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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서 Nov 17. 2019

1. 일 잘하는 상사를 만나다

< 제 4 장 >  성취 그 짜릿함

“연서 씨 박 차장하고 인사해요, 다음 주부터 같이 일하게 될 거에요.”      


차장님과 처음 인사를 했다. 짧게 “안녕하세요” 한 마디만 나눴다. 차장님은 "네, 안녕하세요" 한 마디만 하고 바쁘게 나가셨고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컷트머리에 조용한 목소리를 가진 분이었다. 어떤 분이실지 궁금했다.     


공사에서 일을 시작한 지 3개월이 지났다. 부서 내에 변동이 있었고 같이 일하던 차장님이 다른 부서로 가게 됐다. 새로 오실 분이 정해지긴 했는데 2달 후에 온다고 했다. 두 명이서 하던 일을 혼자 할 수밖에 없었다. 발을 동동굴렀다. 문제가 생기면 연락해야 할 사람은 누구이고, 어디까지는 스스로 하고 어디부터는 도움을 요청해야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냥 매일 10시까지 야근하며 버텼다. 못하겠다는 말을 하고싶지 않았다. 무조건 혼자 해결하려고 했다. 업무가 처리되지 않거나 막히면 짜증을 내는 날이 많아졌다. 그러던 중에 새로 오시는 차장님과 인사를 나눈 것이었다.     


오매불망 기다리던 차장님의 첫 출근 날, 제대로 눈을 보고 인사를 드렸다. 인사를 하는데 차장님의 눈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눈이 정말 컸기 때문이다. ‘아니, 사람의 눈동자가 어떻게 이렇게 크지? 사슴 눈망울 같잖아?’ 차장님은 호수 같은 눈을 가지고 있었다. 눈만 봐도 힐링이 되고 정화되는 느낌이 들 정도랄까. 농담을 하면 잘 웃으셨지만 때론 무뚝뚝하셨고 문제가 생겨도, 문제가 잘 해결돼도 감정의 변화가 크지 않으셨다. “아~ 정말?”과 “어머~” 두 가지 추임새가 가장 큰 호응이었으니 말이다.     


그런 차장님이 궁금해지기 시작한 건 팀장님 때문이었다. 팀장님은 말도 빠르고, 목소리도 크고, 업무처리 속도도 빠른 분이었다. 팀장님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차장님 자리로 왔다. 내 자리는 차장님 바로 앞이었다. 팀장님의 큰 목소리 때문에 자연스럽게 두 분의 대화를 듣게 됐다. 아니 글쎄, 팀장님이 차장님에게 쉴새 없이 일을 맡기는 것이 아닌가.     


“차장님, 바쁘지 않으세요? 뭐 도와드릴까요?” 

“아니, 괜찮아요. 이정도야 뭐, 금방 끝나니까.”      


알고 보니 차장님은 회사 내에서 일 잘하기로 소문난 직원이었다. 어떤 업무도 차장님의 손에 들어가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차장님은 미루지 않는 스타일이었다. 해야 할 일의 업무프로세스를 먼저 생각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바로 전화를 걸었다. 요청사항만 간단히 말하고, 그 업무가 끝날 때까지 하나의 업무에만 집중했다. 억 단위의 예산이 들어가는 프로젝트의 보고서가 몇 시간내로 나오기도 했고, 실제로 차장님이 만든 프로세스대로 진행되는 것을 보면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걸 느꼈다. 


무엇보다 차장님이 흥분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문제가 발생해도 당황하지 않고 다시 해결책을 찾아 담담하게 처리하는 분이었다. 일에 감정을 더하지 않았다. 불필요한 감정이 이입되지 않으니 빠르게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일을 잘하는 사람은 어떤 특징이 있는지 이 때 처음 알게 됐다.     


차장님이 오시고 나서부터 내 삶은 평화를 찾았다. 퇴근 시간도 빨라졌다. 뭐든 의논할 수 있는 상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든든했다. 하지만 그날이 와버렸다. 계약이 종료되는 날이.      


“그동안 고생 많았어요, 많이 먹어요”

“감사합니다. 팀장님”     


마지막 근무 날, 모두 모여 저녁을 먹었다. 메뉴는 막걸리에 파전이었다. 아쉽게도 차장님은 참석하지 못했다. 팀장님과 부서원 8명이 모여 막걸리를 마셨다.     


공사에 입사하고 싶었다. 계약이 끝나기 전에 상반기 정규 채용이 오픈됐고, 3개월을 공부했었다. 24시 도서관과 집 근처 카페에서 매일 새벽 2시까지 공부했다. 벚꽃이 화창한 봄날의 주말도 반납하고 말이다. 하지만 필기시험에서 떨어졌다. 준비가 부족했으리라. 막걸리가 술술 들어갔다. 처음 들어왔을 때 겪었던 힘든 일과 즐거웠던 일, 당황했던 일, 뿌듯했던 일 등 모든 추억이 되살아났다. 어쨌든 이젠 떠나야 한다. 술잔을 계속 비웠다. 그렇게 한잔하고 일어나려는데, 팀장님이 나를 잡았다.     


“연서씨, 정말 고생 많았어요, 그동안 진짜 힘들었지? 어디에 있든, 무슨 일을 하든 잘 할 거야. 나중에 또 연락해요, 알았죠?”

“팀장님, 저는… 정말… 으흑흑흑흑…”

“괜찮아요, 에구…(토닥토닥)”     


펑펑 울었다. 아니, 오열했다. 떠나기 싫었다. 팀장님과 차장님 밑에서 일하면서 더 배우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두 분은 지금도 나의 롤모델이다. 지금도 일을 할 때마다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 이유부터 설명해 주셨던 팀장님과, 일에 감정을 넣지 않는 차장님 스타일을 떠올리곤 한다. 20대 중반, 자존감이 바닥이었을 때 두 분을 만나 자존감도 많이 회복됐다. 그리고 일을 잘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배웠다. 옆에서 지켜본 것만으로도 성장하는 느낌을 받았다.      


차장님은 그해 연말에 호주로 3년간 파견을 갔다. 그리고 2년 후, 나는 시드니로 차장님을 만나러 갔다. 차장님은 숙소를 왜 잡냐고, 집에서 묵으라며 안방도 내어주셨다. 5일을 함께 지내면서 회사에서는 담담하셨던 분이 아이들에게는 한없이 자상한 엄마라는 것을 보게 됐다. 또 한 번 차장님을 만나게 된 것에 감사했다. 차장님 옆에 있으면 뭐든 배우게 된다. 지금까지도 차장님은 내 마음속에서 가장 일을 잘하는 커리어우먼이자, 아이들에게는 한없이 자상한 어머니로 남아있다.     

 

짧은 시간을 함께했지만 지금도 가끔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진짜 인연은 이런 게 아닐까.   

   

'차장님, 잘 지내고 계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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