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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Jun 19. 2024

[편지글] 당신의 편지가 수신되었습니다.

<흔들리지 말고 마음 가는 대로>, 수산나 타마로

이탈리아 작가, 수산나 타마로의 <흔들리지 말고 마음 가는 대로>는 죽음을 앞둔 할머니 ‘올가’가 손녀에게 쓰는 열다섯 통의 편지 글입니다. 올가는 그동안 비밀스럽게 묻어두었던 가족의 역사와 자신의 삶을 통해 죽기 전, 손녀에게 남기고 싶은 말을 편지로 남깁니다.


갈림길에 선다는 건 다른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과 맞부딪히게 된다는 뜻이란다. 그들과 합쳐지게 될 것인지, 끝내 모른 채 지나치게 될 것인지는 오직 순간의 선택에 달려 있지. 네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발걸음에 따라 너와 네 곁에 있는 사람들의 인생이 달라질 수도 있단다. (91쪽)


살다 보면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지요. 팔십 년을 산 올가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이별했을까요. 책에는 올가가 만나고 이별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올가는 손녀에게 ’살아가는 동안 마주한 여러 갈림길에서 맞부딪힌 사람들과 합쳐질지, 모른 채 지나칠지‘는 ’순간의 선택‘이라고 합니다. 그 선택이 때로는 의도적일 수 있으나, 때로는 의도가 개입할 여지도 없이 무의식 중에 이루어질 수도 있다고 해요. 제 삶을 돌아봐도 지금껏 맺은 많은 인연들이 대체로 생각지 않은 우연으로 맺어진 것 같습니다. 올가의 표현대로라면 무의식 중에도 어떤 끌림으로 인해 ‘순간의 선택’을 해온 것이 아닐까 싶어요.


나이를 먹을수록 새로운 인연을 맺는 일은 어렵고, 맺은 인연을 지키는 일은 더 어렵습니다. 인연을 맺고 지키려면 물리적인 시간을 내어야 하고 진심 어린 마음을 내어야 하는데, 기존의 생활을 유지하면서 그러기는 참 쉽지 않아요. 그래서인지 새로운 인연 앞에서 자주 주저하게 되고, 겨우 맺은 인연을 지키는 일에도 잠깐 사이 소홀해지고 맙니다. 생각해 보면, 주저하고 소홀해지는 것도 그 순간의 선택이었을지 몰라요. 더 중요한 일이, 더 급한 일이 있다고 생각했을 테니까요. 어쩌면 또다시 누군가와 새로운 인연을 맺는다는 것이 두려웠을지도 모르고요.


저는 인연을 믿습니다. 그 마음으로 만날 사람은 반드시 만나고, 헤어질 사람은 어떤 이유로든 헤어진다고 생각해 왔어요. 사십 년쯤 사는 동안 귀한 인연도, 소중한 인연도 많았지만 꼭 그만큼 상처를 주고받은 인연도 많았습니다. 어떤 인연은 애써 붙잡으려고 해도 잡아지지 않았고, 어떤 인연은 그만 놓으려 해도 놓아지지 않았어요. 올가의 편지를 가만히 읽다 보니, 모든 인연에는 나와 상대의 선택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내가 잡고 싶은 인연이었더라도 상대가 놓아버리는 선택을 했다면 더는 이어질 수 없었겠지요. 반대의 경우도 있었을 겁니다. 결국 인연이라는 이름으로 곁에 남은 이들은, 우리가 만난 갈림길에서 같은 선택, 무려 서로 함께 하겠다는 선택을 한 셈입니다. (반대의 같은 선택을 할 수도 있었는데 말이죠! 다시는 너와 함께 하지 않겠다고요.) 서로의 인생이 달라질 수도 있는데 말입니다. 생각할수록 기적 같은 일이네요. 그래서 인연을 맺고 지키는 일이 그토록 어려웠던가 봅니다. 기적은 흔한 일이 아니니까요.


네 앞에 수많은 길들이 열려 있을 때, 그리고 어떤 길을 택해야 할지 모를 때, 그냥 아무 길이나 들어서진 마. 내가 세상에 나오던 날 그랬듯이, 자신 있는 깊은숨을 내쉬어 봐., 어떤 것에도 현혹당하지 말고, 조금만 더 기다리고 기다려 보렴.
네 마음이 하는 말에 가만히 귀를 기울여 봐. 그러다 네 마음이 말을 할 때, 그때 일어나서 마음 가는 대로 가거라. (278쪽-279쪽)


<흔들리지 말고 마음 가는 대로>의 마지막 편지, 마지막 구절입니다. 당신 앞에는 지금도 수많은 길이 있을 겁니다. 어떤 갈림길로 들어서느냐에 따라 맞부딪힐 ‘누군가’도 다른 이가 되겠지요. 길을 선택할 때 길 끝에 있는 목적지를 생각하는 것도 좋겠으나, 누구와 함께 걷게 될지를 생각하는 것도 꽤 좋은 선택이 될 것 같아요. 하지만 ‘올가’ 할머니의 말처럼, 어느 길로 들어서야 할지 망설여진다면 잠시 숨을 고르며 기다려 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마음에 귀를 기울이면, 어느 순간 마음이 말하지 않을까요.

‘여기, 이 길이야.‘

‘바로, 이 사람이야.’

그럼 그때 일어나서 마음 가는 대로 가세요. 그 길의

초입에서 당신과 같은 선택을 한 누군가와 만나게 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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