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에 가면 꼭 보고 싶은 그림이 다른 곳으로 출장(?), 이동 전시 중인 경우가 있다. 이번 여행에서 오르세에 갔을 때 꼭 보고 싶었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이 영국으로 출장 가고 없었다. 아쉬움은 너무나 크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그래서 또 다음에 다시 오리라 할 수 밖에! 루브르에서는 다비드의 '나폴레옹의 대관식' 그림이 전시관이 수리 중이어서 만날 수 없었다. 그 또한 어쩔 수 없다. 또 그래서 다시 오리라 하고 위로할 뿐이다.
너무 아쉬워하는 나를 보고 딸이 미술관 검색을 하다가 '루이뷔통 재단 미술관(Louis Vuitton Foundation)'에서 영국 '코톨드 컬렉션(Coutauld Collection)'을 전시한다고 했다. 코톨드 갤러리('Coutauld Institute Galleries')는 '인상파의 숨겨진 왕국'이라는 부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인상파의 수많은 걸작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 갤러리가 수리 중이어서 파리에서 작품을 전시하는 것이다. 나는 마네의 '폴리 베르제르의 술집' 그림을 보고 싶었다. 이런 횡재가 어디 있을까! 오늘은 일정을 바꾸어 루이뷔통 재단 미술관으로 향한다.
루이뷔통 재단 미술관(Louis Vuitton Foundation)
명품 브랜드인 루이뷔통이 만든 미술관은 개성 있는 건축 디자인과 좋은 전시로 유명한 문화공간이다. 메트로 1호선을 타고 Les Sablons 역 2번 출구에서 Jardin Des Acclimations로 나가서 15분 정도 걷는다. 이번 영국 Coutauld 갤러리 소장품인 인상주의 작품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었다. 세잔의 '안신의 호수', 쇠라의 '화장하는 젊은 여인', 고흐의 '귀에 붕대를 감은 자화상', 고갱의 '꿈', 로트렉의 '라 모르의 특실에서' 등 모네와 인상파 화가의 보석같은 그림들 그리고 물론 마네의 최후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폴리 베르제르의 술집'과 함께 할 수 있었다.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Henri de Toulouse-Lautrec) "라 모르"의 특실에서 (In a private room at the Rat mort)
에두아르 마네 (Edouard Manet) 폴리 베르제르의 술집 A Bar at the Follies-Bergere
떠들썩하고 흥겨운 술집, 표정 없는 여자가 있다. 마네는 생의 마지막 순간, 자신이 느끼는 삶의 고독, 불안을 여인을 통해 나타내고 있다.
'당신의 삶은 어떤가요?' 그림 중앙의 여자는 나에게 묻고 있다.
루이뷔통 재단 미술관을 나와서 페르 라쉐즈 묘지(Pere Lachaise Cemetery)로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탔다. 지하철로 1시간 이동하면서 마음이 무거웠다. 사실 나는 페르 라쉐즈 묘지에 가고 싶지 않았다. 꼭 가고 싶다는 딸의 부탁을 들어주는 것이지만 나는 죽음에 관련된 모든 것에 유난히 겁이 많다. 오래전, 새벽 미사를 드리기 위해 성당에 갔다가 장례미사를 준비하는 영구차를 보고 바로 집으로 돌아왔다. 물론 나이가 들면서 무서움도 조금씩 극복해나가고 레지오 봉사도 하고 있지만 딸의 부탁이 아니었다면 페르 라쉐즈에는 오지 않았을 것이다.
입구 사무실에서 공원 지도를 받고 묘지 순례를 시작했다. 딸은 찾고 싶은 묘지의 번호에 동그라미를 그리고 앞으로 걸어 나갔지만 쉽지 않았다. 결국 지도를 건네받고 딸과 길을 찾아가듯이 Avenue 이름과 번호를 따라 묘지를 찾아 나섰다. 14번 마리아 칼라스를 시작으로 21번 다비드, 들라크루아, 이사도라 던컨, 앵그르, 모딜리아니, 에디뜨 피아프, 마르셀 푸르스트, 거트루드 스타인, 오스카 와일드를 찾았으며 56번 짐 모리슨의 무덤에는 많은 미국인들이 보였다. 시간이 지나고 딸은 결국 동그라미 몇 개를 포기하고 마지막으로 딸이 좋아하는 작곡가, 쇼팽을 찾아 길을 돌았다. 입구로 내려오는 구석진 곳에 쇼팽의 무덤이 꽃과 그를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있었다.
(페르 라쉐즈 : 쇼팽의 무덤)
페르 라쉐즈에서 나와 마레지구(Le Marais)로 향했다. 예쁜 가게와 거리 가득한 파리지앵들의 열기가 느껴진다. 조금 전 죽은 자들의 집에서 왔다는 것이 실감 나지 않는다. 살아있는 사람들은 언제나처럼 웃고 즐기고 먹고 마시고 있다. 젊은 마레 지구의 서점과 작은 가게를 둘러보았다. Ofr. 서점도 둘러보고 빈티지샵도 보고 아이스크림도 먹고 마레지구를 걷는다. 그런데 여행의 피곤이 쌓여서일까 갑자기 눈앞에 스테이크가 보였다. 마레지구에 멋진 식당을 지나며 딸에게 오랜만에 스테이크를 먹자고 했다.
오래전, 큰 아이 고등학교 3학년 한 여름, 아이가 머무는 기숙학교에서 집으로 오는 외곽순환도로, 비 내리는 창으로 앞차 짐칸에 무언가 갈색이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빗줄기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았지만 가까이 다가가니 트럭 철장 짐칸에 아무렇게나 쑤셔 놓인 개들이 비를 맞고 있었다. 밑에 있는 개들은 움직임도 없고, 위에 있는 개 몇 마리가 빗물에 고개를 들었다. '복날이었다. 아니 복날 전날인가' 가슴에 피가 솟았다. 내가 아주 적은 금액을 후원하는 '동물권 행동, 카라'에서 보내준 잡지에 복날, 친구들 앞에서 죽어가는 개들의 사진이 떠올랐다. 살아있는 동안 뜬장에서 땅을 밟아보지 못해 험하게 부르튼 개들의 발은 죽으러 가는 날에서야 땅을 밟는다 했다. 고개를 들고 빗물을 마시는지 꿈틀거리는 개가 아니었으면 아무렇게나 내 던져진 개들이 무슨 갈색 모포인 줄 알았을 것이다. 차창으로 빗물이 내리고 나는 울었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내가 트럭을 세우고 불쌍한 생명을 구해낼 수도 그만 하라고 소리칠 수도 없었다. 나는 울었다. 그리고 도망쳤다. 그 후 오랫동안 고기를 먹지 않았다. 고기를 먹고 싶지도 않았고 어쩌다 먹으면 구역질이 나왔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그래도 가끔은 고기를 먹는다. 몸의 기억인가! 나 스스로를 용납하기 힘들지만 가끔 너무 힘들 때면 몸이 소리를 지를 때가 있다. 오늘이 그랬다.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의 일정을 소화하기에 지친 내 몸이 고기의 기억을 소환했는 가 싶었다. 남의 살을 굳이 먹고 싶었나 보다. 어쨌든 그래서 마레 지구의 근처 식당에 들어갔다.
'Le Colimacon'
마레지구가 내려다 보이는 아름다운 2층 식당에서 와인과 샐러드와 스테이크를 먹었다. 정말 오랜만에 내 몸의 어딘가에서 무엇인지 기지개를 켜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마음 한 구석 불편함이 가시지 않았다. 거액의 음식값을 지불하고 밖으로 나와서 커피를 마시고 다시 아이스크림을 먹어도 불편함은 지워지지 않았다. 내 옷에서 남의 살 냄새가 떠나지 않았다. 다짐했다. 다음에는 야채를 코끼리처럼 먹으리라!
에필로그
죽은 이의 집을 돌아보고 살아있는 자들의 거리로 와서 다시 죽음의 흔적을 입으로 삼켰다. 어리석은 나의 모습을 또 보았다. 그러나 앞으로도 장담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