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살기의 방향을 어느정도 구체적으로 잡아갈 무렵 나는 미뤄왔던 일을 처리해야 할 때가 되었음을 느꼈다.
바로 회사에 휴직을 알리는 것이었는데 그해 나는 대리에서 과장으로 승진을 했다. 아마 이 회사에 계속 남을 생각이라면 간부가 된 이 시점부터는 나의 존재를 더 적극적으로 회사에 알릴 필요가 있었다. 휴직 통보가 분명 그 방법은 아니었을 것이다.
승진을 하고 월급이 오르자 나는 또다시 결정을 주저하게 되었다. 하필 이 시기에 육아휴직을 통보해야 하다니! 회사라는 안정적 기반과 설레는 꿈을 위한 도전을 두고 이리저리 재고, 고민하고 있었다.
하지만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생각되었을 때 나를 밀어붙인 건 아들과 병원에서 휴가를 보낼 때 나의 내면을 울렸던 강력한 속삭임이었다. 아이들과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미루지 말고, 이번에는 행동할 때라고 소리쳤던 그 강력한 속삭임을 이번에는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내게 남아있던 육아휴직 카드는 마치 이 때를 기다린 듯 내 삶을 위한 가장 적절한 시점에 사용되었다.
육아휴직을 하고 해외 살기를 떠날 날도 이제 몇 달 남지 않았다. 그 무렵 우리 부부가 써낸 책의 원고가 책으로 출간되었다. 책이 출간된 지 1개월도 채 되지 않은 시점에 한 강연 기획자로부터 메일을 받게 되었다.
담당자는 맞벌이 부부를 대상으로 하는 경제, 육아 강연이 필요했는데 이에 딱 맞는 적임자를 찾았다며 반가워했다. 나는 반은 기쁘고 반은 걱정스러웠다. 기뻤던 것은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나타난 뜻밖의 기회 때문이었고, 걱정스러웠던 것은 이제 휴직이 아닌 퇴사를 고민할 시점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회사 내규상 투 잡은 허용되지 않았고 나는 회사 또는 퇴사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몇 달 전 내린 휴직은 사실상 간부급 직원들에게는 예외적인 행동이며 앞으로의 고과, 승진에 그다지 좋지 않은 영향을 줄 것이었다. 그것은 어찌 보면 회사와의 연결고리를 끊지 않고 남겨두려는 행동에 불과했다. 하지만 상황은 네 인생이 걸린 중요한 문제라면 그런 애매모호한 태도는 도움이 되지 않는 다는듯 좀 더 확실한 태도를 취할 것을 요구했다.
퇴사를 마음먹고도 스스로를 다독이며 마음을 되돌린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나는 지금도 회사를 나온 것이 내 인생에서 가장 대단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때의 대범한 결정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우리 가족도 없다. 또 다시 그 상황으로 돌아가게 된다 해도 나의 결정은 결코 변함이 없을 것이다. 어떻게 어려운 결정을 내릴 수 있었냐고 묻는다면 세상의 답이 아닌 내 안에서 답을 찾은 것이 도움이 되었다고 말하고 싶다.
퇴사를 하고 난 뒤 나는 본격적인 강의 준비에 들어갔다. 대중들 앞에서 강의를 해 본적은 없었지만 우리의 경험이 진실로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강의에 임했다. 맞벌이 부부라는 공통점 때문인지 강의 후에도 많은 질문이 이어졌고, 참석자들과 자연스럽게 소통하면서 긴장했던 마음도 많이 수그러들었다.
이후 캐나다로 떠나기 전 담당자의 요청으로 두차례 더 강연을 진행하였고, 우리 부부를 인터뷰 한 기사가 매체에 실리면서 책의 홍보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