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트가 제시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개념은 많은 사람이 이미 알고 있다. 아마 대학에서 심리학 수업을 듣거나 책을 통해 읽어본 적이 있는 사람은 "오이디푸스가 경쟁자인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차지한다"는 근친상간적 내용 정도로 알고 있을 것이다. 서구 기독교의 영향과 동양 유교 문화의 영향 그리고 인간은 무언가 도덕적이고 고상한 존재라는 인류적 나르시시즘을 지키고 싶은 많은 이들에게 그러한 이야기는 차마 고려조차 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일 것이다. 나 역시 처음에 그 내용을 접했을 때 그랬다. 학부 때 듣던 철학 교양 수업에서 내가 너무 좋아했던 교수님이 그 개념을 설명하는 것을 처음으로 들었다. 그 교수님의 이야기는 뭐든 귀 기울여 들을 준비가 된 학생이었다. 그런데 '프로이트'라는 사람을 이야기하면서 설명한 그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이야기는 아무리 이해해보려 애써도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정말 말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유일하게 손을 들고 말이 안되는 이야기 아니냐며 교수님과 약간의 논쟁을 하기도 했다. 말이 안 되는 그 개념의 타당한 부분을 그래도 옹호하려 내 주장에 반박하는 교수님께 화가나서 쉬는 시간에 가서도 따졌던 것 같다. 그런데 중요한 건 그런 근친상간적인 좁의 의미보다 더 본질적이라 할 만한 무언가가 있었다.
우선 간단하게 오이디푸스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오이디푸스는 테베의 왕인 라이오스왕과 조카스타왕비 사이에서 태어난다. 오이디푸스가 아기일 때, 이 부모들은 아이가 자라서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차지할 것이라는 신탁의 경고를 받는다. 그리고 이들은 이 신탁의 예언을 그대로 믿어버린다. 그리하여 갓난 아기인 오이디푸스를 불구로 만들어 내다버린다. 그러나 오이디푸스는 살아 남아 코린토스의 왕과 왕비에 의해 양육된다. 양부모인 이들을 친부모로 알고 자란 것이다. 그러다 어느 날 오이디푸스는 델포이의 신탁을 듣게 되는데, 그 내용은 마찬가지로 자기가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양부모를 자신의 친부모로 믿었던 오이디푸스는 부모를 보호하기 위해 그들을 떠나게 된다. 이는 신탁을 통해 듣게 된 자신의 운명에 저항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그렇게 자신이 양육된 곳을 떠나 길을 가던 도중 길목에서 누군가를 만나 시비가 붙어 그를 살해하게 되는데, 그가 바로 자신의 친아버지인 라이오스왕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테베에 도착하게 되는데, 그때 그 도시에는 스핑크스라는 괴물에 의해 황폐화되고 있었다.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는 사람은 다 죽게 되었다. 이때 오이디푸스가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게 된다. 그 보상으로 그는 테베의 왕이 되고 자신의 친어머니인 조카스타와 결혼하게 된다.
여기에는 분명 근친상간의 요소가 있다. 대부분의 경우, 정말 문자 그대로의 그 내용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중요한 이야기라고 알고 있다. 그러나 이는 한 개인의 운명에 대한 이야기로 이해해야 한다. 운명이란 게 대체 뭘까? 자유로운 현대사회에서 우리는 누구나 정해진 운명 따위는 없다고 생각한다. 모든 것이 자신의 '선택'에 따라 달라진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선택을 통해 결국 자신이 운명을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이는 자기 자신에 대해 너무도 무지하기 때문에 갖게 되는 생각이다. 이야기 속 오이디푸스는 그렇게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다. 자신에게 내려진 신탁의 경고를 들었고, 그 신탁의 내용이 실현되는 것을 어떻게든 막아내고자 살던 곳마저 떠났다. 즉, 파괴적인 운명을 바꾸기 위한 의식적이고 합리적인 '선택'을 나름대로 한 것이다. 그리고는 길에서 만난 한 남자를 죽이고, 황폐화 된 테베를 구했다. 이때 오이디푸스는 결코 자신의 삶이 신탁의 경고대로 실현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모든 것을 자신의 주체적인 판단에 의해 선택했다. 그러나 그 선택의 결과는 결국 예정된 운명을 그대로 실현한 것이었다. 다시 말해, 그는 자신의 운명에 저항함으로써 그것을 바꾸려고 했지만 결국 자신도 모르게 그 운명대로 되고 말았다.
오이디푸스가 자신에 대해 무지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무의식의 특성이다. 자신도 모르는 그 힘, 알려지지 않은 채로 있는 그 힘이 바로 그것이다. 만약 오이디푸스가 델포이 신탁의 내용을 곧이 곧대로 믿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더 나아가 자기 자신에 대해 온전한 인식을 갖고 있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무언가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저 운명에 이끌리는 대로 살아가지 않았을 것이다. 운명에 저항하기보다 그것을 이해하려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의 행동은 불길한 운명에 대한 예언을 피하고자 '의식적으로' 노력했으나 실은 자기에 대한 인식이 결여된 상태, 즉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이것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가장 중요한 의미이다.
많은 사람의 삶은 사실 이러하다. 똑똑하고, 유능하고, 나름 성공적인 삶을 사는 것 같은 사람이라고 해도 자신이 모르는 '그 어두운 힘'에 의해 운명지어지는 것을 피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그 힘은 충분히 이해되고 인식되어지지 않는 한 제어할 수 없는 것이다. 실제로 사람의 성격은 타고난 측면보다는 환경적인 면이 더 크게 영향 미치는데, 자기에게 일어난 일들의 의미를 소화하고 내 일부로 통합하는 것은 그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그 통합의 정도에 따라 운명적인 것에 휘둘리는 정도가 달라지게 된다. 우리는 과연 얼마나 깨어있을까? 자신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을까? 나를 움직이는 힘이 어디에서 오는지 알고 있을까? 만약 이러한 어두운 힘의 정체와 근원을 조금이나마 알게 된다면 그것에 휘둘리지 않는 삶을 살 뿐만 아니라 나에게 보다 좋은 선택을 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