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7월이었다. 해외 유학이민 박람회를 매년 이맘때 하는 것인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 내가 해외 살기를 알아보던 시기와 정확히 일치하여 그동안 한번도 관심을 갖은 적이 없었던 해외 유학이민 박람회 광고가 자주 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버스를 타고 지나가다가 현수막에서 마주쳤고, 업무 차 시장조사를 갔던 지역의 전광판에서 또 다시 보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 부부는 평소 TV를 잘 보지 않지만 우연히 튼 TV에서조차 보게 되었다. 나는 광고에 주의를 기울이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그 당시에도 의아해하며 신랑에게 말했다.
"이게 왜 자꾸 내 눈에 나타나는 거지? 우리가 준비하는 해외 살기와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니 경험삼아 가보기라도 할까?”
그렇게 해서 우리 부부는 처음으로 코엑스에서 열리는 해외 유학이민 박람회에 가보게 되었다. 너무 신기했다.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유학이나 이민에 관심을 갖고 있는지 몰랐다.
나라별 상담부스는 사람들로 바글바글했는데 우리 부부는 어디로 가서 무슨 상담을 받아야 할지 몰랐다. 이민은 생각조차 해본 적 없으면서 무엇을 물어본다는 말인가! 이리저리 서성이다 일단 말레이시아 국기가 달려있는 부스를 찾아갔던 기억이 난다.
우리는 둘 다 직장인이었고 사업을 하는 것과는 전혀 무관했기에 이민 상담을 해주시는 분은 우리가 상속세를 절감하는 방법, 노후에 은퇴하여 골프나 휴양을 즐기며 여유 있게 사는 방법 등을 설명해 주셨다. 듣기 좋은 얘기였지만 크게 끌리지는 않았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가려던 찰나 신랑이 나를 붙잡았다.
"어차피 온 거 미국 부스도 한번 가보는 것 어때?"
사실 나는 미국에 더 관심이 갔지만 가기 힘든 나라라는 인식이 있어서 흘깃 쳐다보기만 했을 뿐 다가가지 못했다. 하지만 신랑의 말에 용기를 내었고 우리는 줄을 서서 기다리다 차례가 되어 상담을 시작했다.
미국 이민을 하려면 사업을 하거나 미국에 가서 일을 해야 했는데 두 가지 모두 우리가 원하는 것은 아니었다. 사업은 생각조차 해본적이 없었고, 미국에 가서 안 해본 일을 하는 것보다 한국에서 안정적인 직장을 다니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우리에게 남은 것은 투자 이민밖에 없었는데 그것은 큰 돈이 들어가고 리스크가 따르는 방법이었다.
나는 예상했던 대로라며 실망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우리는 미국부스 바로 옆에 있는 캐나다부스를 마지막으로 가보고 집에 가기로 했다.
캐나다에서 투자이민은 몇 년 전부터 시행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도 우리 부부가 한국에서 대기업을 다니고 있으니 그 부분에서 좀 메리트가 있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대기업의 과장, 부장 보다 자신이 직접 운영한 사업체 하나가 이민하는 데는 더 유리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국에 남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어 보였다.
이민에 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지만 막상 상담을 받다 보니 막연한 미래에 하나의 돌파구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진지해졌다.
그러던 찰나 상담하시는 분이 처음부터 이민을 갈 필요는 없고 많은 사람들이 아이들 또는 본인 유학으로 잠시 머물다가 이민을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리고 비자를 받는 것도 미국보다 까다롭지 않다는 말을 해주었다.
해외 이민 박람회를 다녀온 뒤 나는 캐나다라는 생각지도 못한 의외의 장소에서 해외 살기를 위한 돌파구를 찾게 되었다.
아이들 조기 유학으로 결정을 내린 뒤 그때부터 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우리 부부는 유학원을 찾아가 상담을 받고, 비자 발급부터 학교 등록 등 필요한 과정을 차근차근 밟아 나갔다. 해외 유학이민 박람회를 7월에 다녀온 뒤 그해 12월에 밴쿠버로 떠났으니 남들은 다음 학기를 준비할 때인데 우리가 얼마나 속전속결로 모든 일들을 처리해 나갔는지 기억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