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태어난 가장 동양적인 요가
구독자님, 안녕하세요. 마디예요.
요가레터가 오는 매주 목요일 저녁을 기다린다는 구독자분의 피드백을 받고
얼마나 뿌듯했는지 몰라요, 이번 주에도 어김없이 요가레터를 열어주셔서 감사해요 :)
오늘은 오랜만에 요가 타입을 소개하는 레터로 돌아왔어요.
바로 음(陰)의 에너지를 담은 <인 요가> 입니다!
이 글은 [요가레터 OLLY]에서 발행되었습니다.
전세계 최애 요가원 리스트를 받고 싶다면→ 구독하러 가기
구독자님, 인 요가 해보신 적 있으세요?
전 처음 인 요가를 접했을 때 적잖이 당황했었어요. 그 '아무것도 하지 않음' 때문에요. 푹신한 볼스터 위로 엎드린 채 이어지는 긴 이완. 이러다 까무룩 잠들겠다 싶었죠. 동적인 요가에만 익숙했던 제게 인 요가는 ‘이것도 요가인가?‘ 싶을만큼 낯선 경험이었는데요.
하지만 지금은 주 2회 정도는 꼭 인 요가 수업을 챙겨 들어요. 매주 글을 쓰느라 온 몸에 들어간 긴장을 풀어내고 눈을 쉬게 하는 데 인 요가만큼 좋은 수련이 없더라고요. 인 요가,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요즘 전 세계적으로 점점 인기가 많아지고 있다는데요.
깊고 고요한 인 요가의 세상으로 떠날 준비, 되셨나요? 이번 호는 인 요가 창시자 폴 그릴리의 인요가를 국내에 소개하고 8년째 인 요가를 나누시는 조글샘 선생님의 친절한 안내와 함께해요.
먼저 인 요가의 인 Yin, 뭘 뜻하는지 한번 알아볼게요. 음양을 영어로 Yin & Yang 이라고 하는데요, 국기에서부터 음과 양이 조화롭게 일렁이는 우리에게 음양은 꽤 익숙한 개념입니다. 음양 사상은 동양철학의 기틀이 된 만큼 풍수지리부터 한의학까지 우리 한국 문화 깊숙이 자리하고 있으니까요.
음양은 기운의 큰 두 갈래로써 서로 반대되지만 서로 의존하는 성질을 갖고, 홀로 독립되어 있을 수 없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달과 요가, 태양과 요가 레터에서도 음양에 대해 언급했지만, 음양의 요소를 세부적으로 나누면 위의 표로 정리할 수 있어요. 그런데 아래의 태극무늬 음양 기호를 한번 잘 들여다보세요. 흑백 공간 안에 점이 하나씩 찍혀 있는 것을 볼 수 있지요? 양 속에 작은 인이 들어있고 음 속에 작은 양이 들어있는데요.
음양은 홀로 독립되어 있을 수 없고 항상 조화를 이룬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이것이 오늘 레터를 읽으며 기억해야 할 점입니다. 인 요가에서도 중요하거든요.
음양에 대해 간단히 알아봤으니 이제 인 요가에 대해 본격적으로 알아볼게요.
이렇게 동양철학을 인용한 인 요가는 재밌게도 미국에서 태어났어요. 인 요가의 뿌리는 1970년대 미국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UCLA에서 공부하던 한 학생을 만나볼게요. 그의 이름은 폴 그릴리(Paul Grilley)입니다.
요가레터 가장 첫번째 호에서 소개했던 스티브 잡스가 평생 반복해서 읽었던 책 기억하시나요? 폴 역시 1970년대 당시 미국의 많은 젊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었던 파라마한사 요가난다의 <한 요기의 자서전>을 읽고 요가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그는 원래 아쉬탕가 요가를 가르치고 수련하던 전형적인 LA의 '양 요가' 선생님이었어요. 그러다 부상을 겪고 대안적인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습니다. 젊은 폴의 관심사는 줄곧 '몸'. 대학에서도 해부학과 운동생리학을 전공했던 폴은 80년대 캘리포니아 일대를 돌아다니며 몸과 관련된 다양한 수업을 들었습니다. 인 요가의 초석을 놓았다고 일컬어지는 폴리 징크의 수업도 그 중 하나였지요.
쿵푸 마스터이기도 했던 폴리 징크는 바닥에서 긴 시간 머무르는 동작을 포함된 <도교 요가>를 가르치고 있었어요. 바닥에 앉고 눕는 게 익숙한 우리와 달리, 줄곧 입식 생활을 했던 미국인들에겐 바닥에서 찬 기운을 느끼며 자세를 취하는 게 너무나 동양적(?)이고 신박했는지 그는 한 TV와 인터뷰를 하게 되었고 그걸 본 폴이 폴리를 찾아갑니다.
폴은 폴리와 약 1년간 함께 수련했습니다.
이미 10년 가까이 양의 기운이 가득한 요가를 수련했던 폴에게, 수련 그 다음 날 통증은 없으면서도 요가의 효능은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 즐거운 충격으로 다가왔다고 합니다. 폴은 본인이 배운 <도교 요가>를 학생들에게도 전파해요.
이제 30대에 들어선 폴은 그의 영적인 스승을 만나게 되는데요. 바로 일본의 초심리학자, 종교 지도자, 그리고 요가 수련자였던 모토야마 히로시 박사였어요. 모토야마 박사는 폴에게 중의학을 바탕으로 한 침술과 경락 체계*, 차크라 명상 등을 종합적으로 가르쳐주었습니다.
경락 Meridian : 우리 몸에 세로와 가로로 난 기의 통로를 일컫는다. 해부를 통해서 발견할 수는 없지만 인체의 기혈이 운행되고 통과하고 연락되는 통로로 믿어지며 한의학 및 중의학의 중요한 이론적 바탕을 이룬다.
이제 폴의 머릿속에서는 요가에서 말하는 프라나, 나디와 차크라, 중의학의 기와 경락 개념, 그리고 대학에서 배운 과학적인 해부학 지식이 모두 이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현대 요가가 나아갈 방향이라 믿게 되었죠.
외부자극이 많고 생활의 템포가 빨라 대체로 '양'의 기운이 많은 현대인의 생활방식을 보완하기 위한 해부학과 경락에 기초한 인 요가가 탄생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예로부터 사람들은 이 세상과 자기 존재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 왔다. 그리고 그에 대한 답을 종교 경전이나 전통에서 얻었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전통에 의문을 품는다. 사실 전통을 별로 신뢰하지 않는다. 설명할 수 있고, 재현할 수 있으며, 검증할 수 있는 원칙에 기초한 과학, 의학, 종교라는 새로운 전통을 쌓는 것이 현대의 다르마(dharma, 책임) 이다. / 폴 그릴리
이렇게 인도, 중국, 서양의 다양한 지식이 결합해 세상에 나온 인 요가만의 특징, 세 가지만 꼽으려만 무엇일까요? 글샘 선생님께 여쭤봤어요.
인요가는 사람의 몸이 똑같지 않기 때문에 획일적으로 요가를 가르칠 수 없다고 믿어요. 각 개인의 뼈가 가진 구조에 맞춰 수련해야 한다고 주장했죠. 이는 인 요가가 갖고 있는 높은 자율성의 원칙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폴 그릴리는 요가 아사나의 목적이 미학적이고 이상적인 자세를 만드는 그 자체에 있다기보다는 우리 몸에 흐르는 기의 순환을 조화롭게 하는 것에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시퀀스도 각자의 몸 구조에 맞는 동작을 찾는 데 집중하도록 짜여집니다.
이 때문에 인 요가 수업의 자율도는 굉장히 높습니다.
본인의 몸과 컨디션에 맞게 자세를 정하고 또 머무르는 시간도 조정할 수 있어요. 한 자세에 여러 가지 옵션이 주어지구요. 인 요가를 가르치는 선생님은 학생들의 몸을 주의 깊게 관찰하며 '아사나' 이름 대신, 우리 몸의 '타겟 부위'를 얘기하죠. 예를 들면, "파스치모타아사나" 라고 말하는 대신 "허벅지 뒤쪽을 늘려볼게요"라고 말하는 식으로요.
그래서 인 요가에서는 블럭, 볼스터, 볼 같은 소도구의 사용도 적극 권장해요.
도구를 쓰는 또 하나의 이유는 골격의 무게를 받쳐 근육을 이완시키는 것인데 요가 숙련자들조차도 이 점을 쉽게 간과한다. (...) 하지만 나비 자세를 하면서 무릎 밑에 블록 하나만 받쳐 봐도 그동안 근육을 긴장시켜 자세를 유지하는 것에 얼마나 익숙해졌었는지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골격의 무게를 지지해 주면 근육이 이완되면서 자극은 더 깊숙이 전달된다. /『인요가 가이드』 버니 클락
글샘: 비단 인 요가 뿐만 아니라 요가에서는 내 몸의 가동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알고 수련하는 것이 중요해요. 저도 10년 넘게 책상 앞에 앉아 책만 보던 학생이었던 터라 양요가 아사나는 잘 하지 못하는 편이었지만, 인 요가를 알고 나서부터는 내 몸에 맞는 자세들로 조화롭게 수련하고 있어요.
인 요가는 한 동작에서 3분 이상, 때로는 20분 가까이 머무릅니다. 그 동작은 쉬울 수도 있고 어려울 수도 있는데요. 이렇게 하는 이유는 우리 몸의 체액을 잘 순환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우리 몸의 근막, 인대, 관절, 힘줄 같은 단단한 '결합조직'에 자극이 전해지면 체액 순환이 촉진되고 유연성이 향상되거든요.
인 요가에서는 아사나의 목적 자체가 결합조직을 타고 흐르는 기의 순환을 조화롭게 하는 데 있다고 봅니다.
인 요가를 할 때 양적 조직들도 스트레칭되고 자극을 받지만, 몸이 정지한 상태를 오래 유지할수록 기는 더 깊은 곳에 있는 음적 조직들 (뼈와 인대)에 집중된다. 정지한 상태를 유지하면 우리 존재의 음적 측면들, 즉 사색적이고 수용적인 면도 향상된다. (...) 음적 조직인 인대는 수분이 적기 때문에 양적 조직들처럼 빨리 반응하지 않는다. 따라서 인 요가에서는 호흡을 몇 번 하는 동안 한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몇 분' 동안 한 자세를 유지한다 / 『인사이트 요가』 사라 파워스
이 때문에 인 요가는 임산부에게도 좋다고 알려져 있어요. 체액이 순환되어 몸의 부기를 빼는 데도 도움이 될뿐더러, 구석구석 지긋이 자극하는 자세가 장기들도 건강하게 하고 부교감신경을 자극해 호르몬 변화가 잦은 감정을 잔잔하게 잠재워주거든요.
인 요가는 때론 인양 요가로도 불려요.
아까 태극 문양 안에 찍혀있던 점 기억하시죠? 그것처럼요, 인 요가 안에서 '양'적인 요소를 넣어주기도 하거든요. 인 요가 수련은 개개인의 몸에 맞추기 때문에 약간 기운이 없고 컨디션이 다운된 상황이라면 오히려 양의 요가로 에너지를 끌어올려준 다음 인 요가를 수련하죠.
흰 부분의 검은 점과 검은 부분의 흰 점이 순수하게 음인 현실이나 순수하게 양인 현실 같은 건 존재하지 않음을 보여 주듯, 균형 잡힌 인 요가 동작에는 양적 요소가 들어 있고, 양 요가 동작에는 음적 요소가 들어 있다. 이 둘의 주된 차이점은 정도의 문제다. / 사라 파워스 『인사이트 요가』
우리가 생각해보지 않아 그렇지, 많은 요가 자세들이 사실 인-양 양방향으로 수련 가능하다는 것이 선생님들의 의견입니다. 같은 아사나라도 에너지가 필요할 땐 호흡과 속도를 올려 양의 방식으로, 반대라면 속도를 늦추고 오래 머무르는 인 방식으로 수련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글샘: 몸이 뻣뻣하시다면 인요가를 통해 장력(tension)을, 반대로 유연하신 분들이라면 눌리는 느낌(compression)을 경험하실 수 있어요. 자신의 뼈의 구조들의 모양에 따른 가동 범위를 이해하고 조화롭게 수련할 수 있지요.
글샘: 긴장을 많이 하시는 분들에게 좋지요. 뭔가 끊임없이 해야할 것 같고 성과를 내야만 할 것 같은 마음이 자주 드는 분이라면 인 요가 수업을 한 번 들어보시길 바래요. 편안한 분위기에서 움직임에 명상이나 프라나야마를 더해 내 마음을 인지할 수 있는 시간을 주니까 몸에 잔뜩 들어가 있는 긴장을 푸는 데 도움이 되실 거예요.
글샘: 사실 인 요가라는 이름은 폴 그릴리가 짓지 않았어요. 그가 가르치던 학생 중 하나였던 사라 파워스가 인 요가라는 이름을 지어주었죠. 그래서 폴리 징크, 폴 그릴리, 사라 파워스가 모두 인요가의 창시자로 일컬어지기도 한답니다.
폴 그릴리는 인 요가를 자기만의 브랜드로 만들고 싶어하지 않았어요. 인 요가 커뮤니티 자체도 사제간의 수직적인 관계를 강조하기 보다는 수평적으로 유지하기를 원하죠. 그래서 제자들은 자신만의 스타일과 철학을 녹여 다양한 인 요가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운영 중입니다.
그릴리 선생님 부부를 제외하고도 인 요가를 가르치시는 주요 선생님들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아요.
조 바넷 Yin Variations (미국): 정석적인 인 요가
사라 파워스 Insight Yoga (미국): 인 요가 + 불교, 심리학, 마음챙김 명상
버니 클락 Yinside (캐나다): 인 요가 + 소도구의 사용을 강조
크리스 수 Yin Mindfulness (말레이시아): 인 요가 + 사운드 테라피
조 피 Yinspiration (싱가포르): 인 요가 + 침술, 중의학, 마사지
글샘: 폴 그릴리 선생님의 인 요가 교재를 보시면 좋아요. 인요가 시퀀스와 경락에 대해 세부적으로 알고 싶으시다면, 제가 인요가를 접했을 때 가장 먼저 봤던 '인 요가 가이드'도 추천해요.
우리가 사는 현대 사회는 ‘하면 된다! 어서 나가자!’ 같은 양의 자세를 더 장려합니다. 하지만, 얻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에는 끝이 없습니다.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인내하고, 감사하고, 자족하는 인의 자세도 함께 키워나가야 합니다. / 『인 요가』 폴 그릴리
인 요가편을 쓰면서 인 요가는 여러모로 우리가 처음으로 다뤘던 요가 타입, 아쉬탕가 요가의 정 반대편에 있는 요가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시퀀스가 자유롭고, 템포가 느리고, 계보라는 게 없으니까요. 이 쯤에서 마무리하며, 인 요가의 특징 세 문장으로 요약해볼게요.
1. 인 요가는 서양의 해부학과 동양의 철학이 한 데 담긴 하이브리드 요가예요
2. 결합조직을 자극하도록 한 자세에 오래 머무르며, 궁극적 목표는 기의 순환입니다.
3. 모든 몸이 다르다는 사실을 존중하기 때문에 수련 내의 자율성이 높아요.
요가레터 OLLY 에서 만나보고픈, 또는 요가레터에 소개하고픈 다른 요가 장르가 있다면, 댓글이나 아래 설문을 통해 자유롭게 알려주세요.
이 글은 [요가레터 OLLY]에서 발행되었습니다.
전세계 최애 요가원 리스트를 받고 싶다면→ 구독하러 가기