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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리 Aug 25. 2024

퇴사의 추억 : 밥은...먹고 다니냐? (2)

카페에서 지금까지 내가 시작한, 그리고 떠나온 일들을 정리하며 깨달았다.


나는 '때려치기'에 일가견이 있었다.


문사철 중에서도 취업과는 거리가 먼 문예창작과를 다니는 동안, 부족한 용돈을 메우기 위해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했다. 어릴 때부터 뼛속 깊이 문학을 사랑했던 나는 글쓰기 외에 무언가를 '업'으로 삼을 마음은 없었다. 하지만 글쓰기는 당장 돈이 되지 않았고, 내 넘쳐나는 시간을 돈으로 바꾸는 것이 가장 빠르다고 생각했다.


내 첫번째 아르바이트는 역 앞에서 전단지를 나눠주는 것이었다. 아직 고등학생이었던 그때 할 수 있던 유일한 아르바이트였다. 아파트나 빌라를 돌아다니며 전단지를 붙이는 것쯤이었다면 오래 버텼을까? 아쉽게도 내 첫 알바는 하교 시간에 학생들이 가장 많이 몰리는 역이었다. 친구와 전단지를 돌리다가 저 멀리 아는 아이들이 보이면 잠시 숨어 있다가 다시 나오기를 반복하던 나는 세 시간만에 첫 알바에게 이별을 고했다. 


아르바이트는 구하기 쉬운 만큼 그만두기도 쉬웠다.


남은 전단지 뭉치를 끌어안고 사장님께 그만두겠다고 말했을 때, 사장님은 전혀 놀라워하는 얼굴도 아니었다.그렇게 첫 번째 아르바이트를 그만두었던 사유는 쪽팔림이었고, 그 이후로도 다양한 이유로 일을 그만두었다. 텃세가 심해서, 야근이 많아서, 저 세상 또X이가 있어서, 대체 내가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어서.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좋아하던 글쓰기도 스스로의 역량의 한계를 느껴서 그만두었다. 


절치부심하는 마음으로 직업훈련을 6개월 동안 받은 디자인도 때려치우려는 지금. 내가 과연 돈을 벌면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인지 막막했다. 글쓰기 말고 디자인을 선택했던 것은 내 성향이 무언가를 만들고 창작하는 일에 맞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디자이너'라는 직업이 주는 세련됨과 아름다움에 매력을 느꼈다.


하지만 실제 디자인 일은 내 환상과는 달랐다. 내가 원하는 디자인을 하는 것이 아닌, 고객의 니즈를 파악해서 디자인을 뽑아내야 했다. 실력과 센스 있는 디자이너라면 고객도 모르는 깊은 니즈를 읽어내어 멋진 결과물을 만들어 내겠지만, 내게는 그럴만한 역량도, 그만한 역량을 키워내고 싶은 야망도 없었다. 디자인과 관련한 자기술사 자격증 책을 몇 권 훑어보던 나는 일의 방향을 한 번 더 틀어야겠다는 결론에 닿았다. 


"이번 달까지만 하고 퇴사 하고 싶습니다."


다음 날, 과장님께 퇴사하고 싶다는 말을 전했다. 아르바이트 때를 그만두겠다고 말씀드렸을 때의 전단지 사장님의 표정과 달리, 과장님의 얼굴에는 의아함이 묻어 있었다. 잠시 사장님과 이야기를 나누어보겠다는 말을 뒤로 하고 과장님은 자리를 비웠다. 막상 말을 하고나니, 그 전의 어려웠던 마음들이 소화되는 것처럼 시원한 기분이 들었다. 그 뒤로 사장님이 연봉 재협상을 말하며, 한 두 차례 잡았지만 회사에 대한 미련 뿐 아니라, 디자인이 내 일이 아니라는 확신을 갖게 된 내 마음에 변화는 생가지 않았다. 


다만 사회초년생이었던 내게 '연봉 재협상'이라는 말이 마치 어른들의 대화에 끼어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신선했던 기억이 난다. 짧은 디자인 회사 생활을 마치고 나는, 정말로 내 밥벌이가 되어줄 거라고 생각되는 '그 직업'을 하기 위해 12월 유난히도 추웠던 겨울, 지하철을 타고 명동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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