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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씨네가족 Nov 25. 2019

출근길 지하철에서 쏟아지는 눈물

누구나 자기 어깨에 크고 작은 짐을 다 지고 살아간다.

타인의 어깨에 있는 짐은 잘 보이지 않지만 자신의 어깨에 있는 짐은 실제보다 무겁다.


40을 누가 불혹의 나이라고 했던가?

나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말만 남기고 이 세상을 떠나버린 이에게 따지고 싶은 생각은 없다.

과거로 가서 그를 만날 수 있다면, 70으로 수정해달라고 간곡히 무릎 꿇고 요청하고 싶은 마음이 비록 나만은 아니리라.


이어폰으로 들려오는 음악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나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어려운 문제에 봉착한 결과일까?

그냥 모든 것을 내 던지고 어디론가 멀리 떠나고 싶은데, 그럴 수 없어서 내 마음이 허락한 것일까?


출근길 만원인 지하철 안에서 나는 사람들의 시선에도 불구하고 주르륵 흘러내리는 눈물을 감출 수는 없었다.

스스로 감추지 못했으나, 사람들이 자신의 핸드폰에 집중해 있으므로 나의 눈물을 알아보는 이는 없었다.

지하철이 아니었으면, 나는 소리 내어 펑펑 울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것은 겨우 참아냈지만, 흐르는 눈물까지는 40을 한 달 남겨둔 나 스스로 통제할 순 없었다.




원인은 어제저녁 와이프와 싸운 것에 있는 것 같았지만, 그 싸움이 이러한 긴 눈물을 흐르게 하기에는 부족했다.

10년이라는 세월 동안 많이 싸워왔다. 그러면서 서로를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 그런데 내가 잘못한 걸 알면서도 남자의 자존심이 나를 좋지 못한 길로 데리고 간다.


출근길에 나는 굳게 다짐했다.

'그래, 내 평생 가출 한번 안 해봤는데 이번에 가출이라는 걸 보여줄 테다. 그래야 너도 내가 무서운 걸 알지'


감정이 상해 있을 때는 어떠한 해결책을 실행에 옮겨서 좋은 결과를 보기 힘들다.

조금 정신이 들고나면 왜 그랬을까 싶은데.. 사람은 이성보다는 감정의 지배를 더 받는 존재인 듯하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출근길에 나의 몸을 옮기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회사도 다 때려치우고 동해로 1박 2일 떠날 거다.'


그런데 문득 아침에 회의가 3개나 있다는 기억력이 나의 몸을 조금 저항하게 만든다. 아내와의 갈등의 상황을 떠나서 어디론가 갈 곳이 있다는 사실이 내 인생에 이렇게나 도움이 될 줄이야. 




결국 도착한 곳은 가출도 아니고 동해도 아닌 나를 반겨주는 노트북과 자리가 있다. 아직까지 내 자리가 있다는 것도 감사한 일 아닌가? 사회에서 여전히 나를 필요로 하고 있다는 사실이 문득 놀랍다. 


지하철에서 40대 남성이 멀쩡하게 양복 입고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는 이야기를 동료들과 사장님께 얘기할 수 있을까? 

할 수는 있겠지만, 나를 얕잡아 볼게 뻔하다. 직장은 편안한 쉼터가 아니다. 분명 여전히 누군가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 피나는 노력을 해야 하는 전쟁터임이 분명하다. 전쟁터에서 어떤 이가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겠는가?


남들에게 내가 지하철에서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는 걸 알려줄 필요는 없다. 알려줄 필요가 있는 건 남자들도 지하철에서, 거리에서, 어디에서든 주르륵 눈물을 흘릴 수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긴 하다. 


내 마음이 허락해줘서 흘렀던 눈물은 나의 뒤늦은 사춘기적 방황을 허용하지 않고 다시금 일상을 살아갈 수 있게 내 마음의 아픔을 치유해 주었다. 3-4분간 흘렀던 눈물이 동해를 1박 2일로 떠나는 것보다 좋은 효과가 있다는 걸 스스로 배우게 되었다.


아이 셋을 키워내야 하는 부담감, 월요일 아침이면 어김없이 회사로 출근길에 옮겨야 하는 발걸음, 그리고 내 앞에 닥칠 일들의 어려운 숙제들, 사람들과의 갈등, 아내와의 갈등, 나 스스로에 대한 방황, 내가 어디로 가는지 확신할 수 없는 것들을 포함하여 나열하면 끝이 없는 걱정과 어려움은 40대의 어깨를 짓누른다.


다 던져버리고 홀로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이 불현듯 솟아난다. 언제든 그렇게 할 수 있는 자유로운 영혼들이 부럽지는 않다. 인생은 가진 만큼 누릴 수 있으나 거기에는 반드시 대가가 있는 것이다. 나와 함께 있는 귀여운 세 아이들, 그리고 언제나 나를 살아가게 해주는 원동력이 되어주는 이쁜 아내, 그리고 우리의 보금자리, 일터는 내가 누리고 있는 행복이다. 


이 행복을 지켜내기 위해서 40의 즈음에 남들이 보든 말든 상관하지 않고 내 마음이 울리는 데로 울어낸 눈물은 값어치가 있다. 40대는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자신을 보여줄 수 있지만, 그 위풍당당함을 보여 줄 수 있는 건 숨겨진 눈물이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사회에서 가족을 지켜내기 위해서 아무한테도 말할 수 없었던 고독의 눈물을 비로소 흘리게 되는 시기가 온 것이다.


자신의 아픔과 슬픔, 감추어진 약함을 드러낼 줄 아는 남자는 유혹을 이길 수 있는 비결 중 한 가지를 터득한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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