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 전에 셸 실버스타인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읽은 적이 있다. 그 책을 읽으며 동화 속 나무의 사랑이 크고 감동적이어서 깊은 인상으로 남았던 기억이 있다. 나무는 소년이 찾아올 때마다 자신의 것들을 하나하나 내어주고 시간이 흘러 점차 아무 것도 남지 않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이렇게 그루터기만 남은 상태에서 나중에 소년이 찾아왔을 때는 앉을 자리마저 내어준다. 아무리 동화라지만 이렇게까지 무조건적인 사랑이 있을까 싶었다. 정말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줄 수 있을까?
나무는 소년에게 사과를 내어주고, 줄기와 가지를 내어주면서도 기쁨을 느꼈을 것이다. 소년 또한 자신이 원하는 것들이 하나하나 채워져갔을 것이다. 소년은 나무로부터 자신이 원하는 것들을 점점 충족해 나가고, 나무는 자신의 희생을 통해 소년이 만족하는 것을 보며 기뻐한다면 이 사랑은 두 존재 모두에게 좋은 것이 아닐까? 사랑의 중심에 '결핍'이라는 것이 자리잡고 있다면 그럴 것이다. 모든 사람은 부족함, 즉 결핍이 있고 이를 채워줄 것 같은 대상을 원하기 마련이다. 이는 사랑과 관계맺음이 결핍과 충족 같은 것에 가장 큰 기반을 두고 있다고 가정할 때의 이야기이다.
그런데 분명하게 결핍된 것이 있어서 무언가를 사랑하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큰 결핍이 있지 않아도 그렇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존재에게 있어 누군가를 원한다는 것은 비어 있는 것을 채워야 하는 형태의 사랑과는 조금 의미가 다르다. 나무와 소년의 이야기와는 다르게 말이다. 나무와 소년의 이야기는 전자의 경우에 해당된다. 어린아이가 성장하기 위해 부모를 필요로 하듯 소년은 나무의 존재를 필요로 한다. 그가 제공해주는 것이 없이는 제대로 살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럼 나무의 사랑은 어떨까? 나무는 말 그대로 무조건적인 사랑을 준다. 그런데 무조건적인 사랑은 어떤 사람이나 무언가를 그 자체로 열망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무의 무조건적인 희생은 소년의 필요에 따른 사랑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행복의 정복>에서 러셀은 행복한 사람의 특징이 무언가에 대한 열정을 가지는 것이라고 했는데, 그러기 위해서 열정은 자신의 현재 상태로부터 도피하기 위한 것이 아닌 어떤 대상 그 자체를 탐구하고 탐닉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했다. 사랑의 영역도 이와 비슷할 것 같다. 전자는 소극적인 형태의 열정이고, 후자는 적극적인 형태의 열정이다. 소극적인 것은 비어있는 무언가를 채워야 하는 것이고, 적극적인 것은 필요에 따른 것이 아니라 그저 어떤 것(혹은 사람)을 그 자체로 향유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나무의 사랑 역시 소년과 마찬가지로 소극적인 형태의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자기를 희생하는 사랑은 결국 소년과 함께하는 시간을 그 자체로 향유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점점 더 작아지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희생적 사랑, 헌신적 사랑 같은 것은 물론 아름답다. 그러나 그것이 언제나 희생 그 자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무언가에 자기를 온전히 내맡기는 데서 자신의 존재가 더 견고해질 수도 있다. 어떤 어머니들은 아이를 기르는 과정에서 옥시토신 같은 행복 호르몬을 분비하고 대체할 수 없는 기쁨을 느끼기도 한다. 자기 존재를 마냥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다. 이는 도피나 어떤 목적을 위해서가 아닌 그 자체로 열정을 느끼게 하는 여러 활동들에도 해당될 수 있다. 우주의 기원을 알고 싶은 천문학자는 오직 그 비밀을 밝히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많은 에너지를 쏟을 수 있다. 이런 사람들에게 아낌 없이 준다는 것은 자기 존재를 마냥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이 더 새로워지는 일일 것이다.
물론 이러한 열정을 갖는 것은 모두에게 가능한 일도 아니고, 결핍과 충족에 기반한 사랑과 마찬가지로 사랑의 한 종류일 뿐이다. 그러나 단순히 비어있는 것을 채우고 주고나면 아무 것도 남지 않게 되는 것이 아니라, 내어주면서도 작아지지 않을 수 있다면 그건 (사랑이든 열정이든) 적극적 형태의 어떤 것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때 사랑과 희생은 서로 다른 말이 된다. 그렇다면 나무는 과연 자기 것들을 하나씩 잃어가면서도 그것을 보상할 만큼의 행복을 느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