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18. 쿠스코, 페루 -> 라파즈, 볼리비아
<휠체어도 새옹지마>
어떻게 해서든 비행기에 타겠다는 비장한 각오로 쿠스코 공항에 세 시간이나 일찍 도착했다. 사실 이 코딱지 만한 공항에 아무리 국제선이라도 세 시간 전부터 가있을 필요는 없지만, 나는 그래야만 했다. 오늘 이 비행기를 타지 못하면, 우리의 남미 여행은 사정없이 꼬이게 된다. 호랑이에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지 않은가. 싸워서라도 내 오늘 우리 가족의 비행기표를 쟁취해 내겠다는 비장한 각오로 아마조네스 항공 카운터로 향했다.
카운터가 열리고, 직원은 탑승객 명단을 들고 있었다. 두근두근. 떨리는 마음으로 여권 다섯 개를 건넸다. 직원의 입에서 나온 말은, 내가 가장 두려워하던 바로 그 말이었다.
"명단에 없으신데요. 그리고 오늘은 만석이라 자리가 없습니다."
어째야 할까. 머리가 새하얘진다. 예약증을 보여주며 따져봤지만, 예상대로 항공사는 모든 책임을 여행사 '오르비츠'에게 떠넘긴다. 문제가 생기면 언제든지 연락하라고 호언장담을 하던 오르비츠는 내 메시지를 읽지도 않는다. 오르비츠! 오르비츠!!!!!!!!!!!!!!!!!!! 내가 다시는 니네한테 표 사나 봐라.
분노에 차 오르비츠와의 페이스북 메시지 창을 노려보던 그때, 문득 뇌리를 스치는 기억이 있었다.
'휠체어!'
한 달 전, 나는 12번의 남미여행 비행기 스케줄에 맞춰 각 항공사에 메일이나 페북 메신저를 통해 일일이 엄마의 휠체어 서비스를 예약하느라 고생했었다. 당연히 아마조네스 항공도 페이스북 메신저를 통해 휠체어 서비스를 신청해 둔 상태였다. 휠체어 서비스는 예약 번호가 있어야만 신청이 가능하다. 나는 미친 듯이 과거 메시지를 뒤져, 한 달 전의 대화 기록을 찾아냈다. 그리고 그 화면을 직원에게 들이밀었다.
"이것 보세요. 한 달 전에는 이 예약 번호로 당신네 항공사에서 휠체어 서비스를 확정해 줬잖아요. 그때는 아무 문제없었는데, 이제 와서 좌석이 없다고 여행사 핑계를 대는 겁니까?"
직원은 당황한 얼굴로 메시지를 한참 들여다보더니, 잠시 기다리라며 사무실로 들어갔다. 1분 1초가 지옥 같았다. 잠시 후 돌아온 직원은 우리 가족의 여권 번호를 탑승객 명단에 적기 시작했다. 체크인이 완료되고, 짐을 부치고, 마침내 손에 쥔 다섯 장의 탑승권.
우와아아아아 만만세!!! 한 달 전에 휠체어 서비스 예약하느라 골치를 앓았는데, 오늘 그 서비스가 우리 가족을 살렸다. 인생 새옹지마다!
탑승권을 손에 쥐고 나자 비로소 엄마의 상태가 눈에 들어왔다. 엄마의 안색이 너무 나쁘다. 쿠스코에서 고산증으로 계속 컨디션이 안 좋긴 하셨는데, 오늘은 유독 힘들어 보이신다. 마침 공항 내 무료 진료소가 있다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나, 엄마를 모시고 갔다. 직원은 엄마를 눕히고 산소포화도를 체크하더니 위험한 상태라고 진단했다. 정상 수치가 98인데, 엄마는 간신히 70을 넘기고 있단다.
그간 휴대용 산소캔으로 고산증에 별 효과를 못 봤었는데, 산소탱크는 확실히 다르더라. 한 오분정도 되니 산소포화도가 95 정도로 올랐다. 의사 선생님은 그래도 안된다고 최소 십 분은 더 해야한다셨다. 아이고 저희야 감사하죠. 공항에 일찍 와서 시간도 많은데 맘껏 즤이 엄니에게 산소를 주입해 주소서.
엄마의 변화는 극적이어서, 순식간에 혈색도 돌아오고 컨디션도 회복이 되었다. 이쯤 되니 슬쩍 욕심이 생긴다. 우리 아빠도 컨디션이 안 좋은데, 산소포화도 한 번 재고 산소 탱크 좀 사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굴뚝같다. 그런데 여기가 하도 작은 진료소라, 산소탱크가 두 대인데 하나는 엄마가 쓰고 계시고, 또 한 대는 어떤 서양인이 쓰고 있는데 그 친구는 컨디션이 안 좋다 못해 얼굴이 초록색으로 보일 지경이다. 거기에 비하면 우리 아빠는 너무 건강해 보인다. 하여 아빠도 좀 봐달라고 하고 싶은 마음을 도로 차곡차곡 접어 삼키고 엄마의 회복에 만족하기로 한다.
천금이라도 낼 수 있는 감사한 마음으로 진료비가 얼마냐 물으니, 이 모든 진료가 무료란다. 감사할 노릇이다.
비행기표도 해결되고, 엄마의 컨디션도 좋아졌다.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페루를 떠날 수 있었다.
<나는 왜 라파즈에서 양념치킨을 줘도 못 먹었나>
짧은 비행 후, 볼리비아의 수도 라파즈 공항에 도착했을 때, 나는 또 한 번의 기적을 마주했다. 성과 이름이 뒤바뀌어 걱정했던 딸아이의 비자가 무사히 통과된 것이다. 오늘은 정말 감사할 일 투성이었다.
우리의 숙소는 밥 맛있기로 소문난 '드보라 한인 민박'. 사장님의 픽업 차량을 타고 해발 4,100m의 공항을 빠져나와 3,300m의 시내로 내려가는 길, 창밖으로 펼쳐지는 라파즈의 풍경에 비로소 마음이 놓였다.
그날 저녁, 사장님은 상다리가 부러질 듯한 저녁 식사를 차려주셨다. 그중에는 해외 사는 우리 부부가 그토록 그리워하던 양념치킨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치킨을 단 한 조각도 먹지 못했다. 고산증은 소화불량을 동반하는데, 그게 희한하게도 꼭 임신 말기 같은 더부룩함을 동반한다. 왜 임신 말기에는 아이가 공간을 다 차지해 버려서 아무것도 안 먹어도 속이 불편해 모이 쪼아 먹듯 식사를 깨작이게 되는데, 고산증세가 딱 그렇다. 하여 눈앞의 양념치킨을 두고도 먹지 못하겠는 거라. 남아공에서도 귀하디 귀한 양념치킨인데! 남편과 나는 두고두고 이날을 안타까워했다.
<아직 끝나지 않은 비행기표 이야기>
식사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와 카톡을 확인하는데,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글이 올라와 있었다. 우리와 같은 비행기를 타려던 다섯 명이, 오버부킹으로 탑승하지 못해 버스로 국경을 넘고 있는 중이란다. 아마도, 그 다섯 명의 자리는 우리 가족이 대신 탄 거지 싶다. 그 글을 올린 여행자는 "지금 사실 너무 화가 나야 하는데, 밖의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서 화도 안 나요"라고 말하고 있었다. 아이고. 그래도 풍경이 아름다워 다행입니다. 부디 나머지 여행은 순적하소서.
이때 이후로 나에게는 두 가지 철칙이 생겼다. 첫째는 조금 더 비싸게 사더라도, 비행기표는 항공사 공식 홈페이지에서 사지, 여행사 특가로 사지 않는다. 둘째는 국제선의 경우 항상 세 시간 전, 늦어도 두 시간 반 전에는 공항에 가서 체크인을 먼저 한다. 남미여행을 다녀오고 7년이 다 되어가지만 아직까지 타협 없이 지키고 있는 나의 철칙이다. 덕분에 그 이후로 나의 여행에서는 비행기표 사고가 없었으니, 페루에서 고생하며 귀중한 교훈을 배운 셈 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