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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굿이너프 Feb 20. 2024

정상적인 발달이란 무엇인가: 상징화 능력

인간은 모두 온전히 발달이 이루어지지 않은 원초적인 상태로 태어난다. 말 그대로 주변 환경에 전적으로 의지한 채 던져진 채로 삶을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원초적 상태, 던져진 상태. 이러한 말들은 생각보다 무서운 이야기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적어도 유년기에는 자기 스스로 운명을 결정할 힘이 없기 때문에, 운에 의해 나의 많은 것이 영향받고 결정될 수 있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그럼 어떤 것이 건강하고 정상적인 발달이고 어떤 것이 비정상적인 발달일까? 그것을 가르는 기준이란 과연 무엇일까?

 



정상적인 것과 비정상적인 것을 구분하는 일은 어쩌면 모호한 일이다. 그렇지만 한 사람이 성인으로서 비교적 건강하고 조화로운 성장을 했느냐 그렇지 않느냐를 가늠해볼 수 있는 몇 가지 기준들이 있을 것이다. 심리적 성장에 관해서는 그 중 하나가 바로 상징화 능력(symbolization)이 잘 갖추어졌느냐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사실 어느 정도 성장한 대부분의 성인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 능력을 대체로 가지고 있다. 그래서 사회생활도 하고 인간관계도 하고 사랑도 할 수 있다.   


그럼 정확히 상징화 능력이란 무엇일까? 그 이야기를 하기 전에 상징화가 형성되는 전 단계의 어린아이들이 어떤 과정을 거치게 되는지를 한번 살펴보자. 만 3살 정도 된 아이가 있다. 그에게 세상은 과연 어떻게 보일까? 먼저 세상이 어떤 곳인지 아직 잘 모르는 그의 마음 속에는 다양한 환상과 소망들이 있을 것이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자기만을 위해 존재하고 있다는 환상, 저 인형이 나의 행동으로 인해 기뻐하거나 슬퍼하고 있다는 믿음, 내 앞에 있는 저 사람이 나와 똑같이 생각하고 있다는 착각 등. 이처럼 자기중심적인 믿음은 어린시절엔 매우 자연스럽다. 이것이 어린아이가 갖는 하나의 심리적 상태로서 심리적 동등성 모드(psychic equivalence mode)라고 불린다. 아직 실제 현실과 자신의 환상이 구분되어 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인데 '자신의 마음과 세상은 같다'라고 느끼는 상태이다. 이 상태에 있는 아이에게는 자신이 그렇게 느끼면 세상도 실제로 그러한 것이다. 


반대로 또 하나의 심리적 상태는 가장 모드(pretend mode)라고 불린다. 이 또한 만 3~4살 정도의 아이에게서 볼 수 있다. 이 시기 아이들은 부모와 '놀이'라는 것을 하기 시작한다. 이는 '현실'과 분리된 상태에서 이루어지고 그 속에서 자신의 환상을 표현하는 상태로 들어가는 것이다. 이때는 주로 부모가 함께 참여하게 되는데, 어떤 장난감 로봇을 가지고 마치 실제로 살아있는 것처럼 여기면서 악한 존재를 무찌르는 선하고 강한 존재로 표현하고 이러한 자신만의 환상 속에 부모를 참여시키려고 한다. 그리고 정상적 발달이 이루어진 부모라면 대부분 이러한 비현실적인 스토리에 함께 참여해주고 그 세계를 인정해준다. 이러한 가장 놀이 속에서 아이는 안정감을 느끼고 스스로의 상상력을 통해 하나의 현실을 창조하는 힘이 내 안에 있다는 믿음이 생겨나게 된다. 이때 중요한 것은 가장 모드 혹은 놀이에는 '현실'이 침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자신만의 상상적 세계가 인정되지 않을 때 불안이 초래되고 심한 경우 세상을 위협적인 곳이라고 느끼게 된다. 그래서 이는 심리적 동등성 모드와 달리 '자신의 마음과 세상은 분리되어 있다'고 느끼는 상태이다. 


어린아이가 세상과 교류하는 이 두 심리상태가 어떻게 건강한 발달과 연관될 수 있을까? 먼저 아이는 놀이 속에서 자신의 판타지와 소망을 어렴풋이나마 인식하게 되고 이것은 궁극적으로 '마음에 대한 이해'로 발전할 수 있다. 즉, 상징화로 나아가게 된다. 부모가 아이의 환상의 표현에 대해 그 세계를 인정해주면서 '마치 ~인 것 같은' 태도를 보여주는 것은 결과적으로 그의 내적 세계의 소망을 외부 세계와 연결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비현실적인 환상과 놀이가 거부당하지 않고 정확하게 받아들여질 때 부모의 마음에서 자신의 소망을 지각하게 되고 자신만의 세계를 허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는 이해받고 있다는 느낌과도 연결이 된다. 이것이 상징화로 가는 과정이다.


상징화란 나와 타인의 말이나 생각이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에 대한 '표상'임을 이해하는 능력이다. 다시 말해 어떠한 내적 또는 외적 자극이 직접적으로 나에게 다가오는 실재가 아니라 그 실재를 반영하는 표상임을 이해하는 것이다. 이를 구분하는 일은 상당히 중요하다. 세상에는 나를 자극하는 많은 것들이 있고 또한 상처가 되는 일들이 있다. 어떤 사람은 상징화가 작동하지 않아서 누군가의 작은 말 한마디가 쉽게 가슴에 꽂히고 그로 인해 상처 받는다. 또 말의 의미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그 이면에 어떤 악의적인 의도가 있다고 느낄 수도 있다. 이러한 것들 모두 타인의 말과 심리적 사건이 무언가에 대한 표상이 아닌 실제 물리적 자극처럼 들어오게 되는 것이다. 상징화가 충분히 강하게 발달하지 못한 성인들은 이러한 일을 자주 겪게 된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이러한 능력은 '놀이' 과정 속에서 잘 발달한다. 상상적 놀이에 대한 부모의 참여와 반응을 통해 아이는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외부 세계(부모의 반응)에서 자각하고 그럼으로써 그것에 상응하는 상징 혹은 표상을 보게되는 것이다. 즉, 자신의 내적 세계가 현실에서 나타나는 것을 볼 때, 외부의 어떤 것이 자신의 마음 자체와 동일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반영하는 표상임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아이의 판타지를 적절히 담아주는 부모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리고 '실재'가 아닌 '표상'에 대한 이해는 상징화의 발달로 이어진다. 이는 앞서 말한 두 가지 심리상태인 심리적 동등성 모드와 가장 모드가 통합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두 가지는 겉보기에 서로 상반되는 특성을 띤다.

하나는 자신의 마음과 세상을 같은 것으로 또 하나는 자신의 마음과 세상이 분리되어 있는 것으로 느끼는 것이다. 어떤 세계 혹은 소중한 누군가와 하나되는 것처럼 느끼고 동시에 하나가 아닐 수도 있음을 인정하는 것은 성숙한 성장에 가장 중요한 조건일 것이다. 누군가와 친밀한 관계를 맺고 그 사람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불가피하다. 서로의 세계가 만날 때 비로소 잠시나마 하나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좋아하는 취미나 활동에 몰입할 때에도 나를 내려놓고 그것과 하나될 때 온전히 그 세계를 탐험할 수 있다. 이는 하나되는 능력을 의미한다. 반면 가장 가까운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그 사람이 나의 연장이 아닌 고유한 개성을 지닌 존재이고, 그와 나 모두 각자만의 세계가 있음도 인정해야 한다. 이 두 가지가 함께 인정되고 수용될 때 비로소 건강한 의존과 독립의 관계가 가능해진다. 




심리적 동등성 모드를 극복한다는 것은 자기 중심적인 세계에서 벗어나고 다른 사람의 마음은 내 것과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나 아닌 다른 존재도 고유한 소망을 지녔음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래서 두 미숙한 심리상태가 통합된다는 것은 결국 나의 세계도 있고, 그와 구분되는 현실도 있음을 모두 인정하는 것이다. 이러한 균형이 깨질 때 현실은 없고 자기 세계만 있거나 반대로 현실만 있고 자신의 세계는 없는 사람이 되어 버린다. 그리고 이 균형은 부모 또는 다른 또래들과의 놀이 속에서 가장 잘 발달한다. 다른 사람의 마음 속에서 나의 생각들이 어떻게 표상되고 이해되는지 확인하는 것은 자신만의 세계를 받아들임과 동시에 일정부분 포기할 수도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이는 환상과 현실 사이의 연결을 제공해주는 부모나 다른 사람의 역할을 통해 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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