 들어온다. 진열 장 안의 샌드위치에 대해서 물어보고 싶지만 주인아주머니는 낯선 여행자들에게 내어줄 시간도 마음도 없어 보였다.


뮤지엄 패스 덕분에 기다리지 않고 9시 루브르 박물관에 입장했다. Vavin 역에서 루브르까지 지하철로 9개 정류장 13분을 바게트를 가슴에 품고 이동했다. 유리 피라미드 아래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사고 입구 의자에 앉아 비로소 바게트를 한입 베어 물었다. 바삭하고도 부드러운 맛이 잘 익힌 쌀밥 한 숟가락을 입에 넣은 느낌이다. 빵이 이렇게 맛있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배가 고파서 일 수도 루브르에 왔다는 기대감과 설렘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치즈와 햄을 곁들인 샌드위치를 고집하지 않아도 그저 빵 한입으로도 최고의 식사였다. 그 빵 한 조각으로도 루브르에서의 하루를 온전히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주 오래전, 대학의 신문사 문화부에서 이천에 있는 도자기 공방에 취재를 갔었다. 이천까지 너무 먼 길이었다. 도자기를 만드는 과정을 취재하고 학생 기자라고 별로 탐탁해하지 않으며 그저 묻는 말에 대답을 해주었던 도자기 장인이 생각난다. 먼 길을 가고 다시 돌아올 때 선배가 밥을 먹자 했다. 버스 정류장 앞인지 밥집에 들어가 그저 밥을 주문했다. 그날 도자기 장인이 만들었던 멋진 백자 항아리도 작은 소반에 올라온 김이 모락모락 나는 하얀 쌀밥보다는 멋지지 않았다. 반찬이라고 기억도 나지 않지만 그저 밥 상위에 올라온 밥이 얼마나 달콤했는지. 그 밥 한 그릇으로 먼길 버스를 타고 서울로 돌아왔다


루브르의 그림을 보기 위해 나름 준비를 했다. 책을 읽고 온라인 강의를 듣고 어떤 그림으로 시작하고 어디로 이동할지 이동 동선을 노트에 기록했다. 드디어 루브르 드농관 앞 차가운 의자에 앉아 가슴을 진정시키며 빵을 먹었다. 쌀밥의 첫 숟가락을 입에 넣었을 때 눈이 맑아졌던 느낌처럼 구수한 빵 한 조각이 모든 혈관을 열어주고 내게 힘을 주었다. 그날 바게트 한 조각은 밥이었다.


수요일 아침 9시에 루브르에서 시작된 나의 그림 여행은 밤 9시에 끝났다. 사람들로 가득한 루브르에서 그림을 찾아다니고 보는 일은 힘든 중노동이다. 특히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초상화 '모나리자'를 보기위해 드농관 711 전시실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모나리자'를 콩코드 광장으로 옮겨서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단독으로 전시해야 루브르 박물관의 기능이 회복된다는 어느 평론가의 말이 진심으로 다가온다. 드농관의 보석같은 이탈리아 회화를 그냥 스쳐가며 오직 모나리자를 위해 줄 서 있는 사람들을 보며 아쉬웠다. 그러나 나는 보고 싶었던 나의 연인들을 만나기 위해 걷고 또 걸었다. 드농관을 시작으로 쉴리관, 플랑드르와 네덜란드 미술의 리슐리외관으로 그리고 다시 사모트라 니케 여신을 지나 드농관으로 걸었다. 치마부에로 시작해 보티첼리, 라파엘로의 그림이 시작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성 안나와 함께하는 성 모자' 페르메이르 '레이스 뜨는 여인'
주세페 데 리베라 '안짱다리 소년' 카라바지오 '성모의 죽음'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세례 요한', '성 안나와 함께하는 성 모자상', 카라바지오의 '성모의 죽음', 페르메이르의' 천문학자', '레이스 뜨는 여인', 기를란다요의 '노인과 어린이', 장 앙투안 와토의 '피에로 질', 등 많은 작품 앞에서 행복했다. 그리고 그 중에서 가장 보고 싶었던 작품은 조르주 드 라 투르'의 그림이었다. 그의 그림 중 '목수 성 요셉' 앞에서 마음 한 구석 바람이 일었다.


조르주 드 라 투르 (Georges de La Tour)의 목수 성 요셉 (Saint Joseph Charpentier)
어린 예수가 들고 있는 어둠을 밝히는 빛과 그 빛에 아버지의 주름진 얼굴과 눈물이 빛난다.

조르주 드 라 투르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EBS 다큐, 루브르 3부작 중 마지막 3부 '루브르를 만든 사람들'을 통해서였다. 조르주 드 라 투르는 루브르를 후원하는 '루브르의 친구들'(후원가)이 최근 관심을 가지고 있는, 20세기 초에서야 재발견된 17세기 화가이며 그가 남긴 작품 총 40점 중에서 루브르에 6 점이 전시되기까지 루브르의 친구들은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다는 것이다. 카라바지오의 그림을 좋아하는 나에게 빛의 근원을 표현하는 조르주 드 라 투르는 이번 루브르에서 꼭 확인해보아야 할 작가였다.


쉴리관 3층 구석에서 그의 작품 '목수 성 요셉'을 마주했다. 촛불을 들어 아버지를 비추는 어린 예수와 불빛에 비추어진 요셉의 주름진 얼굴, 아들을 향한 눈빛에서 문득 한 해 전 하늘나라로 떠나신 아버지가 떠올랐다. 돌아가시기 나흘 전, 아버지는 내게 미안하다고 작은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하지 않았다.


보고 싶은 조르주 드 라 투르의 작품을 확인해보고자 쉴리관 3층을 찾았다.

그리고 그의 그림에서 나의 아버지를 보았다.


그날 쉴리관 3층 계단을 몇 번이고 올랐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