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커피와 달콤한 과일, 크로와상과 함께 하는 아침은 즐겁다. 삐걱거리는 나무 계단을 내려와 작은 숙소 1층, 아늑한 식당에서 인심 좋은 주인아주머니가 차려주시는 아침식사!!!
더구나 닫힌 식당 문을 셜록 못지않은 솜씨로 열어젖히고 들어와 빵을 물고 달아나는 강아지가 있다. 아주머니는 상습범이라고 웃으시며 다시 끌고 나가서 식당 문을 의자로 막았지만 솜씨 좋은 상습범은 어디선가 나타나 이번에는 사과를 물고 갔다. 나는 아주머니 몰래 햄을 슬쩍 주었고 고기를 맛본 강아지는 아주머니에게 쫓겨나가 문밖에서 컹컹 나를 불렀다.
(주인아주머니는 보호소에서 강아지를 입양하셨다고 했다. 입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철이 없다고^^ 말씀하시며 웃으셨다. 아침마다 빵 냄새를 맡으면 식당으로 난입하는 사랑스러운 강아지가 마음 따뜻한 가족들과 행복하기를 바란다. 강아지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 아쉽게도! 예쁜 여자 이름이었는데...)
방스(Vence)에서 로사리오 성당(Chapel of the Rosary) 까지는 차로 4분 거리... 마티스 도로 (Avenue Henri Matisse)로 들어서자 하얀 건물, 파란 지붕 위에 작은 십자가가 눈에 들어왔다. 마티스가 자신을 간호했던 수녀님의 부탁으로 도미티크 수도회에서 만드는 성당 건축에 참여했고, 그의 나이 77세부터 시작해서 81세에 완공한 로사리오 성당은 마티스의 모든 열정과 영혼을 담아 만든 예술적 역작이다. 이 성당을 완공하고 3년 후 마티스는 니스에서 영원의 길을 떠난다.
프랑스 여행을 준비하면서 기대했던 로사리오 성당에 드디어 들어섰다.
하얀색의 단순하고 소박한 성당, 성당의 모든 것을 마티스의 손으로 이루었다. 십자가에 매달리는 예수의 희생을 간결한 선과 색으로 보여준다.... 마티스의 십자가와 촛대 앞에서 기도했다. 그리고 비움으로 오히려 가득 채워진 마티스의 성당처럼, 우리는 행복을 위해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을 수 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마티스의 '생명의 나무' 스테인드글라스)
로사리오 성당에서 다음 목적지 피카소 뮤지엄까지는 30분 남짓. 앙티브를 향해 D6007로 진입하며 햇빛에 반짝이는 바다를 따라 달렸다. 창으로 보이는 바다는 파란 물 위에 보석을 뿌려놓은 듯,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빛을 보여주고 있었다. 앙티브 공용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피카소 미술관으로 걸어가는 길에 벼룩시장을 만났다. 골동품과 꽃 천국인 시장에서 배고픈 여행자는 산딸기와 치즈를 사고 시장 한 구석에서 맛있게 먹었다. 커피를 마시고 기운을 모아 피카소의 작업실이었던 멋진 그리말디 성으로 올라갔다.
앙티브 시가 그리말디 성을 사들여 박물관으로 만들던 가운데 피카소가 찾아오자 무료로 작업실을 제안했고 피카소는 연인과 세상 모든 걱정을 잊고 행복하게 작업에 몰두해서 만든 작품들을 앙티브 시에 기증했다.
행복이 느껴지는 피카소의 '삶의 기쁨 Joy de vivre',
피리 부는 피카소와 춤추는 피카소의 연인, 기뻐서 날뛰는 염소 에스메랄다가 그림 가득하다.
나의 행복은 무엇일까?
영화 바닐라 스카이에서 카메론 디아즈는 톰 크루즈 'What is happiness to you?'라고 묻는다 그리고 여자는 남자에게 'The little things. There is nothing bigger.'라고 말한다.
앙티브에서 오늘의 최종 목적지 '액상 프로방스'까지는 2시간 남짓, 프랑스 고속도로에 적응해 나름 편안히 달렸다. 문제는 세잔의 고향 '액상 프로방스' 구시가지에 들어서면서였다. 17세기 중세의 모습을 간직한 구시가지의 멋진 좁은 골목길에서 나의 대형차는 앞으로도 뒤로도 가지 못하고 프랑스 최고의 마들렌 가게는 찾을 수도 없었고, 높은 종탑이 보이는 성당과 시계탑을 몇 번이고 돌고 돌았다. 황톳빛 중세의 건물들 사이에서 길을 잃었다. 거리에는 어둠이 내리고 나는 결국 구도시에서 나와 현대 도시의 주차장 건물에 차를 맡기고 다시 걸어서 중세도시로 돌아갔다.
밤이 되었다. 액상프로방스는 세잔의 도시이기도 하지만 정치대학으로 유명한 대학도시이기도 하다. 17 세기 좁은 골목길은 학생들로 가득했고 음식점에는 자리가 없었다. 시간은 저녁 9시를 넘기고 앙티브 시장에서 간단히 과일만 먹은 우리는 일단 식사 가능하다는 조그만 Bistro로 들어갔다. 1층은 자리가 없어 지하로 내려갔는데 10명 남짓, 학생들이 저녁을 먹으며 열띤 토론을 하고 있었다. 구석자리에 앉아 젊음으로 빛나는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알고 있을까? 지금 얼마나 행복한 순간인지.....
식사는 기대 이상이었다. 전채로 주문한 문어 샐러드, 메인 요리인 생선과 리조또, 치즈를 통째로 얹은 리조또 역시 맛있었다. 해물 크림 리조또와 생선이 잘 어울렸다. 담백한 생선살이 부드러운 쌀과 아삭한 아스파라거스와 함께 완벽한 조합을 이루었다.
(Licandro Le Bistro )
저녁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중세도시의 밤은 젊음으로 가득했다. 이 오래된 골목을 폴 세잔도 걸었을까! 젊음의 고뇌를 안고 종탑을 향해 걸어가는 세잔의 모습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떠올랐다.
에필로그
'행복'이라는 단어를 처음 느낀 순간은 대학교 2학년 생일이었다. 10월의 가을날, 친구와 함께하는 저녁, 긴 머리에 빨간 체크 치마와 빨간 니트를 입고 웃으며 길을 지나가는 나의 모습이 선명하다. 세상의 모든 일을 이룰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과 함께 이만큼이면 행복하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