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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수리 둥지 마을을 지나 모나코의 왕궁으로

by 은동 누나

2019. 6. 11 (화요일)


온전히 멀쩡한 침대에서 잠을 자고 일어 나니 여행을 처음부터 시작해도 될 듯, 몸도 마음도 편안한 니스의 아침이다. 호텔에서 나와 구 시가지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니스의 아침은 산뜻한 공기방울이랄까...

바다 냄새도 아닌, 도시 냄새도 아닌, 색다른 맛이 느껴졌다. 트램이 지나가는 구시가지의 골목길, 번화한 도시도 아니고, 시골도 아닌 그러나 니스는 니스만의 향기가 있다. 글을 쓰는 지금도 바다를 향한 발걸음에 묻어나는, 파리와 같이 세련되지 않지만 그러나 파리보다 또 다른 멋스러운 향기가 스친다.


동네 빵집에서 간단히 커피를 마시고 니스를 가로지르는 트램을 타고 Vauban 역에서 내려 시내버스 종점으로 갔다. 버스 종점에서 타야 에즈(Eze Village)까지 앉아서 갈 수 있다고! 그러나 그 tip은 나만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 시내버스 종점으로 가는 골목길은 사람들이 줄지어 가고 있었고 굴다리를 빠져나오자 시골 작은 터미널 112번 버스 앞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줄지어 타고 있었다. 1.5유로의 저렴한 버스는 Priceless 한 풍경을 선물해주었다. 종점에서 이미 가득 찬 버스는 니스 시내를 통과하면서 만원 버스가 되었고 작은 시골마을을 통과해 구불구불 가파른 절벽을 오르고 내리고, 마침내 지중해의 바다가 펼쳐지는 순간 버스를 가득 채운 사람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동시에 '와우~' 하는 탄성을 질렀다.

그리고 어린아이처럼 함께 웃었다.


20190611_125446.jpg (Eze Village. 열대정원 (Jardinexotique-eze) 에서 내려다 본 풍경)


지중해를 밟고 선 성벽으로 둘러싸인 자그마한 중세 마을, 언덕 정상에 있는 열대 정원에 오르면 해안가를 따라 줄지은 집과 바다가 아름답게 펼쳐진다. 버스에서 내려 동화 속 마을의 골목길을 올라 열대 정원(Le Jardin Exotique)으로 가는 , 작은 상점과 식당을 지나가다가 딸과 점심을 먹기로 했다. 관광지에서 밥을 먹지 않으려고 하지만 Eze와 같이 동네가 성벽으로 둘러싸인 경우 달리 방법이 없다. 버스를 타고 모나코까지 가기에는 골목의 피자와 파스타 냄새를 참을 수 없었다. 지나는 길에 미슐랭 2 스타 호텔 레스토랑이 있다. 너무 비싸 과감히 패스 한다. Botanical Garden 바로 옆, 식당 테라스에 자리를 잡았다.

'Le Nid d'Aigle'

딸은 'Pasta Carbonara' 나는 'Fish and Chips'를 주문했다.

나는 Fish 보다는 소금기 가득한 감자튀김이 먹고 싶었고 딸은 크림 가득한 베이컨의 까르보나라 파스타가 맛있다고 했다.

한 번 지나가면 오지 않을 관광객을 위한 식당은 무난한 음식을 주문하는 것이 실패하지 않는 방법이다. 그러나 역시 프랑스 시골 음식점은 어디든 제 몫을 한다. 푸짐하게 가득히 내어주는 바게트 빵에 신선한 올리브 오일만으로도 나는 너무나 만족했다. 그리고 이 곳은 해발 427m , 독수리 둥지로 불리는 꼬뜨 다쥐르에서 가장 독특한 지중해를 마주하는 중세마을이다. 최고의 한 끼 식사란 무엇일까? 소박한 음식에 아름다운 경치가 함께한다면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하는 딸과 나누는 식사는 미슐랭 3 스타의 음식보다 행복한 식사일 것이다.


20일간 프랑스를 여행하면서 매일 최고의 식사를 맞이하는 행운을 누렸다. 최고의 한 끼는 때로는 구수한 바게트 한 조각일 수도 따뜻한 오트밀 카푸치노 한 모금일 수도, 강낭콩 수프와 치즈, 아를 시장에서 덤으로 받은 오렌지 빵, 강아지와 빵 쟁탈전을 벌인 아침식사 일 수도 있다. 물론 파리로 돌아갔을 때, 구두쇠 딸이 선물한 파리 미슐랭 3 스타 식당의 만찬이기도 했다.


Eze Village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환상의 바다를 만끽하며 세상에서 두 번째로 작은 나라 모나코로 향했다.

버스에서 내려 모나코 대공 궁까지 걷고 또 걷고, 구시가지의 좁은 골목길을 지나 모나코 대성당으로 갔다. 로마네스크 리바이벌 양식의 모나코 대성당은 수백 년 된 유럽의 성당들에 비하면 오래되지 않아 모던한 느낌이었다. 성당에는 모나코를 통치하는 그리말디 가문의 무덤이 있고, 그레이스 켈리(Grace Kelly)도 이곳에서 잠들었다.

20190611_161136.jpg (모나코 대성당 Cathedral de Monaco)

하얀 꽃이 전부인 소박한 무덤.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저 아름다운 여자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했다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배우에서 왕비가 된 그레이스 켈리!


모나코 궁에서 다리가 아파 미니 기차를 타고 해양공원을 거쳐 내려온 시간은 오후 5시를 넘기고 5시 15분 니스행 버스는 아슬아슬. 다음 버스는 7 시 25분. 결국 니스로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MONACO-MONTE-CARLO기차역으로 갔다. 전광판으로 다음 기차는 5시 30분. 문제는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기차 매표소 직원은 보이지 않고 무인 티켓 판매기는 두대, 그러나 하나는 고장이다. 모나코에서 퇴근하는 세상에서 가장 멋진 옷을 입은 사람들은 우리를 지나가고 남은 티켓 판매기에는 전 세계에서 온 관광객들이 줄을 지어 있었다. 어림잡아 10팀이 넘었다. 티켓은 언어 선택부터 시작하고 현금이 아닌 카드만 가능했는데 (이유는 모르겠지만) 각종 카드가 에러를 일으켰다. 대기 줄은 줄어들지 않고 무인판매기에 매달린 사람들의 전 세계 언어가 들려왔다. 어린 중국인 학생 두 명이 30분 넘게 티켓팅을 하지 못하자 갑자기 참다못한 사람들이 우르르 판매기를 에워싸고 다시 전 세계 언어로 토론하며 문제를 해결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두 학생이 티켓을 뽑아 들고 gate로 달려가고 사람들은 박수를 쳤다. 그 후로도 오랜 시간이 지나고 우리가 기차를 탄 시간은 7시 30분을 넘겼다.


모나코에서 니스까지 기차로 20분 남짓, 티켓을 사기 위해 2시간을 기다렸다. 그러나 20분, 모나코에서 니스행 기차는 보석 같은 바다와 함께 달렸다. 니스 역을 나와 마세나 광장에 하나둘씩 마법처럼 등이 켜지고 해변에 도착하니 저녁노을이 선물처럼 다가왔다.


20190611_211352.jpg ( 마세나 광장 Place Massena )


에필로그


행복의 뒤편에서 호시탐탐 자신의 자리를 엿보는 불행이라는 녀석은 신의 질투일까 아니면 신의 노여움일까. 삶은 완전한 행복도 완전한 불행도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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