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엄마가 이과수 폭포에 도착했다.

Day. 30,31 이과수, 아르헨티나

이 40일간의 남미 여행이 시작된 단 하나의 이유. 엄마의 소원, 이과수 폭포에 마침내 도착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도시 풍경과 달리, 우리를 맞이한 것은 습하고 더운 열대의 공기였다. 숙소에 짐을 풀고 수영장에서 더위를 식히는데, 갑자기 열대성 폭우가 쏟아졌다. 비를 맞으면 큰일 나는 줄 아는 내 안의 '한국인 유전자'가 아우성을 쳤지만, 어차피 물속이다. 우리는 기분 좋게 비를 맞으며 내일의 대장정을 위한 휴식을 취했다.





그리고 마침내 여행 31일째, 우리는 엄마의 꿈, 아르헨티나 이과수 국립공원 입구에 섰다. 휠체어 대여가 가능하다는 정보만 믿고 온 터였다. 직원의 안내에 따라 꼬마기차를 타고 첫 코스인 ‘악마의 목구멍’ 입구에 내렸을 때, 우리는 운명의 상대를 만났다.


파이프로 얼기설기 만든 몸체, 앞둘 뒤하나의 기괴한 삼발이 바퀴. 휠체어라기보다는 수레에 가까운, 듣도 보도 못한 물건이었다. 심지어 사용자가 직접 바퀴를 굴리는 건 불가능하고, 누군가 뒤에서 온 힘을 다해 밀어야만 했다. 생기기만 괴상망측한 게 아니라, 더럽게 안 밀렸다. 이것이 오늘 우리와 함께할 최악의 모빌리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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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코스인 악마의 목구멍까지는 왕복 2.2km를 도보로 들어가야 했다. 열대우림의 습한 날씨 속에서 땀은 비 오듯 쏟아졌다. 아빠와 남편, 내가 번갈아 가며 그 쇳덩이를 밀었다. 낑낑대는 우리를 보며 엄마는 마음이 편치 않으셨던 모양이다. 연신 뒤를 돌아보며 "미안해"라는 말을 내뱉으셨다. "아니야, 괜찮아!" 씩 웃어 보였지만, 솔직히 지난 30일의 남미 여행을 통틀어 가장 힘든 순간이었다.


그 와중에 딸아이는 다리 아프다며 할머니 무릎 위로 올라탔다. 백번 양보해서 미는 사람은 힘들다 치자. 앉은 사람은 편해야 할 것 아닌가! 하지만 이 인간수레는 의자 각도마저 기괴해서, 앉아있는 엄마도 고통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엄마가 걸을 수 없으니 일단 쓰긴 하겠다만, 정말 이가 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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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바탕 사투 끝에 마침내 ‘악마의 목구멍’이 눈앞에 나타났다. 어마어마한 물줄기가 굉음을 내며 떨어지는 장엄한 광경. 온 세상이 이곳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압도적인 풍경 앞에서, 우리는 할 말을 잃었다. 허둥지둥 카메라를 들었지만 렌즈에 튄 물 때문에 모든 사진이 블러 처리되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엄마가 평생 보고 싶어 하셨던 폭포를, 마침내 함께 보고 있으니.




다음 코스는 '로워 트레일'. 끝없는 계단 때문에 휠체어 진입이 불가능했다. 포기하자는 나와 달리, 부모님은 도전해보기로 하셨다. 결국 휠체어 없이, 엄마는 아빠의 부축에 의지해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올라올 때는 어떻게 하려고라며 항의해봤지만 워낙 부모님의 의지가 강하셨다. 뭐, 이미 내려오셨으니 어쩔 수 없다. 어떻게든 되겠지.


로워 트레일은, 말그대로 아래 쪽에서 이과수 폭포를 올려다 볼 수 있도록 길이 나있었다. 폭포 아래에서 쏟아지는 물줄기를 올려다보는 풍경은 그간의 고생을 씻어주는 듯 시원했다. 하지만 돌아갈 길이 까마득했다. 엄마도, 딸아이도 체력이 바닥났다. 딸은 너무 힘들었는지 화장실에서 "하나님, 힘들어요" 하고 울먹이며 기도까지 했다. 아무래도 내가 업고 올라가야 할 모양이었다.


바로 그때, 이과수 공원의 관리 카트 한 대가 홀연히 나타났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달려가 사정을 설명하니, 직원이 흔쾌히 엄마와 딸을 태워준단다. 진짜 다행이다! 그 길고도 가파른 언덕을 카트를 타고 단숨에 올라오니, 그야말로 천국이 따로 없었다.




마지막 코스 '어퍼 트레일'은 계단이 없어 휠체어 진입이 가능했다. '가능하다'고 했지, '수월하다'고는 안 했다. 길이 좁아 쌍방 통행이 어려운 구간에서는 결국 엄마가 내려서 걸어야 했다. 나의 관광을 극한 노동으로 만들어버린 망충한 삼발이 수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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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힘들었지만, 온 가족이 힘을 합쳐 이과수의 세 코스를 모두 완주하고 나니 그 뿌듯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가장 힘들었기에, 역설적으로 가장 강렬하게 기억에 남은 하루. 그렇게 엄마의 꿈이 이루어졌다.




돌이켜보면, 엄마는 평생 나의 지도를 펼쳐주는 사람이었다. 내가 아내와 엄마라는 이름에 갇히지 않도록, 언제나 나의 세상이 더 넓어지기를 응원해 주셨다. 엄마의 그 응원은 늘 극성이었다. 잠실 살면서 광화문에 있는 유치원에 보내겠다고 매일 지하철을 탔고, 좋은 학원 보내겠다고 운전까지 배워 기사를 자처하다 결국 교통사고로 무릎을 다치셨으니 더 이상 말해 무얼 할까. 그러니 엄마가 이과수가 보고 싶다 했을 때, 그 다리로 무슨 남미냐며 핀잔하기 보다는 나 또한 엄마의 지도가, 두 발이 되어주고 싶었다. 나도 엄마를 위해 기꺼이 극성을 부리고 싶었다. 물론 그 극성의 결과가 삼발이 수레와의 사투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래도 힘들었지만, 그래서 더 좋았다. 그렇게 엄마의 꿈을 타고 날아 남미를 일주할 수 있었으니까. 엄마를 세상의 끝, 이과수 폭포에 기어이 세워드렸으니까.


이제 우리 삼대의 배낭여행은 클라이막스를 지나, 열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짧은 시간만 남게 되었다. 하루 하루가 가는게 너무 아깝다. 내일이면 브라질 쪽의 포즈 드 이과수로 넘어가 이과수 폭포를 브라질 쪽에서 바라보고 리우를 거쳐 첫 출발지였던 상파울로로 돌아 갈 예정이다. 끝까지! 건강하게! 무탈하게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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