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를 하고 해외 살기를 떠난다고 할 때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했다. 사실 나도 원하던 두 가지를 이렇게 빨리 이루게 될지는 몰랐다. 그리고 다른 사람도 아닌 내가 이런 대담한 결정을 내린 것이 믿기지 않을 때도 있다.
하지만 대담한 결정을 내렸다고 해서 그 사람이 항상 용기 있는 것은 아니었다. 퇴사를 하고 난 뒤 시간이 지날수록 걱정과 두려움이 생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걱정과 두려움은 오랜 시간 나와 함께한 감정이다. 기쁨이나 사랑은 내게 잠깐 머물렀지만 걱정과 두려움은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고 수시로 찾아왔다.
걱정거리가 있는 상태에서 그 사람은 행복할 수 없다.
그런 부정적 감정을 안고 살 필요가 없다는 것을 좀 일찍 알았으면 좋았겠지만 당시는 어찌할 도리 없는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 그리고 그 해법을 내면에서 찾기보다 외부 문제를 해결하는 데 온통 초점을 맞췄다.
당시 퇴사와 해외 살기는 내게 또 다른 걱정거리를 안겨주었는데 돈과 관련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내가 회사를 그만두면서 수입이 절반으로 줄었다는 것, 남편의 휴직으로 당분간 수입이 없을 거라는 것, 그동안 투자한다고 받은 대출금 이자 납입 등 걱정이 끊이지 않았다.
나는 모든 걱정거리를 안고 밴쿠버에 도착했다. 환경이 바뀐다고 해서 모든 걸 새로 세팅해 시작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걱정스러운 마음상태는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었다.
밴쿠버는 내가 완전히 정착할 곳이 아닌 잠시 머무르는 곳이었기 때문에 보금자리를 살기 편안한 곳으로 만들려는 생각보다 불편함이 있어도 감수하는 쪽으로 행동하게 되었다.
우리 가족이 도착한 겨울은 생각보다 춥고 으스스했는데 바람막이 커튼을 살 생각도, 난방이 잘 되는 히터를 살 생각도 하지 못했다. 게다가 매일 아이들 도시락을 싸야 하고 외식이나 음식배달도 한국처럼 편하지 않기 때문에 요리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는데 막상 음식을 하다 보니 요리 도구와 각종 양념 등 필요한 것들이 계속 늘어만 갔다. 물건을 살 때도 품질보다 가격이 저렴한 것들 위주로 구매했는데 이 마저도 마음 편히 돈을 쓰지 못하고 불편함을 느꼈다. 게다가 막내 임신 사실은 내 마음을 더 무겁게 만들었다.
내가 벌려 놓은 일들이 너무 무모하게 느껴졌고 스스로에 대한 자책으로 너무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나에게 위안을 준 것은 다름 아닌 책이었다.
나의 영혼은 앞으로 벌어질 모든 일들을 알고 그 책들을 내게 내밀었던 것일까? 그 책들을 가져오지 않았다면 내 삶이 어떻게 되었을지 생각하고 싶지 않다.
책 속에서 말하는 고난, 고통, 두려움의 상황들은 마치 내 이야기를 하는 듯 느껴졌고 나는 책을 읽으며 연신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임신한 몸으로 졸음과 싸워가며 영어 공부를 했던 이유는 영어 공부를 빨리 끝내고 마음 편히 책을 읽고 싶어서였다.모두가 잠든 새벽과 늦은 밤은 책 읽기에 더없이 좋은 시간이었다.
내 평생 책을 읽으며 필사를 한 적이 없지만 노트에 받아 적으며 깊이 되새기는 나를 보았다. 하루 일과가 시작되고 와르르 무너져 버린 마음가짐도 책을 읽음으로써 괜찮다고 위로받았고, 다시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얻었다.
특히 돈이 충분치 못해서 생기는 여러 불편한 상황들이 책에서 말하는 부에 관한 심상화를 통해 모두 해결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이루고 싶은 꿈을 출력하여 눈에 가장 잘 띄는 곳에 붙여 두었고, 원하는 목표를 적고 잠자기 전 그 모습을 생생하게 그리며 잠이 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부의 심상화가 실현되는 것을 경험했다면 내 삶에서도 반드시 나타나리라 믿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