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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지니 Dec 20. 2023

내가 인생의 리셋(Reset) 버튼을 눌렀을 때

멕시코 Cancun의 The Grand Moon Palace 호텔 안에는 온 가족이 함께할 수 있는 게임라운지가 있다. 그곳에서 아빠와 아들은 총격싸움을 하고 나는 자동차 레이스를 했다.


자동차 레이스를 시작하기 전에 몇 가지 결정할 것이 있는데 어느 국가/도시에서 레이스를 할지 정하면 선택한 도시의 배경이 스크린에 펼쳐진다. 그리고 어떤 자동차를 탈지 결정하고 나면 게임이 시작된다.


처음에는 이리저리 부딪히고 낭떠러지로 곤두박질치고 차가 뒤집어지기도 했다. 내가 몸을 너무 이리저리 과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이내 적절히 힘 조절을 해가며 균형을 되찾았다.


한창 자동차 레이스 게임에 빠진 내 모습을 보니 지난 5년간 캐나다에서의 삶이 오버랩되었다. 앞만 보고 달려가다 돌연 리셋 버튼을 눌러 캐나다라는 낯선 땅에서 다시 레이스를 하고 있는 나의 모습 말이다.


이제는 회사라는 안정적인 자동차 대신 오직 내 힘으로 달리고 있었는데 게임과 나의 삶 사이의 공통점은 최종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인생에도 적절한 힘 조절이 필요하다는 것이고 차이점은 게임을 할 때는 주변에 무엇이 있는지 쳐다볼 겨를 없이 무조건 앞을 향해 돌진했지만 나의 삶은 1등보다 최종 목적지로 향하는 과정 자체에 의미가 있으며 타인의 기준에 맞춘 성공보다 나 스스로의 성장에 더 초점을 맞추게 되었다는 데 있다.


내가 인생의 리셋 버튼을 눌렀을 때 정해진 것 하나 없는 삶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모든 게 불확실했고 어디로 가야 할지 잘 몰랐다. 하지만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은 우리가 설정한 삶의 이정표가 허튼 길로 들어서거나 방황하지 않도록 나침반 역할을 톡톡히 해주었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는 것이 당장의 수입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오히려 은퇴 없이 일할 수 있기 때문에 남들이 생산활동을 멈추어도 우리는 원하는 일을 할 수 있을 것이었다.


우리에게는 금전적인 부분도 중요했고 또한 인생 전반에 걸친 삶의 그림도 미리 내다보았는데 30~40대에 쏠려 있는 에너지를 인생 전반에 걸쳐 균등히 배분할 수 있다면 특정 시점에 과부하에 걸릴 일은 없을 것이고 그 에너지가 나이 들어서도 쓸 수 있는 열정이 되기를 바랐다.


밴쿠버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각자 좋아하는 취미에 온전히 빠져들 수 있었다. 원하는 것을 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미리 한국에서 준비해 온 덕분이었다.


게다가 밴쿠버 날씨까지 한몫하여 우기가 시작되는 11월부터 겨울까지는 오후 4시만 되어도 바깥은 어둡고 쥐 죽은 듯 고요 해져 실내에서 작업하기에는 오히려 안성맞춤이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오면 엄마 옆에 나란히 앉아 캘리그래피를 하고 아빠에게 자투리 가죽을 얻어 작은 소품도 만들었다.


우리 가족이 사는 모습은 한국에서 살 때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는데 처음에는 이 낯선 광경이 해외 살기 1년간 누릴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라 여겼다. 나는 여전히 새로운 도전이 우리 삶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완전히 확신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삶은 우리가 이정표를 놓치지 않는 한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며 우리를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이끌었다.


처음에 남편은 회사를 그만둘 생각이 없었다. 우리 둘 중 한 명은 안정적인 소득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해외 살기를 마치면 한국으로 돌아갈 계획이었다.


주어진 1년간 남편은 어릴 적 로망이었던 취미생활에 집중하고, 나는 하고자 하는 일을 좀 더 명확하게 구체화하기로 하였다.


하지만 우리의 계획과는 달리 초반부터 영주권 준비에 들어가면서 나는 일과 관련된 준비를 모두 접고 영어준비에 매달리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삶의 흐름은 남편은 취미생활을 지속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었다. 그리고 영주권을 준비하는 것이 아이들을 위한 것이라 생각했으나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아가기 위한 우리 가족의 삶의 터전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었음을 나중 에서야 알게 되었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자 한다면 그 일을 시작하기 전에 자신의 성향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회사를 다닐 때는 나에게 부족한 부분이 있어도 누군가 보완하거나 지적해 주는 사람이 있어서 크게 문제 되지 않았다.


하지만 회사를 나오고 나서야 스스로를 좀 더 냉철하게 바라보고 강점과 약점을 파악하게 되었는데 나는 빠른 결단력과 추진력이 있어 무언가 생각나면 바로 실행하는 타입이다. 또한 새로운 것을 기획하고 타인을 감동시키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디테일과 끈기가 부족하여 처음에는 거창하게 시작했던 일들도 중간에 흐지부지 되어버리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회사라는 조직은 워낙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일하는 곳이다 보니 내가 디테일이 부족해도 상사에게 기획안을 보고하거나 타 부서와 협의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놓쳤던 부분이 발견되었고 또 내가 열정적으로 행사를 기획하면 기획안에 따라 실행해 주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마무리가 부족해도 그다지 부각되지 않았다.


회사라는 조직에서 자신을 크게 드러내기도 쉽지 않지만 한편으로 단점이나 부족한 부분도 얼마든지 축소시킬 수 있는 것이다. 회사를 나오겠다고 결심했다면 자신의 단점이나 부족한 부분을 정확히 알고 개선시킬 필요가 있다.


나와 달리 남편은 꼼꼼하게 따져보고 충분히 생각한 뒤 일을 진행하는 타입이라 시작은 다소 더뎌 보이지만 결과가 나올 때까지 어떻게 든 방법을 찾고 물고 넘어지는 타입이다.


내가 호기 좋게 벌려 놓은 일들도 남편의 마무리가 없었다면 그저 시도해 본 것 만으로 충분했을 텐데 우리는 실제로 많은 결과물을 만들어 냈다. 해외 살기를 떠나온 것과 국내외 부동산 투자 등 말은 내가 꺼냈어도 자금이나 부동산 제도 및 법률적인 부분 모두 남편이 꼼꼼하게 따져보고 신중하게 검토한 덕분에 원하는 결과까지 이를 수 있었다.


좋아하는 일을 시작하고 그것을 비즈니스로 만드는 과정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남편은 이미 포화된 가죽공예 산업에 후발주자로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작품이 수많은 사람들의 구매로 연결되게 만들었고 나는 그것이 사람들에게 전달되도록 하는 과정에서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우리 부부는 회사라는 조직을 나왔지만 서로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성향을 지닌 덕에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아가는, 마치 꿈만 같이 느껴졌던 일을 현실 속에 이뤄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전 21화 은퇴 시기를 타인이나 외부 환경에 맡기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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