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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리 Aug 11. 2024

퇴사 하지 않고 싶어서, 이유를 발명했습니다.

매시간 퇴사를 꿈꾸던 사람의 직장 재밌게 만들기 프로젝트

 "할아버지가 너 퇴사 못한다는데?"

 

 무당은 손녀 딸에 빙의하여 새침한 말투로 말했다. 할아버지 조상신을 모시는 용한 이 무당. 30년을 교편을 잡았다가 신내림을 받아 얼마 전 신당을 차린 그녀는 이 동네에서 신발이 잘 받는다고 소문난 핫한 무당이었다. 


 "언니, 퇴사하려면 지금 해요. 결혼하면 남편이 절대 안 된다고 한대"

 

 무당은 마치 나와 내 남자친구를 이미 꿰뚫어 본 것 같은 얼굴로 되물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 인생이니, 내 선택에 맡기겠다고 했던 남자친구의 말을 떠올리며 호기롭게 답했다.


남자친구는 내 의사를 존중하는 사람이라, 그를 설득시키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아니라고. 무당은 내 답변에도 몇 번을 되묻더니, 그것만 해낸다면 퇴사 후의 내 삶은 꽤 잘 풀릴거라고 점쳤다. 재능이 많으니까 승승장구 할 거라는 심심한 응원도 함께였다.


 하지만 나는 퇴사에 대한 고민을 결론 짓지 않은 체로, 결혼식을 올렸다. 때 마침 좋은 조건으로 다른 팀으로 이동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직위도 팀장이었다. 열심히 일한 노력에 대해 보상이라고 믿었던 나는 지금 팀에서 겪고 있는 고통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한 도피처라고 생각했다. 그래, 회사에서 좀 더 해보자.


 2년이 지난 지금, 나는 매일 월요일 아침 퇴사를 부르짖으며 출근한다.




 결혼식까지 골인하는 과정은 피곤했지만, 결혼 생활 자체는 신혼의 달콤한 설렘에 젖어  행복했다. 남자친구는 더 이상 만나기 싫으면 안 만날 수 있는 '친구'가 아니었다. 인생의 크고 작은 결정들을 함께 하며 목표를 설정하고 헤쳐나가야 하는 팀원이 되었다. 우리의 팀워크는 꽤, 아니 상당히 좋았다.


 물론, 누구나 예상 할 수 있듯이 결혼 후 인생은 두배로 복잡해졌다. 가족이 2배가 되자, 챙겨야 하는 경조사도 2배, 아니 체감상 그 이상으로 늘어났다. 부동산, 제테크를 비롯하여 신경써야 할 것도 많아졌다. 


하지만 우리는 마치 게임을 하는 것처럼 함께 퀘스트를 완수하며 헤쳐나갔다. 그런 우리에게 부부 싸움을 유발하는 것은 '내가 여전히 퇴사를 하고 싶어한다'는 것이었다. 


 "퇴사 제발 안 하면 안 될까?"


내 번아웃을 작은 감기처럼 생각했던 나의 구남친, 현남편이 말했다. 그냥 말한 것도 아니었다. 


그는 울고 있었다. 

맞벌이 할 것을  기대하고 세운 우리의 재무계획에 나의 무계획 퇴사는 그에게 재앙과 다름 없었다.


그 무렵 나는 회사를 다니는 게 괜찮아졌다가, 미칠 것 같았다를 온탕 냉탕처럼 반복하고 있었다. 어느 날은 죽지 않는 한 회사를 그만둘 수 없겠다는 극단적인 생각에 빠져들 때도 있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나의 회복 탄력성은 대단했다. 알 수 없는 피로와 부담에 절여져 매일 저녁 녹초가 되었지만, 밥도 잘 먹고, 주말엔 놀러도 다니며 불면증 한 번 겪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내 스스로도 심각한 상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연히 서점에서 제목에 마음이 동해 집어들었던 책이 있다. 『내가 뭘 했다고 번아웃일까요』은 내 마음을 한 줄로 요약한 것 같았다. 현실적인 문제를 따져 보았을 때도, 내가 재직 하고 있는 회사를 객관적으로 평가했을 때도 나쁘지 않은 조건이었다. 재택근무를 할 수 있는 환경, 실력이 있으면 주어지는 다양한 기회, 배울 점 많은 리더들.


더군다나 이런 환경 속에서 회사가 내게 갖는 신뢰는 해가 갈수록 두터워졌다. 1-2년 안에 그 다음 승진이 이미 예정되어 있었다. 


 "내가 네 상황이면 너무 좋을 것 같아. 지금 갖고 있는 것들을 별 게 아니라고 생각하지 말고, 마음을 다 잡아보면 어때?"


 남편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하지만, 회사를 다닌지 7년을 넘어서면서, 회사에서 하는 일보다 밖에서 하는 일들이 더 재밌어 보였다. 자신의 인생을 소재로 삼아 다양한 컨텐츠를 만드는 사람들, 직장이 아닌 밖에서 '자기의 것'을 실현해내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자꾸만 내 마음이 끌렸다. 하지만 이런 충동적인 마음이 단순한 도피성이 아니라고 확언 할 수 없었다.


그 동안 일궈놓은 것들과 매달 꽂히는 안정적인 월급을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도 함께 있었다. 다른 사람들의 인생이 빛나 보여서 퇴근 후에 블로그며 유튜브며 따라하긴 했지만, 열정은 한 두 달도 안되어 꺼지곤 했다.


그동안 내 퇴사의 울부짖음에 고통 받은 남편에게 미안하지만, 사실 퇴사를 하지 못한 이유는 이러한 불확실성과 애매한 미래에 베팅할 수 없는 내 자신에게 있었다.


직장 생활을 하기 전의 나는 조그마한 갈등에서 '프로 도망자'였다. 예민하고 내성적인 성향의 나는 조그마한 갈등에도 괴로워 하며 알바를 그만두거나 하고 싶은 일에 등을 돌리곤 했다. 지금 회사를 꾸준히 다닐 수 있었던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아무런 기대 없이 선택'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한 선택이라도 7년이 쌓여 무언가 그럴듯한 형태가 생긴 후였다. 나는 지금 가지고 있는 것들의 의미와 가치를 지금 당장 버리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면, 퇴사 하지 않으면서 회사를 다니는 내 삶이 불행하지 않도록 이유를 '발명'해보기로 했다.



살다가 살아보다가 더 못 살 것 같으면
아무도 없는 산비탈에 구덩이를 파고 들어가
누워  곡기를 끊겠다고 너는 말했지

나라도 곁에 없으면
당장 일어나 산으로 떠날 것처럼
두 손에 심장을 꺼내 쥔 사람처럼
취해 말했지

나는 너무 놀라 번개같이,
번개같이 사랑을 발명해야만 했네

사랑의 발명, 이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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