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스 역 뒤꽁무니에 있는 Hertz 렌터카 사무소에 도착한 시간은 8시 30분, 9시 차를 받기로 예약해서 일찍 도착했지만 역시, 대기하는 사람들이 사무소 밖에까지 줄지어 있었다. (돌이켜보면 프랑스 여행을 하면서 매일 기다리고 매일 뛰었다.) 역시나 기다리고 기다리고 드디어 내 차례가 되고 나는 소형차를 빌리기로 예약했으나 직원은 서류를 내밀며 아무렇지도 않게 오늘 소형차가 없다고 했다. 나는 아를, 액상 등 소도시의 구시가지를 여행해야 하니, 작은 차가 필요하다고 했으나. 직원은 다른 선택은 없다고 말하며 똑같은 가격에 크고 좋은 새 차를 주겠다는데 뭐가 문제냐고 오히려 짜증을 냈다. 일단 차를 보러 갔다. '르노 탈리스만' 대형차였다. 시간은 11시를 지나고 'Renoir Museum' 점심시간 전에 도착해야 하는데 달리 방법이 없었다. (오전에 르느와르 뮤지엄을 보고 오후에 매그재단 미술관을 보는 일정이다.) 서류에 사인을 하고 차를 몰고 나갔다. 내게는 익숙하지 않은 대형차였지만 음향시설은 최고였다.
니스 구시가지를 빠져나오는데 길은 좁고 내비게이션 조작은 서툴고 구글 지도를 켜고 진땀을 쏟고 겨우 고속도로 나왔다. 차창으로 바다가 보이고 니스 공항을 지나 25분 만에 Cagnes-sur-Mer의 'Renoir Museum'에 도착한 시간은 12시.
말년에 류머티즘으로 고생한 르누아르는 정원에 백 년 이상 된 올리브 나무가 있는 햇볕이 따뜻한 Cagnes-sur-Mer 집에서 마지막 시간을 보냈다. 오늘날 미술관으로 탈바꿈해 꽃과 나무로 가득 찬 사랑스러운 저택의 모습에 딸과 나는 너무도 황홀했지만 매표소 사무실 직원은 우리를 보더니 12시 50분까지 퇴실하라고 했다. 1시부터 점심시간이라고. (부탁이 아니고 귀찮다는 듯) 아름다운 저택과 앙티브 곶이 내려다보이는 환상적인 정원을 가로질러 저택으로 들어가니 12시 20분이 지나고 청소를 하는 아주머니가 딸과 나를 따라다니며 빨리 나가라는 듯 눈치를 주었다. 시계를 보며 아름다운 르느와르의 그림을 감상했다.
르누아르 'Collettes 풍경 Paysage aux Collettes'
(르느와르 아뜰리에 앞, 그림의 배경 올리브 나무)
르느와르 뮤지엄에서 아쉬움을 남긴 채 쫓기듯 나와 샤갈의 마을, 생폴 드 방스 까지는 16분, 짧은 시간이었지만 창으로 불어오는 바람과 남프랑스의 햇살에 반사되는 생생한 나무들의 행렬이 너무도 아름다웠다. 공용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중세의 고풍스러운 골목길로 들어섰다. 예술가들의 삶터이자 작업실인 갤러리들이 예사롭지 않아 보였다. 수공예품과 기념품을 파는 가게, 덩굴로 단장된 담장을 지나 마을 입구 반대쪽 공동묘지에 이곳의 터줏대감 샤갈의 무덤을 찾았다. 작고 소박한 화가의 무덤, 그를 사랑한 사람들이 무덤 위에 올려놓은 조각돌 위로 그가 사랑했던 햇빛이 찬란히 비추고 있었다.
생폴 드 방스에서 나와 매그 재단 미술관 ( Foundation Maeght) 까지는 차로 8분, 언덕길을 따라 작은 길로 들어서면 한적한 시골 마을의 작은 미술관 같은 매그 재단 미술관과 만나게 된다. 그러나 이 미술관은 샤갈, 브라크, 칼더, 마티스, 자코메티와 같은 거장들의 보석과 같은 작품들로 가득한 최고 수준의 현대 미술관이다.
미술관 입구에서부터 아무렇지도 않게 흩어져 있는 20 세기를 대표하는 조각들이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지만, 일단 작품을 보기 위해서는 밥을 먹어야 했다. 미술관 안의 작은 카페에서 바케트 샌드위치와 커피로 급한 점심을 때우고 칼더와 한스 아르프의 조각 작품을 보며 본관으로 들어갔다. 너무 많은 그림이 있었지만 샤갈의 대표작인 '삶 (La vie)'와 미술관 설립자 에메 매그가 너무나 사랑했던 피에르 보나르의 '여름(l'ete) '그림 앞에서는 내가 그림 안으로 들어가서 살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리고 작은 미술관 내 예배당에 들어가 브라크가 매그 부부의 아들을 위해 만든 스테인드글라스를 한참 동안 올려다보았다.
(알베르트 자코메티 걷는 사람)
(조르주 브라크의 스테인드 글라스와 예배당 십자가)
미술관 뒤 뜰에 미로 조각정원과 정원에서 내려다보이는 생폴 드 방스의 풍경까지 미술관의 공간을 돌아보면서 어떻게 작은 미술관에 20세기 최고의 작가의 작품들을 모을 수 있었을까 정말 부러웠다.
아침부터 몰아친 미술관 기행을 마치고 10분 거리의 작은 마을 '방스 Vence'로 이동했다. 내일 아침 마티스의 '로사리오 채플'을 보기 위해서 숙소를 찾다가 생폴 드 방스는 숙소가 너무 비싸서 근처 작은 마을의 방스로 숙소를 예약했었다. 그리고 작은 마을 방스는 프랑스 여행 중 가장 마음 따뜻한 최고의 선택이었다.
'Auberge Des Seigneurs'
시골마을 방스의 작은 호텔, 친절하고 마음 따뜻한 주인아주머니, 방스의 풍경이 내려다 보이는 창문, 너무나 깨끗한 침구와 방, 주인아주머니가 마련해주시는 아침식사, 그 아침식사를 함께 나누는(?) 매력적인 강아지...
정말 7성급 호텔이 부럽지 않은 프랑스 20일 여행 중 최고의 숙소였다.
짐을 풀고 방스의 마을을 돌아보았다. 저녁노을이 마을을 따뜻하게 감싸고, 작은 마을이었지만 따뜻하고 소박하고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카메라를 가진 관광객을 찾을 수 없는 그저 산 중턱의 예스러운 마을이었다. 마을 중심부 광장의 작은 레스토랑, 나무 아래 멋진 테라스에서 밥을 먹었다. 장소만큼 단순하고 신선한 맛이었지만 방스의 저녁 하늘과 맑은 공기가 맛을 더했다.
'Restaurant la Litote'
에필로그
때로는 단순한 이유가 행복을 가져올 수도 있다. 여행도 그렇다. 목적이 거창하지 않아도, 부담스럽지 않아도 기대치 못했던 감동이 선물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르느와르의 마지막 아뜰리에도, 작은 미술관 매그재단 미술관의 더 작은 예배당도, 방스의 저녁노을도 그랬다. 골목길의 작은 등 하나가 인연으로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