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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씨네가족 Feb 16. 2020

막내의 시선

네 살, 그녀의 일기

셋째는 존재 자체만으로 조금은 불평등하게 많은 사랑을 받는다.

부모들은 어쩔 수 없이 첫째와 둘째에게 많은 양보를 요구한다.

그러한 것을 빨리 깨닫게 되는 막내는 더 높은 지위를 탐하기도 한다.


막내의 시선으로 보는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첫째인 오빠로부터는 큰 관심을 받지 못한다.

둘째인 언니에게 큰 관심을 받는데, 언니는 때로는 셋째를 몰래 괴롭히기도 한다.

은밀한 곳에서 행해지는 그녀들의 위계질서는 셋째를 더욱 강인하게 만든다.


결국 조금 힘도 세고 맵 집도 센 셋째에게 둘째는 억울하게도 당하는 경우가 속속 발생한다.

그런 경우, 둘째의 질서를 잡아주어야 하는 게 부모의 역할인데..

그러지 않겠다고 하면서도 둘째를 나무라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는 나는 여전히 배워가는 부모임에는 틀림없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다음번에는 첫째와 둘째의 위치를 더욱 분명히 해주면서 셋째 역시 사랑받을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본다.

그런데 딱히 답이 없다.

셋 모두 가장 최선의 혜택을 주도록 하는 것을 한 명인 내가 감당하기엔 인간의 한계를 뼈저리게 느낀다.


한 명씩 혜택을 주려고 해도..

체력과 에너지의 한계로 동일하게 사랑을 베풀어 주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워 보인다.

그래도 나름 최선을 다했다고 스스로를 위안하며 나 스스로에게 최악의 부모는 아니지 않은가? 라며 작은 칭찬을 해준다.



막내의 시선, 네 살 그녀의 일기


 둘째 언니는 나보다 더욱 자신을 잘 꾸미며, 말도 잘하고 원하는 바를 엄마, 아빠에게 정확히 이야기해서 받아낸다. 오빠도 나보다 훨씬 크고 힘도 세며, 엄청난 권한과 위력을 갖춘 것 같이 보인다. 나보다 크고 위엄 있는 언니도 오빠에게 꿈쩍하지 못하는 걸 보니, 보통 인물이 아닌 것임이 분명하다.


 그런 막강한 파워를 가진 오빠인데 때로 아빠와 엄마가 위엄의 목소리로 이야기할 때는 조용해지고 납작 엎드러지는 모습을 본다. 도대체 엄마, 아빠의 파워는 얼마나 큰 것일까?


 그런 엄마, 아빠가 내가 조금 떼를 쓰고 울어버리니 뭔가 내가 원하는 걸 준다. 항상 주는 것 같지는 않은데.. 엄마 아빠가 힘들고 지쳐 있을 때 나의 주특기를 쓰면 어김없이 아빠, 엄마는 내가 원하는 걸 쉽게 내어준다. 오빠, 언니는 나와 비슷한 행동을 하면 오히려 엄마, 아빠에게 혼나거나 있는 것도 빼앗기는 모습을 봤다.


 그런데 내가 오빠, 언니와 비슷한 행동을 하니 엄마, 아빠는 잘 혼내지 않고 오히려 언니나 오빠 꺼를 빼앗아서 나에게 주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 내가 비록 힘이 없고 키도 작고 언니 오빠에 비하여 말도 제대로 못 하지만 뭔가 대단한 무기를 가지고 있음은 분명하다. 계속 나의 이 주특기를 키워나가야겠다.

 내가 살아갈 유일한 방법은 이 기술을 좀 더 정교하고 교묘하게 사용해서 언니, 오빠도 할 수 없는 나만의 실력을 키워가는 것이다.




나도 조금씩 나이가 들어 이제는 내가 생각하던걸 50% 정도는 말로 표현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엄마, 아빠는 이제 조금 어려운 걸 요구한다.


예전에는 그냥 울면 되었던 일들이, 운다고 엄마, 아빠가 잘 들어주지 않는다.

"또박또박 이야기해야지"

라면서 언니, 오빠처럼 나를 대한다.


아..

정말 사는 게 힘들어진다.

그냥 쉽게 쉽게 얻어진 것들이 어려운 언어로 표현을 해야 하다니..

그리고 때로는 내가 표현하는 것이 정확히 내가 원하는 건지도 잘 모르겠는데 말이다.


언니, 오빠가 때로 우울해하고 좌절하던 모습이 내 얼굴 속에도 보인다.

이렇게 나도 인생을 알아가는 것일까?

그냥 이전처럼 생떼 쓰고, 울면 다 해주던 엄마가 그립다.

사실 엄마는 잘 안 해줬었지만..

아빠가 그립다.


아빠는 웬만하면 다 들어주고 알아서 내가 원하는 걸 해줬는데,

그런 아빠도 요즘에는 좀 더 까다로워졌다.

요즘 들어 부쩍 언니와 오빠 편을 많이 들어준다.

그리고 내가 몰래 잘못했던 은밀한 것들을 아빠가 알아챈 듯하다.


이전에는 내가 잘못했어도 언니가 혼났는데..

이제는 아빠도 똑똑해졌는지 나의 잘못을 정확히 알고 지적한다.

아.. 맘이 뜨끔해서 뭐라고 말을 못 해서 그냥 울어버린다.

이전에는 울면 해결되었는데.. 이제는 아빠가 울지도 못하게 한다.

점점 더 고수가 되어가는 아빠 앞에서 나도 잔기술을 버려야 할 때가 온 것 같은 불안감이 밀려온다.


이제 이렇게 막내로서 누렸던 행복한 삶은 끝이 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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